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02(수)
기적처럼 시윤이의 열이 뚝 떨어졌다. 따끈하던 이마가 식었길래 체온을 재보니 36.5도였다. 기특한 녀석. 어제 저녁밥을 제대로 안 먹어서 그런가 기분은 좋은데 자꾸 휘청거리고 곧게 걷지를 못했다. 아침에도 열이 나면 병원에 다녀오려고 했는데 혼자 이겨내다니.
아내는 저녁에 수정이(아내 친구, 채은이 엄마)를 만난다고 했다. 빨리 퇴근해서 교대해야 하니 차를 가지고 갔다. 사실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버스 타고 출퇴근한 지가 너무 오래돼서 다시 차의 편리함과 안락함에 길들여져 버렸다. 여보. 나 버스 타기 싫어.
아내도 굉장히 오랜만의 독박 육아였다. 지난주 화요일부터 아프기 시작해서 내내 요양 생활을 하다가 딱 일주일을 쉬고(?) 복귀했으니, 아내도 부침을 좀 겪지 않았을까.
일이 바빠서 낮에는 아내랑 거의 연락을 하지 못했다. 점심시간 즈음, 시윤이 재우러 방에 들어갔는데 소윤이랑 시윤이랑 장난치면서 안 잔다는 푸념을 들은 게 마지막이었다. 잘 지내고 있는지 어떤지 궁금했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생각했다. 빨리 퇴근해서 바통을 넘겨받으려고 했는데 오늘따라 일이 밀려서 오히려 평소보다 늦게 집에 도착했다. 문을 여니 소윤이랑 시윤이만 날 반겼다.
"소윤아. 엄마는?"
"엄마는 머리 감으러 들어 갔어여"
소리를 들은 아내가 화장실 문을 열고 인사를 했다. 아직 머리를 감기 전이었다. 아마 나를 기다리다가 시간에 쫓겨 급히 들어간 것 같았다. 아내가 머리를 감기 전, 저녁은 콩나물밥을 준비해 놨으니 차려주면 된다고 했다. 싱크대에 소윤이와 시윤이의 밥그릇과 숟가락, 컵이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조금이라도 나의 수고를 덜어 주려는 아내의 배려가 느껴졌다.(라고 쓰고 보니 별 의미 없는 행위였나 싶기도 하네. 맞지? 여보? 남편을 향한 아내의 배려?)
"여보. 몇 시에 만나기로 했어?"
"어. 대략 6시 30분쯤"
아내가 그 말을 한 게 6시 20분이었고, 아내는 이제 막 나와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조금 더 일찍 퇴근해서 아내에게 차분한 준비의 시간을 주지 못한 게 미안했다. 소윤이랑 시윤이는 아직 밥을 먹고 있었고, 그 상태로 아내와 작별 인사를 나눴다. 다행히 오늘은 둘 다 울지 않고 기분 좋게.
아까 낮에 잠 안 자고 장난치며 시간을 끌었다던 시윤이는 결국 2시쯤 잠들었다고 했다. 오늘 들었던 소식 중 가장 절망적인 소식이었다. 1시간 조금 넘게 잤다고 하니 밤에는 빨리 잘 리가 없었다. 아내도 오늘은 그냥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조언했다.
'그래. 뭐 소윤이만 재워 놓고 시윤이랑 놀면 되지'
소윤이에게 책 두 권을 읽어주면서, 내 졸음이 충만해졌다. 책을 다 읽고 소윤이가 잠들기를 기다리는데 내가 먼저 졸았나 보다. 스스로 코를 골고 있다는 걸 느끼며 잠과 깸의 경계선을 오가고 있을 때 소윤이가 말했다.
"아빠. 그렇게 시끄럽게 코 골면 안 돼여"
"소윤아. 코 고는 건 마음대로 못 하는 거야. 아빠도 어쩔 수 없어. 소윤이가 빨리 안 자니까 아빠도 피곤해서 그런 거잖아"
이제 컸다고 아빠 코 고는 것까지 지적하고 말이야. 그렇게 소윤이에게 항변하고 잠들었다가 깼더니 8시였다. 한 시간이 지났다. 소윤이도, 시윤이도 자고 있었다. 어찌 됐든 시윤이를 나름 수월하게 재웠다는 게 만족스러웠다.
집이 좀 더러웠지만 치우지 않고 내 할 일을 했다. 수정이를 바래다주고 돌아온 아내는 소파에 앉아서 웹툰 보고, 난 컴퓨터 앞에 앉아 마저 할 일을 하고 있는데 안방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소윤이의 짜증 섞인 울음소리와 시윤이의 구슬픈 울음소리. 서둘러 들어가 보니 둘이 자다가 엉켰는지 소윤이는 시윤이한테 비키라고 짜증이었고, 시윤이는 시윤이대로 맞서고 있었다. 둘 사이를 가르고 가운데 누웠다.
"아빠가 가운데 누울 테니까, 얼른 자"
소윤이는 금방 잠들었는데 시윤이가 자꾸 눈을 껌뻑거리면서 안 자려고 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잠든 걸 확인하고 다시 거실로 나와서 아내랑 수다를 떠는데, 또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늘 그렇듯 강시윤이었다. 아내는 급히 숨었다. 엄마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 시윤이는 나랑 순순히 들어갔다. 이전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잠든 것 같아서 힐끗 보면 계속 뒤척이고 낑낑거리고.
다시 거실에 나와 아내랑 수다를 떨고 있는데 시윤이가 다시 문을 열고 나왔다. 이번에는 도망치는 엄마의 꽁무니를 보고 말았다.
"엄마. 엄마"
손가락으로 아내가 도망친 방향을 가리키며 엄마를 외쳤다.
"여보. 얘 열나는데?"
"진짜?"
"어. 뜨끈해"
"몇 돈지 재볼까"
39.1도
아 뭐지. 다 나은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나. 기침 소리가 그렁그렁한 게 심상치 않기는 했는데, 또 열이 날 줄은 몰랐다. 따지고 보면 독감이어도 뭐 겁낼 건 없는데, 괜히 공포감이 든다. 독감이면 어쩌나 하고. 가장 큰 걱정은 시윤이의 독감이 소윤이에게 옮겨 가는 거겠지.
아무래도 내일은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다. 시윤아 괜찮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