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집에 오길 잘 했네

22.05.28(토)

by 어깨아빠

세 녀석 모두 배가 고프다며 난리였다. 그럴 만한 시간이긴 했다. 서윤이는 아침에 이마가 조금 뜨끈하고 평소보다 많이 칭얼대길래 몸이 어디 안 좋은가 싶었는데, 아침을 먹고 나니 짜증이 싹 사라졌다. 열이 나는 것도 아니었다. 배가 고파서 그랬나 보다.


아침 먹고 예배를 드린 뒤에는 오랜만에 대대적인 차 청소를 했다. 청소도 청소지만 짐 정리에 가까웠다. 나의 출퇴근용 차에는 집에는 가지고 가기 싫지만 필요해서 버릴 수는 없는 잡다한 짐이 실려 있었다. 그것도 정리하고 내부 청소도 하고 그랬다. 따로 세차장에 가지 않고 아파트 주차장에서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나가고 싶다고 해서 데리고 나왔다.


날이 무척 더웠다. 소윤이는 금세 앞머리가 이마에 착 달라붙었다. 시윤이는 볼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볕을 피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소윤이는 나온 지 얼마 안 돼서 다시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너무 더워서 힘들다면서. 소윤이와 시윤이는 다시 들어갔다. 난 한참 더 청소를 하다가 들어왔다. 그랬더니 어느새 점심시간이었다.


오후에는 처치홈스쿨 모임이 있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정말 오랜만에 야외에서 모이는 시간이었다. 엄마 선생님들과 아이들은 평일에 함께 모이지만, 아빠 선생님들까지 모이는 건 거의 2년 만이었다. 동네 근처에 있는 공원에서 모이기로 했다. 그때까지 아내와 내가 결정하지 못한 일이 하나 있었다.


어제 아내가 나에게 얘기했다.


“여보. 범죄도시 엄청 재밌나 보네?”

“그런가 봐”

“평점도 엄청 높아”

“아, 그래?”

“보러 갈까?”

“내일?”

“어. 어때?”


당연히 아이들은 장인어른과 장모님께 맡기고 보러 가자는 얘기였다. 다른 일이 없는 주말이었으면 일찌감치 가서 같이 있다가 맡기고 나오면 되지만, 오늘은 모임을 마치고 가야 하니 꽤 늦은 시간이 될 가능성이 컸다. 손주는, 안 보면 보고 싶고 보면 좋지만 너무 오래 보면 힘들지만 또 금방 보고 싶어지고. 그렇다고 했다. 그래도 너무 늦은 시간에 맡기는 건, 손주들과 놀(?) 시간은 없고 그저 재우는 것만 부탁하는 모양새니 죄송스러웠다. 아내는 일단 짐을 챙기자면서 아이들 옷과 우리(아내와 나)의 옷을 가방에 넣었다. 심지어 그때까지 장인어른과 장모님에게는 시간이 괜찮은지 여쭤보지도 않았다. 이런 게 친정인가.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비밀로 했다. 사람 일이라는 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괜히 바람 넣었다가 못 가게 되면 침울해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봐야 하니까.


일단 아이들은 야외 모임에서 아주 잘 뛰어놀았다. 언제 시간이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재밌게 놀았다. 달리기도 하고 축구도 하고 모래놀이도 하고 그냥 막 뛰어다니기도 하고. 날씨도 좋고 바람도 적당히 선선해서 그냥 기분이 좋았다. 이 많은 사람이 함께 모여 있는 그 모습 자체가 굉장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맨날 내 자녀만 보다가 다른 아이들도 함께 보니 그것도 새롭고 즐거웠다. 함께 김밥과 치킨도 먹었다.


해가 길어져서 그런지 생각보다 시간이 훌쩍 흘렀다. 자리를 정리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을 때가 여덟 시 무렵이었다. 마침 시윤이는 마지막에 넘어져서 팔꿈치에 상처가 났다. 그걸 물로 씻어야 하는데 아파서 못 씻겠다고 울어서 그거 설득하느라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다들 가고 우리가 마지막까지 남았다. 떼를 쓰는 게 아니라 정말 무서워서 우는 거라 최대한 시윤이의 감정을 받아줬다. 한차례 펑펑 울고 나니까 좀 진정을 했고 화장실에 가서 씻었다.


“거 봐. 생각보다 안 아프지?”

“네”


아내는 그때까지 장인어른과 장모님에게 우리의 방문(이라 쓰고 손주 위탁이라고 읽자)이 괜찮은지 여쭤보지 않았다. 짐을 정리하면서 급히 여쭤봤고, 괜찮다는 답을 들었다. 운전석에 앉아서 주차장을 빠져나가면서 고민했다. 아무래도 시간이 너무 늦었다. 우리야 영화를 보러 나가면 그만이지만, 아이들은 가면 씻고 바로 자야 할 시간이었다. 게다가 내일도 예배 시간에 맞춰서 아침 일찍 나와야 했다. 그야말로 수면을 위한 방문이었다.


“여보. 그냥 다음에 볼까?”

“왜? 너무 죄송해서?”

“어. 너무 늦은 거 같아. 왜? 너무 아쉬워?”

“아니야. 아쉽긴 하지만 여보 마음이 그러면 그렇게 해”


아내는 다시 장모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눈치도 빠르고 청력도 좋은 소윤이는 ‘어디를 가려고 했던 거냐’면서 궁금해했다. 정확히 말하지는 않았고 대충 둘러댔다.


엄청 피곤했다. 장모님과 장인어른에게 죄송한 건 둘째 치더라도, 아내와 나의 피로를 생각하면 안 가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피곤했다. 더운 계절의 육아가 힘든 이유는, 거의 매일 씻겨야 한다는 거다. 겨울에는 며칠 안 씻겨도 미안한 게 덜했는데, 여름에는 그게 안 된다. 겨울이었으면 ‘내일 씻기지 뭐’라고 하면서 내일은 또 내일을 기약하고 또 내일은 또또 내일을 기약하다가 며칠씩 지나기도 했다. 게다가 오늘은 소윤이와 시윤이가 저녁으로 먹은 게 배가 덜 찼다고 해서, 들어오는 길에 빵도 사서 먹였다. 거기에 과일까지 먹었다. 날이 더우니까 지쳐서 그런가 다들 엄청 잘 먹는다.


모든 일과를 마치고 드디어 마주한 육아 퇴근의 시간. 아내는 육아 퇴근은 물론이고 오늘 하루의 퇴근까지 겸했다. 아이들과 함께 들어가서 아예 깨지 못했다. 영원히 잠들었다. 나도 거실에 앉아서 일기를 쓰겠다고 노트북을 펼쳤지만 계속 졸았다. 화면에는 무수한 ’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만 찍혔다. 졸았다고 하기에는 꽤 시간이 많이 흘렀다.


역시 오늘은 안 맡기길 잘 했다는 생각을 했다. 아내에게도 나에게도 너무 무리한 욕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