아내는 몸이 안 좋았다. 막내와 둘이 보내는 시간을 즐기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확 아픈 게 아니라 서서히 안 좋아지고 있었다. 거기에 서윤이는 얼마나 뺀질뺀질 하면서 말을 안 듣는지. 그나마 소윤이와 시윤이가 없어서 아내의 몸과 마음에 여유가 생겼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굉장한 고난이 되었을지도 모를 정도로 말을 안 듣는다고 했다. 아내가 증거(?) 영상으로 서윤이 영상을 보내줬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아내의 감정을 진심으로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그러기에는 서윤이가 너무 보고 싶었으니까.
아내는 서윤이 하나만 있어도 자기 밥은 제대로 못 챙겨 먹었다. 평소에야 셋이나 챙겨야 하니 그렇다 쳐도 서윤이만 있는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몸이 아파서 더 그렇기도 했겠지만, 육아인에게 ‘자녀의 밥’에 비해 ‘자기 밥’의 가치는 언제나 미천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아내의 목소리가 많이 지쳐 있기도 했다. 통화할 때마다 몸 상태가 어떤지 물어봤는데 ‘아까랑 비슷해’, ‘조금 더 안 좋은 거 같기도 하고’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늦은 오후쯤 집에 돌아왔다.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왔다. 원래 엄마와 함께 저녁도 먹고 그러려고 했는데 아내가 몸이 안 좋아서 애들만 데려다주고 바로 가셨다. 게다가 집에 오는 길에 잠시 도서관에도 들렀는데 거기서 소윤이 교통카드를 잃어버렸다고 했다. 나름 할머니가 기념으로 사 준 교통카드를 바로 잃어버렸으니 얼마나 속상했을까 싶다. 그건 소윤이나 (내) 엄마나 마찬가지였을 거다. 집까지 왔다가 다시 도서관에 찾으러 갔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 과정에서 (내) 엄마가 소윤이에게 푸념하듯 ‘잘 챙겼어야지’, ‘그러게 왜 그걸 꺼냈냐’고 말했는데, 소윤이는 또 그게 속상했는지 울었고, 울고 나서도 기분이 안 좋았다고 했다. 엄마가 갈 때도 기분은 풀리지 않았고, 그렇게 엄마를 보냈다고 했다.
아내도 이 모든 상황이 죄송하고 속상했나 보다. 고생은 고생대로 했는데 마지막이 뭔가 모두 찜찜한 상태인, 무슨 느낌인지 딱 알 것 같았다. 엄마가 가고 나서 아내는 아이들과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할머니도 물론 즐겁고 기쁘셨겠지만 그래도 얼마나 힘들었겠냐. 너네가 할머니한테 이것저것 해 달라고만 하고 정작 할머니랑 있어서 너무 좋다든가 할머니가 너무 감사하다든가 이런 말 한마디라도 안 하지 않았냐’
이런 얘기를, 솔직하게 하다가 결국 아내도 울음이 터졌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눈물샘이 폭발했고. 대략 어떤 상황, 무슨 기분이었는지 공감이 됐다. 아내는 여전히 죄송스러운 마음이 가시지 않았는지, 내가 퇴근했을 때도 속상한 마음을 표현했다.
서윤이만 좋아했다. 서윤이는 언니와 오빠가 오자 방방 뛰면서 반겼다고 했다. 아침에도 일어나자마자 언니, 오빠를 부르며 거실로 나가려다가, 아무도 없는 거실을 한참 바라 보기만 하다 다시 누웠다고 했다. 난 자녀들이 서로 그리워하고 그런 거 보면 너무 흐뭇하다.
그러고 보니 서윤이 생일이었다. 알고 있었지만 잊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이런 일이 종종 생긴다. 분명히 알고 있는데 모르는 일. 낮에 아내가 케이크는 사 놨다. 미역국도 끓이고. 세 자녀 중에 가장 단출한 두 번째 생일을 보냈다. 저녁을 먹고 케이크에 초를 꽂아 축하를 하려고 했는데 저녁을 먹는 서윤이의 태도가 아주 아슬아슬했다. 사실, 진작에 선을 넘었다. 그래도 생일이니까 최대한 자비와 관용을 베풀었다. 어떻게든 기회를 더 주려고 했는데 서윤이는 그걸 걷어찼다. 결국 서윤이는 저녁 식사를 마치지 못했고, 케이크도 먹지 못하게 됐다. 생일 축하만 받았다. 안 그래도 약식으로 보낸 생일을, 더 슬프게 보내게 해서 조금 미안했지만 오히려 효과는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생일 축하를 받을 때는 그래도 환하게 웃으며 조촐한 생일이지만, 주인공의 기분을 마음껏 누렸다. ‘설마 생일인데 진짜 안 주겠어’하는 생각을 했을는지도 모르겠다. 축하를 끝내고 나서는 서윤이를 아기의자에서 내려줬다. 언니와 오빠에게만 주어지는 케이크를 보며 서윤이는 오열을 했고, 그런 서윤이를 안아서 달래줬다.
“서윤아. 케이크 못 먹어서 속상하지? 아빠가 서윤이 미워서 그런 거 아니야. 서윤이 왜 케이크 못 먹어?”
“바 아머거더어어어엉. 으아아아앙”
“그래. 밥 안 먹어서 그렇지? 내일은 밥 잘 먹고 케이크도 맛있게 먹자?”
“네에에에에으아아아아앙”
서윤이가 인과관계를 분명히 이해하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여전히 몸이 안 좋은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자러 들어갔다. 저녁 먹고 난 뒤의, 포탄이 떨어진 것 같은 모습의 현장이 그대로였다. 식탁을 치우고, 설거지도 했다. 설거지가 꽤 많아서 제법 시간이 소요됐다. 주방 식탁 위에 이것저것 너저분하게 놓인 게 싫어서 하나씩 정리를 했다. 처치홈스쿨에서 받은 서윤이 생일 축하 꽃다발도 있었다. 부피가 커서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것도 싫었고, 아름다움에 비해 너무 방치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꽃병은 없으니 찬장에서 적당한 유리잔 두 개를 꺼내 꽃을 나눠 담았다. 이런 쪽으로 지식과 식견이 전무하고, 심지어 내가 꽂고 있는 꽃의 이름도 ‘장미’처럼 유명한(?) 꽃이 아니면 몰랐다. 그런데도 꽃의 줄기를 잘라서 잔에 꽂다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다 꽂고 나니 더 좋았다. 인조의 물건이 가득한 공간을 비우고 거기를 자연으로 채우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꽃을 보고 있으니 일과 육아, 가사로 이어지는 일상의 흐름에서 누적된 좋지 않은 기분이 해소됐다.
다 끝내고 나니 10시가 넘었다.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아내에게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도 마음이 뭔가 개운치 않았다. 그렇다고 전화를 해서 뭐 엄청 살갑게 얘기하거나 그러지는 못한다. 그냥 ‘고생하셨다’ 정도가 끝이었다. 엄마는 뭘 고생했냐면서 당신도 아까 영 찜찜했다고 했다. 그때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나 보다.
아내는 11시가 안 되어서 나왔다. 상태는 여전히 비슷했다. 잠시 앉아서 쉬다가 내가 자러 들어갈 때 함께 들어갔다. 내일 바로 다시 좋아지거나 조금이라도 나아질 거 같지가 않다. 왠지 조금 더 안 좋아질 것 같다. 막연하지만 그냥 흐름과 분위기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