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03(주일)
시윤이가 더 안 좋아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최상의 상태도 아닌 듯했다. 약간 힘이 없어 보였다. 평소보다 덜 까불고 덜 촐싹대는 느낌이랄까. 수시로 시윤이에게 몸 상태를 물어봤는데 시윤이의 대답도 비슷했다. 약간 피곤하고 힘든 정도라고 했다.
엄청 일찍 일어났다. 내가. 계속 누워 있었으면 다시 금방 잠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순간 각성이 돼서 거실로 나왔다. 기왕 일어난 거 책이라도 좀 읽을까 싶었는데 서윤이가 따라 나왔다.
“서윤아. 들어가서 더 자”
“아빠아. 아빠아 옆에 누우 꺼에여어”
그러더니 거실 바닥에 누워서 손을 빨았다. 서윤이는 잠이 완전히 깬 게 아니었다. 금방 다시 눈을 감더니 잠이 들었다. 그러다 기척이 나면 눈을 떴다가 다시 감고. 중간에 나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에어컨 때문에 추울 것 같아서 이불을 덮어 주고 나도 옆에 누웠다. 재우려는 의도도, 자려는 의도도 없었다. 잠들어 가는 서윤이를 그저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다. 서윤이 옆에 누워서 혼자 뽀뽀도 하고 여기저기 쓰다듬기도 했다. 아내는 그런 나를 이렇게 표현했다.
“여보. 여보 약간 미친 거 같아”
안 좋은 의미는 아니고, 말 그대로 서윤이를 대하는 말이나 행동, 마음이 유별나다는 뜻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그렇긴 하다.
그렇게 서윤이 옆에 누워 있다 보니 나도 다시 졸려졌다. 조금 더 잘까 싶었는데 그때는 소윤이와 시윤이가 깨서 나왔다. 워낙 일찍 일어났으니 소윤이와 시윤이가 깨서 나왔을 때도 이른 시간이었다. 부지런히 일어나서 아침을 먹이고 그랬으면 시간이 좀 여유로웠을 텐데 바닥에 붙어서 이리저리 뒹굴며 게으름을 피웠다. 결국 늦잠 잔 날과 비교해도 크게 이르지 않은 시간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윤이는 오늘도 잠들지 않은 채로 예배 시간을 보냈다. 한 주 한 주 지날 때마다 조금씩 더 까불고 고집을 부리는 게 느껴진다. 참 묘하다. 자랄 수록 이해력과 표현력이 높아지니 보다 수월한 의사 소통이 가능하지만, 그만큼 자아와 고집도 세진다. 그 사이에서 ‘가르침’과 ‘수용’의 묘를 잘 발휘해야 한다. 가르칠 건 가르치고 받아줄 건 받아 주고. 말로는 참 간단한데 현실은 언제나 그렇지가 못하다. 세 번째여도 마찬가지다. 세 번째지만, 얘는 처음이니까. 그래도 아직은 뭐 예배에 방해가 되고 그러지는 않는다. 예배를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는 서윤이가 아니라 졸음이다.
예배를 드리고 난 뒤에는 가야 할 곳이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동네였다. 오며 가며 지나쳤던 일도 없었을 것 같았다. 가전제품을 사야 하는데 새로 문을 여는 매장의 할인 폭이 가장 크다고 해서 가 보기로 한 거다. 의외로 집에서 그렇게 멀지 않길래 견적이나 받아보자는 심정으로 가게 됐다. 주말인데도 차가 하나도 안 막혔다. 덕분에 딱 내비게이션이 예상한 시간만큼 걸려서 도착했다.
시윤이와 서윤이는 차에서 잠들었다. 시윤이는 잠든 지가 얼마 안 됐고 몸을 생각하면 더 자는 게 좋았다. 깰 때까지 차에서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좀 아까웠다. 유모차에 태워서 계속 재우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유모차는 한 대 뿐이었기 때문에 마트 고객센터에 가서 유모차를 한 대 빌렸다. 서윤이와 시윤이를 유모차로 옮겼다. 서윤이야 카시트에서 유모차로 옮기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시윤이는 완전히 다르다. 우선 3열까지 몸을 구기고 들어가서 시윤이를 꺼내 오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다. 어쩔 수 없이 시윤이를 살짝 깨워야 한다. 그렇다고 완전히 깨우면 안 되고 적당히 비몽사몽인 상태가 유지되도록 깨우는 게 좋다. 물론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약간 의식을 찾은 시윤이가 스스로 차 밖까지 나오도록 한 다음, 바로 유모차에 눕히면 된다.
유모차가 턱없이 작았다. 시윤이도 잘 크고 있구나. 나름 수고하고 애써서 옮겼는데 깼다. 시윤이와 서윤이 모두. 시윤이에게는 조금 더 자 보라고 얘기하고 계속 유모차에 누워 있게 했지만 다시 잠들지는 못했다.
