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게 아니라 괜찮아야만 하는 사람

22.06.07(화)

by 어깨아빠

울산에 가는 동안 아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무려 아홉 시간이나 걸린 데다가 아이들도 없었으니 얼마나 자유롭게 다양한 대화를 나눴는지 모르겠다. 특히 시윤이와 아내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조심스럽게 요즘 아내의 모습에 관한 나의 소감(?)도 전했다. 다행히 아내 주변의 몇몇 사람도 나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다고 했다. 아내도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했고.


‘웃음이 사라지고 어두운 표정이 가득한’ 아내의 모습에 관한 얘기였다. 아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으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아내는 웃음도 많고 밝은 사람이었다. 처치홈스쿨을 비롯한 아내의 일상이 너무 빡빡하다는 게 내 나름대로 분석한 원인이었다. 하루에 웃을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다면, 그걸 처치홈스쿨에 가서 다 쓰고 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거기서는 맡은 바 책임을 다해야 하는 역할이 있으니까. 사실 내 지분도 적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내의 힘든 수고를 덜어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존재는, 남편뿐이다. 친정 엄마도 있고 친정 아빠도 있지만 남편이 해야만 하는 몫이 있는 거다. 내가 너무 비우는 시간이 많은 건 아닌가 싶어서 마음이 무겁고 찜찜했다. 아내의 주변 사람들도 ‘아내의 상황이 너무 힘들고 빡빡하다’는 의견을 많이 내놨다고 했다.


아내가 스스로를 ‘괜찮아야만 하는 존재’라고 생각할까 봐 그게 제일 걱정이 된다. 물론 그건 나도 어느 정도 그런 면이 있고, 가정을 이루고 엄마와 아빠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게 삶 전체가 되면 문제일 거다. 아내가 그렇게 되는 건 아닌가 싶어서 걱정이 많이 된다. 오히려 육아의 연수가 쌓이니 만성적으로 고통을 외면하고 괜찮은 척하는 건 아닐까 염려스럽다. 아침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일어날 때도 많다는 얘기를 듣고 내심 놀라기도 했다.


“여보. 오늘은 시윤이랑 괜찮나요?”


메시지에 답장은 없었고 잠시 후 통화를 했다. 아내는 얼버무리며 ‘뭐 그냥. 그럭저럭 괜찮았어요’라고 대답했다. 시윤이가 듣고 있으니 적나라하게 말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고, 이미 지난 일이니 굳이 남편에게 말해서 심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요즘은 아내가 나에게 말하지 않는 ‘시윤이와의 시간’이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몇 배는 더 많은 느낌이다. 내가 아내의 상황을 깊이 공감하고 스펀지처럼 듣고 받아줬으면 아마 아내도 다 얘기했을 거다. 내 반응이 썩 좋지 않았을 때도 많았으니까 아내도 알아서 거르는 게 많아졌을 거다. 처치홈스쿨을 하는 날은 일단 시작을 하면 거의 연락이 불가능하기도 하다.


아내는 퇴근시간 무렵에 나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어디예요? 출발했어요?”

“어. 이제 막”

“여보. 우리 오늘 외식해요”

“그럴까? 어디서?”

“솔벗 가서 쌀국수 먹는 거 어때요?”

“아, 괜찮지”


소윤이가 좋아하는 곳인데 오늘은 월남쌈은 안 먹고 쌀국수만 먹기로 합의를 봤나 보다. 소윤이가 평소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으니 꼭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얘기하는 게 몇 가지 있다. 일단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가서 자지 않고 그냥 오는 것’이다. 장인어른, 장모님 댁에 가서는 안 자고 와도 되는데 (내) 부모님 댁에 가면 꼭 자고 와야 한다고 했다. 나머지 하나가 ‘솔벗에 가서 월남쌈 안 먹는 것’이었다. 사실 가서 쌀국수만 먹고 온 적은 없었다. 그런 소윤이가 오늘은 양보(?)가 됐나 보다. 아예 안 가고 안 먹는 것보다는 쌀국수라도 맛있게 먹는 게 낫다는, 아주 현명한 판단을 했나.


식당에 갔더니 함께 처치홈스쿨을 하는 가정도 있었다. 아내가 거기가 맛있다며 추천했는데, 추천하고 나니 자기도 가고 싶어서(소윤이도 가고 싶어 해서) 왔다고 했다. 결국 일행이 되어 함께 식사를 했다. 다른 가정이 있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내가 굉장히 밝았다.


‘오늘은 시윤이랑 별로 안 힘들고 괜찮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 먹고 나오려고 할 때 그쪽 가정의 엄마 선생님이 아내를 안으면서 나를 보고 말했다.


“가영 선생님 오늘도 너무 힘들었어여”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역시나’였나 보다. 물론 시윤이가 원인 제공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처치홈스쿨에 가면 서윤이도 꽤 아내를 힘들 게 하는 사람이 되니까. 아무튼 아내의 ‘밝음’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짠 최후의 노력이었던 것 같다.


안타깝게도 난 목장 모임을 하러 가야 했다. 온라인으로 하던 게 대면 모임으로 바뀌어서 교회에 가야 했다. 식당 주차장에서 아내, 아이들과 인사를 나눴다. 서윤이는 계속


“나두 아빠 차 탈 거에여어. 아빠 차 타고 지퍼여어어”


라면서 아빠를 향한 애정(혹은 아빠 차를 향한 호기심)을 드러냈다. 이렇게 또 아내 홀로 저녁 시간을 책임지게 만드는 게 마음이 영 불편했다. 내 스스로가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정작 행동과 실천은 없는 사람 같기도 했고.


목장 모임을 마치고 집에 왔는데 역시나 아내는 자고 있었고, 전화로 깨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