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06(주일)
엄마, 아빠를 깨우다 깨우다 지친 소윤이, 시윤이는 결국 자기들끼리 나가서 놀았다. 덕분에 아내와 나도 조금이나마 더 이불속에 머물 수 있었고. 대신 늦었다. 집에서 10시에는 나가야 하는데 9시 30분에 일어났다.
"여보. 30분 만에 나갈 수 있을까?"
아무것도 안 하고 바로 일어나서 씻고, 준비하고, 애들 옷만 입혀서 나가기에도 빠듯한 시간이었다.
"12시 10분 예배드려야겠다."
그리하여 체감상으로 엄청난 여유가 생겼음에도, 우리는 또 늦었다. 뭐지. 심리적으로 느끼는 여유와 실제로 얻은 시간과 괴리가 있나. 심지어 어질러진 집은 손도 못 대고 그대로 나왔다. 집을 나서면서부터, 귀가할 때의 불쾌함이 느껴지는 듯했다.
집은 못 치웠어도 설거지는 열심히 해놨다. 재활용 쓰레기도 비록 버리지는 못했지만 바로 버릴 수 있게 정리해 놓고.
"아빠. 힘들면 그만하고 쉬어여"
"아니야. 오늘 축구해야지"
소윤이는 새싹꿈나무에 가고(물론 울면서) 시윤이는 오늘도 큰 방해 없이 앉아 있었다. 그러다 예배 중반부쯤 아내에게 안겨 잠들었고, 장의자에 눕혔다. 예배 끝날 때까지도 깨지 않아서 아내가 소윤이를 데리고 식당에 가서 밥을 먹기로 했다. 난 잠든 시윤이 옆을 지키며 그대로 예배당에 머물렀다.
늦은 예배를 드린 터라 바로 목장 모임에 가야 했다. 아직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 아내에게 시윤이를 넘기고 목장모임을 하러 2층으로 올라갔다. 목장모임 후에는 기대하고 고대하던 축구 모임이 있었다.(누가 보면 한 두어 달 쉰 줄 알겠지만, 사실은 한 2주 쉼)
"여보. 밥 다 먹고 차 가지고 이쪽으로 와서 전화해, 그럼 내려갈게"
"알았어"
목장모임도 마침 밖에서 밥을 먹으며 한다길래, 가는 길에 아내를 만나 트렁크에서 짐(각종 축구 의류)을 꺼냈다.
"여보. 집으로 가?"
"글쎄. 모르겠네"
"아빠. 마트 갈 거에여. 초코송이 사러"
"아. 그래? 알았어. 소윤아, 시윤아 빠이빠이. 이따 보자. 여보 이따 봐"
비록 2주였지만, 매주 두 번씩 하다가 2주 동안 공을 구경도 못하니 몸이 근질근질하던 차에 날씨도 딱 좋고. 기분 좋게 운동을 했다.
아내는 결국 파주(친정)에 갔다. 축구가 끝날 때까지도 파주에 있었다. 애들 저녁은 다 먹였고, 씻기기도 했고. 아내는 돌아오는 길에 둘 다 잠드는 게 본인의 계획임을 알렸다. 뭐 굳이 알리지 않아도 늘 그러니까.
먼저 집에 들어갔는데, 집안 풍경이 참혹했다. 아 참, 아까 목장모임 마치고, 같이 축구하는 목자 집사님 차를 얻어 타려고 잠깐 집사님 댁에 들렀었다. 초등학교 1학년, 유치원생 아들 둘이 있는 집인데, 그 집 또한 재해 현장을 방불케 했다. 우리 집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다. 잠시 후 아내 집사님과 아들 둘도 귀가했다.
