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4.22(금)
사랑하는 세 자녀는 오늘 아침에도 출근하는 아빠를 배웅했다. 알람 소리에 눈을 떴을 때, 서윤이가 이미 깨서 슉슉 소리를 내고 있었다. 엎드리고 눈을 감은 채로 손을 빨고 있길래 아주 조용히 몰래 문을 열고 나왔다. 혹시나 잠에 취해 있는 거라면, 아빠의 이동을 눈치채지 못하고 다시 그대로 잠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순진한 생각이었다. 서윤이의 귀가 그렇게 어둡지는 않았다. 서윤이는 문을 열고 쫓아 나왔고 소윤이와 시윤이도 함께였다. 아내는 아직 누워서 자고 있다는 게 어제와 다른 점이었다. 물론 큰 의미는 없었을 거다. 아빠를 배웅하고 난 아이들은 보나 마나 다시 방으로 들어가서 엄마에게 자석처럼 붙거나, 거실에서 자기들끼리 놀다가 티격태격하느라 아내의 단잠을 방해했을 테니까.
아내와 아이들은 오늘도 처치홈스쿨에 다녀왔다. 원래 오후에는 야외 활동이 있었는데, 하루 종일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 같은 날씨에 결국 야외 활동을 취소했다고 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같은 단지에 사는 친구와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다가 들어왔는데, 너무 추웠다고 했다. 아이들은 모르겠지만 아내는 너무 추워서 힘들었다고 했다.
그 덕분인지 저녁에 만난 아내의 얼굴이 매우 초췌했다. 요일을 막론하고 그 시간 즈음에는 아내에게 활력이란 걸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오늘은 더 힘들어 보였다. 어디 아픈 건 아니냐고 물어봤는데 두통이 조금 있다고 했다. 코로나 덕분에 남편과 함께 푹 쉬다가 꽉꽉 들어찬 처치홈스쿨 일정을 소화하는 것도 한 몫 했을 거다. 아무튼 아내는 무척 지쳐 보였다.
그 와중에도 아내는 저녁을 만들었다. 아이들이 먹을 연어 솥밥과 아내와 내가 먹을 돼지고기 김치 볶음이었다. 경지에 오른 아내의 음식은 이제 아내의 상황과 여건에 상관없이 평균적인 맛을 유지한다.
“간도 못 보고 만들었네”
라며 정신없었던 자신의 상황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아내의 말이었다. 주부 경력 30년이 넘은 엄마나 장모님이
“아이고 대충 급하게 만들어서 뭔 맛인지 모르겠네”
라고 하시며 밑밥을 던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여러모로 완연한 주부의 모습을 갖춰가는 아내의 모습이, 자녀의 성장을 볼 때처럼 신기할 때가 많다.
저녁 먹고 나서는 교회에 다녀왔다. 내가 반주를 하는 날에는 보통 아내와 아이들이 함께 가지 않는다. 그래도 아주 가끔은 ‘오늘은 가 볼까’ 고민을 할 때도 있는데 오늘은 전혀 아니었다. 같이 가기는 무슨 당장 씻겨서 재우는 것조차 매우 버거운 일처럼 느껴졌을 거다.
예배가 끝나고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커피 마셨어?”
아내는 답이 없었다. 전화까지는 하지 않았다. 자는 사람을 깨울 만큼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그냥 집으로 왔다. 아내는 불이 환하게 켜진 거실 소파에 누워서 자다가 내가 들어오는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아내에게서 후광이 비쳤다. 피곤과 피로의 후광이.
“여보. 그냥 들어가서 자지”
아내는 한참 동안 정신을 못 차렸다.
“여보. 오늘은 그냥 들어가서 자”
“그럴까”
아내도 스스로 힘겹다고 느꼈는지 자러 들어가겠다고 했다. 거실 바닥에는 젖은 빨래 더미가 쌓여 있었다. 아내가 그걸 처리하려고 기웃거리길래 그냥 두고 얼른 들어가서 자라고 했다. 기왕 잘 거면 얼른 들어가서 확실하게 이른 잠을 자는 게 좋으니까.
아내는 원래 어떤 행위를 하기까지의 과정이 참 많은 사람이다. 자려고 마음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바로 자러 들어가는 게 아니라, 두통약도 먹고 양치도 하고 양치하면서 카톡도 하고 그러다 눈에 띄는 게 있으면 정리도 하고 나에게 할 말이 생각나면 다시 앉아서 얘기도 하고 오늘까지 꼭 주문해야 하는 무언가도 주문해야 하고(오늘까지 주문해야 하는 건 매일 존재하는 것 같다). 가끔은 자녀들은 보는 것 같다. 자라고 하면 그제서야 화장실도 가고 물도 마시고 손수건도 챙기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
결국 아내는 일찍 자러 들어가지 않았다. 내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수다를 시작했는데 그러다 보니 잠이 깼다고 했다. 아내와 나는 한참 대화를 나누다 자러 들어갔다. 내일 집에 부모님들이 오시는데, 싱크대에 설거지는 한가득이었고 소파에는 개지 못한 빨래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아내도 나도 ‘오늘은 끝이고 내일 어떻게 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건조기에 넣지 않으면 더 큰 일거리가 되어 돌아올 젖은 빨래를 건조기에 넣는 것까지가, 아내와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집안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