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건 아픈 거고, 파티는 파티고

19.01.01(화)

by 어깨아빠

안타깝게도 시윤이는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올랐다.


"여보 몇 도야?"

"39.1도"

"아 진짜? 걱정이네"


좋지 않은 흐름이었다. 아침부터 기운이 없고, 아내한테만 매달리고 보챘다. 시윤이가 이렇게 아픈 건 오랜만이었다.


소윤이는 일찍부터 일어나서 거실로 나가자고 난리였다. 정확히 시간을 보지는 못했지만 느낌상 한 8시가 조금 넘었을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양심이 있으면 최소한 9시까지는 자야지, 어제 몇 시에 잤는데. 징징대는 소윤이 소리에 다시 깊게 잠들지는 못했지만, 몸을 일으킨 건 10가 다 돼서였다. 미안하다, 소윤아.


새해 첫 아침으로 떡국을 끓였다. 시윤이는 아픈 와중에도 아침은 잘 먹었다. 다행이었다. 아파도 잘 먹고, 잘 싸기만 하면 좀 낫다. 적어도 최악으로 가지는 않는다. 시윤이는 물론이고 소윤이도, 아내도 아침을 맛있게 먹었다. 소윤이는 리필까지 해가면서.


"아빠. 이게 아침이에여?"

"음. 아침이긴 한데 아침 겸 점심이야"

"그게 뭐에여?"

"어. 아침이 너무 늦어서 점심은 따로 안 먹고, 오늘은 두 끼만 먹을 거야"

"아빠. 그래도 점심은 먹어야지여"

"그렇긴 한데. 오늘은 두 끼만 먹어도 돼"


원래 휴일에는 아점이야. 이 녀석들아.


밥 먹을 때 잠깐 웃기도 하고 괜찮아 보이던 시윤이는,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다시 환자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아내가 재우러 들어갔고, 난 소윤이랑 찰흙놀이를 시작했다.


아내가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았다.


"소윤아. 엄마는 잠들었나 봐"

"왜여?"

"음. 시윤이 재우다가 피곤해서"

"내가 들어가서 보고 올까여?"

"아냐아냐아냐. 놔둬"


아내의 낮잠을 깨우는 게 싫었을까, 시윤이 낮잠을 깨우는 게 싫었을까. 아무튼 다급히 소윤이를 말리고 다시 찰흙놀이에 열중했다. 아내는 한 시간 정도 후에 카톡을 보냈다.


[나 지금 깸]


소윤이랑은 아내가 깨고 나서도 한참 찰흙놀이를 했다. 거의 2시간 넘게 했나 보다. 처음에는 나도 좀 재밌게 했는데, 2시간 넘어가니까 허리도 아프고 지루해서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소윤아. 우리 이제 그만할까?"

"아. 아빠 이것만 만들고여"


그놈의 '이것만'이 넘쳐나잖아 이 녀석아.


시윤이도 잠에서 깼다. 여전히 고열이었다. 열이 많이 나는 것에 비해, 이따금씩 웃기도 하고, 완전히 움직이지도 못하고 축축 쳐져 있지는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기는 했다. 그래도 새해 첫날인데, 하루 종일 집에만 있을 수 없어서 잠깐 집 앞 카페라도 다녀오기로 했다. 아픈 시윤이가 조금 걱정이긴 했지만, 오히려 바깥바람을 좀 쐬는 게 나을 수도 있으니까.


정말 나오니까 좀 나은지, 시윤이는 앉아서 빵도 잘 먹고, 장난도 치고, 잘 돌아다니기도 했다. 물론 표정과 몸짓에는 힘듦이 묻어 있었다. 소윤이야 뭐 말할 것도 없이 즐겁게 있었고.


소윤이가 저녁에는 계란밥을 해달라고 해서 그러겠다고 약속했었는데, 막상 밥도 없어서 밥도 새로 해야 하고. 너무 귀찮았다.


"소윤아. 우리 저녁에 죽 먹을까?"

"왜여?"

"아 시윤이 아프니까 죽 먹일 건데, 소윤이도 같이 먹을래? 고기랑 같이?"

"그래여. 그러자여"


저번에 먹고 남은 죽이 있었다. 오예. 밥 안 해도 된다. 남은 죽을 데우고, 소고기를 구워서 함께 줬다. 시윤이는 외출하고 와서 다시 기력을 잃었는지 통 힘이 없었다. 죽도 거의 안 먹었다. 억지로 안 먹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애쓰지 않았다. 시윤이는 소파에 눕혀놔도 가만히 있을 정도로 힘이 없었다. 밤이 되니까 더 힘든 모양이었다.


재울 준비를 마치고 아내가 아이들과 함께 들어갔다. 아내랑 나는 저녁에 초밥을 먹기로 했다. 아내가 계속 맛있는 초밥을 먹고 싶다길래, 찾아봤더니 동네에 평이 괜찮은 곳이 하나 있었다. 애들한테는 귀찮아서 남은 죽 데워 주고, 아들은 아파서 고생인데 우리만 즐기려니 약간의 죄책감이 있었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소윤이랑 시윤이에게 인사를 해주고 방에서 나와 바로 초밥집으로 출발했다. 미리 전화로 주문을 해 놓고 찾으러 갔다. 초밥이니까 혹시나 재우는 게 오래 걸려서 아내가 늦게 나오더라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며 집에 가고 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집까지 5분도 안 남았을 때.


"여보"

"어. 벌써 나왔어?"

"어"

"금방 잤네. 시윤이도 금방 잠들었어?"

"어. 힘들긴 한가 봐"

"그러게. 난 거의 다 왔어"

"알았어"


이런 기가 막힌 타이밍이. 지난번에 사두고 마시지 못한 와인과 함께 초밥을 먹었다. 조촐한 신년 파티였다. 초밥을 다 먹고 영화라도 볼까 하고 있는데, 시윤이가 문을 열고 나왔다. 나온 김에 열을 재봤는데 비슷했다. 다시 아내가 데리고 들어갔고 금방 재우고 다시 나왔다.


[거꾸로 가는 남자]라는 넷플릭스 영화를 골라서 봤는데, 꽤 재밌었다. 신선하고. 한창 재밌게 보고 있는데, 또 문이 열리고 그가 등장했다.


"여보. 안 되겠다 오늘은"

"그러게. 다음에 봐야겠네"


한 30여분 남은 영화 시청은 다음으로 미루고 아내가 시윤이랑 다시 방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아내도 탈출의 마음을 접고 들어갔다.


새해가 되어도 똑같구나. 밤마다 아내랑 생이별하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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