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덕분에 울고 웃는 삶

22.04.05(화)

by 어깨아빠

아내는 몸이 확연히 더 안 좋아졌다. 그 와중에 서윤이는 아침부터 밥그릇을 식탁 밑으로 던지는 만행을 저질렀다. 서윤이의 식사 습관을 바로잡는 게 요즘 우리 가정의 아주 중요한 일인데, 그게 보통 일이 아니다. 언제나 이론과 현실은 괴리를 만들어 내곤 한다. 게다가 아내도 나도, 서윤이의 경련을 겪고 나서는 굶기는 것에 약간의 두려움이 생겼다(그때 너무 많이 토하고 못 먹어서 순간적으로 당 수치가 현저하게 떨어졌고, 그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추정한다). 머리로는 ‘한 끼 정도 굶어도 아무 일 없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하려니 겁이 난다.


아내는 많이 힘들어했다. 어제처럼 조금씩 나빠지는 느낌이었는데 그 속도가 조금은 더 빠른 느낌이랄까. 열도 조금 났다. 아이들에게도 하루 보이콧(?)을 선언했다고 했다. 오늘은 알아서 놀고 알아서 할 일 하라고 했다면서. 홈스쿨을 하면서 누리는 가장 큰 이점이다.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되고, 내일 못하면 모레 하면 되고. 물론 사람의 인생이라는 게 언제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참 희한한 게 꼭 이럴 때 막내는 엄마에게 더 달라붙는다. 서윤이는 엄마에게 딱 달라붙어서 열심히 손가락을 빨았다.


아내는 서윤이를 재우면서 같이 잤다고 했다. 한 시간 반 정도. 그렇게 자고 나왔는데 소윤이와 시윤이가 아내를 위해서 케이크를 꺼내 놓고 딸기도 잘라 놓고, 토마토 우유(?)도 만들었다. 토마토를 그냥 대충 꺼내 놓은 게 아니라 접시에 담아서 쟁반에 정갈하게 담았다. 어제 케이크를 먹지 못했던 서윤이 것도 따로 준비했다. 심지어 설거지까지 싹 했다. 입맛이 없어서 밥도 제대로 못 먹은 아내는 덕분에 배를 좀 채우고 기운을 차렸다. 아내가 가장 맛있게 먹은 건 케이크도 아니고 토마토 우유도 아니었을 거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사랑과 갸륵한 그 마음이 가장 달콤했을 거다.


물론 이런 달달한 시간만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아주 잠깐일지도 모른다. 아내는 똥을 닦지 않겠다며 떼를 쓰는 서윤이와의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얘기해 줬다. 통화할 때마다 제대로 인사하고 끊지도 못했다. 다급하게, 혹은 엄하게 시윤이나 서윤이를 부르는 아내의 목소리와 함께 끝날 때가 많았다. 아내는 ‘정말 힘들다’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퇴근하고 집에 왔을 때도 아내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저녁에는 돈까스를 배달시켜 먹었다. 내가 애초부터 저녁은 배달시켜 먹자고 했다. 저녁거리 고민, 저녁을 만드는 고생이라도 좀 덜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아내는 제대로 먹지 못했다. 여전히 입맛이 없고 몸이 점점 힘들어진다고 했다.


저녁에는 목장 모임이 있었다.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시작을 해서 끝난 시간도 늦었다. 아픈 아내에게 힘을 보탤 수 있는 거라고는 아내의 내일 첫 일정에서 집안일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 주는 것밖에 없다. 그나마도 설거지뿐이다. 설거지를 해 놓고 잠깐 쉬면서 주방을 봤는데 밥솥이 보였다.


‘아, 나는 아침에 쌀이 안 씻어져 있으면 그게 그렇게 부담이 되더라’


눈을 뜨자마자 배고프다며 밥을 찾는 식성 좋은 자녀 세 명과 함께하는 아내의 말을 떠올리며 쌀을 씻었다. 그러다 아예 밥을 해 놔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을 올리고 압력솥의 추가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세월의 흐름을 고스란히 맞은 압력솥은 추가 다 올라오기도 전에 물과 김을 내뿜었다. 얼른 가서 손잡이 쪽을 꽉 누르니 잠잠해졌다. 평소에 아내가 이렇게 하는 걸 어깨너머로 봤다.


아내는 엄청 일찍 들어가서 누웠는데 깨지도 않고 계속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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