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의 아빠 사랑

22.06.22(수)

by 어깨아빠

아내와 아이들은 화요일, 목요일, 금요일에 처치홈스쿨을 하니까 월요일과 수요일이 그나마 좀 쉬는 날이다. 대신 수요일에는 아내의 목장 모임이 있어서 마찬가지로 바쁘고, 월요일이야말로 아무 일도 없지만 주말의 후유증을 겪을 때가 많다. 그러니 온전히 쉰다고 할 수 있는 날이라는 게 사실 딱히 없다.


오늘은 아내의 목장 모임이 취소됐다. 덕분에 아내는 시간에 맞춰 나가려고 아침부터 바삐 움직이지 않아도 됐다. 목장 모임에 억지로 가는 건 아니다. 가면 너무 좋고 반갑고 그렇다고 했다. 다만 준비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고 가서도 만만하지가 않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가끔씩 이렇게 취소되는 게 반갑다고 했다.


아무 일도 없는 날의 여유를 얼마나 즐겼는지는 모르겠다. 아무 일도 없다는 게 꼭 여유로움으로 이어지지 않는 날도 많고. 아무 일도 없을 뿐, 세 자녀는 여전히 아내와 함께 하니까. 대신 장모님이 오셨다고 했다. 친한 권사님도 함께 오셔서 점심도 먹고 시간도 보냈다고 했다. 아내의 목소리나 메시지에서 평소보다 인자함이 느껴졌던 게 다 이유가 있었다.


저녁에는 가전제품을 보러 갔다. 아내가 애들 저녁을 먹여서 나오기에는 시간이 촉박하기도 했고, 점심을 먹은 지 얼마 안 되기도 해서 만나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어딘가 들어가서 먹기에는 또 시간이 부족해서 그냥 차에서 간단히 김밥을 먹기로 했다. 내가 퇴근하면서 김밥을 찾았고 가전제품 매장의 주차장에서 아내와 아이들을 만났다.


“아빠아아아아아악”


악을 쓰듯 반갑게 나를 부르는 서윤이의 목소리가 주차장에 울려 퍼졌다. 서윤이는 자기도 이따 아빠 차를 탈 수 있냐면서, 사실 이미 자기는 아빠 차 탈 거라고 정해 놓고 나에게 계속 물어봤다.


“아빠아. 더도 아빠 차 탈 주 있나여어?”


난 김밥을 찾아서 가전 제품 매장까지 오는 사이에 미리 김밥을 먹었다. 그래야 서윤이를 먹일 때 조금이라도 편할 것 같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각자 알아서 먹었다. 단무지는 먹지 않고 햄이나 계란은 꼭 있어야 하는 서윤이를 위해 매번 단무지 제거 및 햄, 계란 삽입 작업을 해 가며 먹였다. 그래도 ‘차 안’이라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잘 먹어 주니 다행이었다.


가전 제품 매장이 생각보다 너무 추웠다. 에어컨의 성능을 보여 주려고 일부러 세게 튼 건가. 아무튼 아이들 겉옷이 없었는데 너무 추워서 좀 걱정이 됐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여러 종류의 가전이 신기했는지 하나씩 구경을 했다. 시윤이는 식기세척기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여러 형태로 쏘아대는 물줄기를 구경했다. 서윤이는 유모차에서 최대한 늦게 내려 주려고 했는데 하도 내려오겠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내려줬다. 구경과 상담을 방해할 정도로 돌아다니지는 않았다.


구경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 서윤이만 내 차를 탔다. 서윤이는 명확히 자기 의사를 밝혔다. 아빠 차를 타겠다고 했다. 언니와 오빠는 엄마 차를 탄다고 했는데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서윤이는 뒷좌석에 앉아서 끊임없이 얘기를 했다.


“아빠아. 데가 아빠 차 타더 너무 도아여어”


진심으로 좋아했다. 서윤이는 아빠를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아빠 차를 타는 일탈(?)을 좋아하는 걸까. 어떤 이유로든 서윤이의 선택을 받는 건 언제나 기분이 좋다. 똥 쌌을 때 빼고는.


집에 오다가 갑작스럽게 지인의 집에 들르게 됐다. 얼마 전에 생일이라서 선물을 사 놨는데 가는 길에 그걸 전해주려고 했다. 집 앞에서 잠깐 얼굴만 보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안에 들어가서 앉게 됐다. 사실 애들이 먼저 치고 들어가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 얼떨결에 앉아서 한 시간 반 정도를 있었나 보다. 그래도 ‘만나자’면서 각 잡고 만나는 것 말고 이렇게 갑작스러운 만남이 주는 나름의 즐거움이 있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에게도 아내와 나에게도 늦었지만 좋은 시간이긴 했다.


대신 매우 늦은 귀가를 대가로 치렀다. 늦었지만 씻겼다. 샤워로. 여름의 가장 큰 단점을 요즘 새삼 실감하고 있다. 매일 샤워를 시켜야 한다는 게 어마어마한 과업이다. 온갖 가전이 다 나오는 마당에 누가 가정용 자동 샤워 부스 같은 거 안 만드나. 들어가서 가만히 서 있으면 자동세차장처럼 알아서 거품도 쏘고 물도 나오고 건조까지 시켜 주는.


‘이렇게 씻겨 주는 것도 얼마 안 남은 일이다’


라면서 감성에 젖기에는 몸이 너무 고단하다. 내일 처치홈스쿨에 가는 게 아니었다면 아내에게 미뤘을지도 모른다. 애들은 꼭 이럴 때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다. 기분이 좋은 건 괜찮은데 너무 흥분해서 자꾸 귀를 닫는다. 매 순간 극도의 피곤에서 기인하는 짜증을 참아 내느라 고생했다. 여러 번 어금니를 꽉 물고 아이들에게 말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