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해요, 코로나 격리

22.04.07(목)

by 어깨아빠

아침에 잠깐 사무실에 나가서 급한 일만 처리했다. 혹시 모르니(사실 거의 확신했다) 집으로 돌아올 준비를 다 해서 병원으로 갔다. 어제까지는 멀쩡하더니 아침이 되니 약간 기침도 나오고 기운도 없고 그랬다. 병원에는 사람이 무척 많았다. 코와 목에 면봉을 찌르고 나서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강지훈님”

“아, 네”

“양성이네요”


역시. 예상했던 결과를 받았다. 바로 회사에 전화를 해서 상황을 알렸다. 아내와도 통화를 했다.


“여보. 어떻게 됐어?”

“나? 음성이래”

“아, 진짜? 뭔가 아쉽네”

“그러게”


바로 집으로 향했다. 마침 아이들만 거실에 있었고 아내는 화장실에 있었다.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는 몸짓을 했지만 서윤이는 참지 않았다.


“아빠아아아아아. 아빠아아 왜 와떠여어어?”


서윤이의 시끄러운 소리에 아내가 화장실에서 ‘아빠 오셨어?’라고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아마 아내도 눈치는 챘을 거다. 아내가 화장실에서 나왔고, 그렇게 확진자 부부는 재회했다.


“여보. 뭐지. 이 복잡 미묘한 감정은?”

“왜?”

“뭔가 좋고 반가우면서도 이래도 되나 싶어서”


아마 지금이라서 가능한 감정이었을 거다. 어차피 다 걸려야 끝나는 거라면 언제가 됐든 걸려야 할 테고, 또 지금은 예전처럼 힘들고 어려운 격리는 아니니까. 남편의 ‘확진’을 향한 걱정보다는 확진 판정받은 ‘남편’과 함께한다는 기쁨이 앞서는 게, 아내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 모두 약간의 증상은 있었다. 셋 모두 콧물이 나왔고 소윤이와 서윤이는 기침도 조금 했다. 소윤이는 약간 기운도 없다고 했다. 서로 완전한 격리 생활을 하는 건 불가능하니 그저 가볍고 미약하게 지나가길 바랄 뿐이었다.


멀쩡하던 사람도 자기 병을 진단받는 순간 진행 속도가 빨라진다더니, 딱 내가 그랬다. 아침까지만 해도 약하던 증상들이 점점 심해졌다. 기침도 나오고 기운도 없고 딱 몸살 같았다. 아이들에게 반응하는 속도나 태도를 봐도 정상은 아니었다. 아이들의 요구에 몸이 바로바로 움직이지 않았고, 작은 것도 힘에 부쳤다. 몸과 마음에 누가 ‘슬로우 효과’를 건 것처럼 느릿느릿했다. 확진이어도 아내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니 좋다고 생각했던 게 민망했다. 아내는 자녀 셋에 아픈 남편까지 돌봐야 하는 형편이 되었다. 아내는 조금씩이라도 좋아지는 추세인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얼마 전에 아는 분이 ‘인간극장’에 나왔는데 마지막 편만 못 봤다. 오후에 아이들과 함께 봤다. 아이들은 이미 봤지만 좋아했다. 아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니까 재미있기도 했을 테고, 워낙 미디어와 멀리하는 삶을 살다 보니 그 내용이 무엇이든 일단 ‘영상을 본다’는 행위 자체에 쾌감을 느낀다. 난 중간에 조금씩 졸았다. 약이 세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 모양이었다. 저녁 먹기 전에 방에 들어가서 눈을 붙였다.


아내는 ‘고군분투’ 그 자체였다. 아내의 움직임에 조금도 도움을 보태지 못하는 상태에서 아내를 보니 더 그렇게 보였다. 머리에 띠를 두르고 애써 힘을 내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소녀 가장의 모습이었다. 남은 격리 기간의 최대한 많은 날을 ‘남편과 함께 보내는 휴가 같은 날’로 보낼 수 있도록 빨리 회복되어야 했다. 자녀들을 생각해서라도 그래야 했다. 기왕 쉬게 된 거 ‘아픈 아빠’와 함께 보내는 날을 최대한 줄여줘야 했다.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여보. 근데 내일 아침에 일찍 안 일어나도 되는 건 너무 좋다”


어찌 됐든 격리 기간 동안에는 출근을 안 해도 되고, 그건 곧 알람 소리에서 해방된다는 얘기였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향한 두려움보다 알람 소리를 향한 두려움이 더 큰가 보다. 가볍고 빠르게만 지나간다면, 남은 격리 기간을 휴가처럼 보낼 수 있다는 희망도 품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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