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이 안 되면 커피라도

22.04.29(금)

by 어깨아빠

아내와 아이들은 오늘도 처치홈스쿨에 갔다. 아내는 일주일에 세 번인 것도 만만하지 않지만 이틀 연속으로 가는 것 또한 보통 일이 아니라고 했다. 단순하게 몸만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니라서 그럴 거다. 홈스쿨로 자녀를 기르는 이에게 어제도 오늘도 홈스쿨인 게 당연하지만, 당연하다고 힘들지 않은 건 아니니까.


느지막한 오후가 되어서야 아내와 첫 연락이 닿았다.


“어, 여보. 이제서야 연락할 틈이 생겼네”


가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만큼이나 가서 보내는 시간도 정신없이 흘러간다고 했다. 갔다 온 후의 시간도 마찬가지다. 쉴 틈도 없이 분주하게 저녁 준비를 하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로 혼이 빠진다. 혼과 함께 체력도 급격히 사라지고. 코로나의 기세가 사그라들고 대면으로 모이기 시작한 후로는 이런 날이 훨씬 많아졌다.


이번 주도 참 분주하게 지나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먹고 아이들과 산책이라도 할까 싶었는데 그러기에는 소윤이와 시윤이가 너무 피곤해 보였다. 거의 매일 그렇다. 그나마 오늘은 다른 날에 비하면 조금 나아 보이긴 했지만, 저녁 먹는 것도 힘겨워 보일 때가 있다. 섣부르게 밤 산책 이야기를 꺼내기가 어렵다. 퇴근이 지연되는 것에 관해 아내의 의견은 어떤지도 확인해야 하고. 입 밖으로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혼자 판단을 한 결과, 오늘은 조금 힘들어 보였다. 대신 조금은 더 수월한 방법을 제안했다. 저녁을 다 먹고 소윤이가 화장실에 간 사이 아내에게 은밀하게 얘기했다. 토굴에서 몰래 거사를 모의하는 사람처럼.


“여보. 커피 사러 갔다 올까?”

“진짜? 여보가 가게?”

“아니. 다 같이”

“아, 그럴까?”


아내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힘들거나 귀찮거나, 다른 건 다 집어치우고 무조건 퇴근만 원했으면 아마


“오늘은 좀 힘드네”


라고 했을 거다. 그렇게 작게 얘기했는데 소윤이는 어느새 고개를 빼꼼하게 내밀고 엄마와 아빠의 밀담을 엿들었다.


“엄마. 아빠랑 무슨 얘기했어어?”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게 아니었다. 어느 정도 듣고 상황 파악도 끝났지만, 마치 정답을 맞혀 보는 것처럼 알고 물어보는 거였다. 눈치도 빠르고 귀도 밝아서 감히 소윤이 앞에서는 함부로 보안 사항을 꺼낼 수가 없다.


“다 씻고 잠깐 커피 사러 갔다 오자고”

“우리도 같이?”

“어. 근데 너네는 차에만 있다가 오는 거야”


딱히 아쉬워하고 그러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가는 걸 귀찮아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나중에 했다. 엄청 피곤했을 텐데. 말이나 행동을 보면 그런 게 느껴지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밤 산책을 고민하다 실행한 외출 아닌 외출이었는데, 따지고 보니 아내와 나의 카페인 욕구만 충족했다.


사 온 커피는 바로 마시지 않고 냉장고에 넣었다. 아내는 아이들을 재우러 들어가야 해서 시간이 없었고, 난 아내가 애들 재우고 나오면 같이 마시려고 냉장고에 넣었다. 아내는 오늘도 한참이나 소식이 없었다. 중간에 내가 깨우지 않았으면 그대로 내일 아침을 맞았을지도 모른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한 세 번 울렸을 때 전화가 끊기고 안방에서 아내의 소리가 들렸다. 단순한 기침이었지만, 난 아내가 비로소 잠에서 깼다는 게 느껴졌다.


“하아. 여보. 나 왜 안 깨웠어?”

“지금 깨웠잖아”

“그래? 내가 기억 못 하는 건가?”

“응. 내가 전화했잖아”

“아, 그래?”

“어. 여보 그래서 깬 거야”


얼마나 몽롱할까 싶다. 잘 시간이 아닌데 잠들었다가 얼마 자지도 못하고 깼으니. 아내는 다시 맑은 정신을 찾는 데 꽤 많은 시간을 썼다.


아까 저녁 먹을 때, 소윤이가 나에게 질문을 했다.


“아빠. 우리 내일 무슨 일 있어여?”

“내일? 아니?”

“그럼 내일 인라인스케이트 탈 수 있어여?”

“인라인? 그럼. 타러 가자”

“어디로여?”

“글쎄. 그건 엄마랑 아빠가 결정해서 알려줄게.”

“아빠. 우리 또 0000공원 가자여. 인라인스케이트 타고 나서 할아버지랑 할머니도 만나자여”


소윤이의 바람대로 장인어른과 장모님도 만나기로 했다. 내일도 날이 좋다고 하니 열심히 나가야 한다. 아파트 숲에 갇혀 지내는 해방을 주기에 좋은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