"아. 제가 너무 갑자기 와서, 죄송하네요"
"아니에요. 집이 너무 더러워서 창피하네요"
모든 것이 우리 집보다 한 수 위였다. 어질러짐의 강도도, 두 아들이 풍기는 거친 육아의 향기도. 아무리 용맹한 진돗개라도 호랑이나 사자 앞에 가면 기운을 느끼고 오줌을 질질 지리는 것처럼, 나의 육아가 아무리 힘들지언정, 아들 둘 가진 집에 함부로 비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잠시 짜증이 솟구치려다가, 감사함으로 집을 치웠다. 일단 샤워를 하며 몸과 마음을 새로이 하고, 차분히 집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래. 우리 소윤이는 정말 얌전하게 노는 거였구나'
소파와 바닥 곳곳에 널린 색종이를 주우며, 집사님 댁에서 봤던 정체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카드와 딱지, 메카드 류의 장난감을 떠올렸다. 널브러진 자동차와 인형 몇 개를 주우며, 집사님 댁에 셀 수 없이 늘어선 로봇 장난감을 기억했다. 식탁 위의 책과 동요 CD를 치우며, 집사님 댁 식탁에 있던 부르마블용 장난감 돈과 이름 모를, 하지만 장난감 같았던 무엇들을 떠올렸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첫째가 소윤이라서요. 정확히는 딸이라서요'
쑤셔 박기 신공을 발휘했지만, 겉보기에는 굉장히 깔끔해졌다. 집을 거의 다 치웠을 때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지하로 좀 내려와 줘"
"둘 다 자?"
"아니. 소윤이는 안 자"
지하로 내려가서 시윤이를 안고 올라왔다. 소윤이는 엄마한테 안긴다고 하길래 아내가 안았다. 시윤이는 그대로 잤고, 소윤이도 아내가 들어가서 재웠더니 금방 잠들었다. 아내가 소윤이를 재우는 동안 재활용 쓰레기도 갖다 버렸다. 머릿속으로 축구와 연계시켜 계산하고 나온 행동은 아니었다. 분명하다. 다만 축구하는 날만 되면 유난히 더 부지런해지는 건 왜 그런지 나도 모르겠네.
우리 집 작은방은 말만 작은방이지, 사실 가장 많은 잡동사니가 처박혀 있다.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는 옷을 비롯해서 이불, 가방, 각종 잡화, 나의 전자 드럼, 책상, 컴퓨터 등. 이런 형편에 '내 방'은 엄두도 못 내고, '내 공간'이라도 마련해보고자 싶어서 일단 의자부터 샀었다. 컴퓨터는 정리해서 장인어른 드리고, 노트북을 놓고 쓰기로 했다. 공간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그제 컴퓨터를 포맷해서 초기화해놨고, 오늘 정리해서 자리를 만들어 보기로 마음먹었다. 원래 혼자 사브작 사브작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아내가 도와주기 시작했다. 어느새 나는 입만 움직이고 아내는 나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보조 노동자가 되어 있었다. 아내의 도움으로 생각보다 수월히 정리를 마쳤다.
나를 도와주느라 힘을 많이 쓴 아내는, 거실에 널린 마트에서 산 식재료와 생활필수품 사이에 앉아 쉬고 있었다. 냉장고 앞에 앉아서 장모님이 사주셨다는 쥐포 봉지를 뜯어 한 입 먹었는데, 덜커덕하고 안방 문이 열렸다. 아내는 피할 새도 없이 자신의 뒷모습을 시윤이에게 노출하고 말았다.
"여보. 냉장고에 넣을 것만 좀 넣어줘"
이건 오늘 하루를 이것으로 끝내겠다는 아내의 유언이었다. 쥐포를 삼키지도 못한 채 시윤이를 안고 있는 아내에게 화답했다.
"여보 그대로 자면 발꾸렁내 날 텐데"
막고 싶다. 안방 문을 못 열게 막고 싶다. 하루빨리 조치를 취해야겠다. 문 열고 나오자마자 뭔가 고통을 선사해야 하나. 따가운 무언가를 깔아 놓을까.
그만 좀 열고 나와라. 짜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