소윤이는 영상을 너무 무서워한다. 조금만 ‘무서운 듯 보이는’ 무언가가 화면에 뜨기만 해도 기겁을 한다. 작정하고 무섭게 만든 장면이 아니어도 그렇다. 조금만 무서운 분위기가 느껴지면 아예 보지도 못하고 소리도 못 듣는다. 니모를 찾아서를 보다가 극초반에 니모가 상어에게 쫓기는 장면에서 오열을 하며 울고, 결국 거기서 시청도 종료됐던 일도 있었다. 오늘도 아내와 내가 직원 분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자기 눈을 가렸다. TV에서 무서운 장면이 나왔나 보다. 소윤이는 서윤이 유모차에 누웠다. 시각을 완전히 차단하기 위한 자기 나름대로의 방편이었다. 거기 들어가서도 한참 동안이나 평정심을 못 찾았다. 부모 교육 받을 때 배웠던 것처럼, 일단 소윤이의 감정을 완전히 공감하기 위해 애를 썼다. 잘 했다.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고
“아, 소윤아. 무서웠어? 그래, 그럼 유모차에 들어가서 좀 있어. 괜찮아. 아빠 같이 있잖아”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나니 긴장이 좀 풀렸는지 시윤이, 서윤이와 웃고 떠들면서 장난을 쳤다. 그래도 유모차에서 나오지는 않았다. 갈수록 장난이 심해지고 시끄러워지길래 몇 번 주의를 줬다. 잠깐 잦아드는 듯하다가도 금세 시끄러워지기를 반복했다.
“안 되겠다. 소윤아. 이제 유모차에서 나와”
그랬더니 소윤이가 또 막 울기 시작했다. 무서운 장면이 나올까 봐 겁이 난다는 거였다. TV에서는 기하학적인 모양이 무의미하게 반복되고 있었다. 꽤 한참 전부터.
“소윤아. 괜찮아. 지금 TV에서 무서운 거 안 나온 지 오래 됐어”
“아빠아. 그래도 유모차에 있을래여. 보일 수도 있잖아여”
“그럼 여기 의자에 앉아서 뒤돌아 있으면 되잖아”
“그래도 그럼 자꾸 확인하게 된단 말이에여”
이건 그 감정을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순간적으로 짜증이 올라왔지만 겨우 꾹꾹 눌렀다.
“알았어. 소윤아. 그럼 유모차에 계속 있어. 대신에 너도 동생들이랑 이제 장난 그만 쳐”
상담을 마치고 나서는 바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도 축구장에 아이들을 데려가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요즘 날씨가 너무 덥다. 가전 제품을 보러 오는 바람에 평소보다 좀 늦었다. 그만큼 아내가 겪는 ‘남편의 부재’의 시간도 줄어들었다. 미미한 수준이긴 했다. 축구하고 왔을 때 만난 아내의 모습이 특별히 덜 지쳐 보이거나 그러지 않았다. 평소와 똑같았다.
아이들을 재우러 들어간 아내가 깜깜무소식이었다.
“??”
“애들이 안 잠”
그 메시지를 나누고도 무려 한 시간이 더 지났을 때 아내에게 다시 메시지가 왔다. 아내는 그 사이에 잠들었다가 깬 듯했다. 서윤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는데 아마 그 소리에 깨지 않았을까 싶었다.
“여보”
“?”
“서윤이가 열이 나는 거 같네”
이마가 뜨끈했다. 이마는 물론이고 팔과 다리도. 집에 체온계가 고장이 나서 같은 동에 사는 지인에게 체온계를 빌렸다. 미열은 아니었다. 38도에서 39도를 왔다 갔다 했다. 체온계를 빌리면서 해열제도 얻어왔다. 그 집 아들도 계속 열이 났다고 했다. 요즘 그럴 만한 환경이긴 하다. 날은 엄청 더워서 에어컨을 틀지 않고서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는데, 에어컨을 틀다 보면 또 금방 추워지고 그렇다고 줄이면 다시 더워지고. 옛 선조들이 오뉴월에 감기가 안 걸린 건 에어컨이 없었기 때문일 거다. 대신 더위를 온 몸으로 버텨냈을 거다. 시원함과 함께 감기까지 받은 느낌이랄까.
서윤이에게 해열제를 먹였다. 사실 해열제는 웬만해서는 잘 안 먹이는 편이다. 너무 처지거나 힘들어 하지 않으면, 열이 나는 것 자체가 면역력 강화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열이 나서 힘들어 하는 아이를 보는 ‘나’가 힘든 것만 견디면, 안 먹이고 지나가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잘 아프지도 않고 가끔 열이 나도 금방 떨어지는 게 다 이런 노력(?)의 결과라고 자부하고 있다. 서윤이는 먹였다. 그렇게 힘들어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연초에 겪은 서윤이의 ‘경련 사건’이 영향을 미쳤다. 얼마 전에도 정말 뜬금없이 서윤이가 경련하는 꿈을 꿨다. 해열제 안 먹이고 버텼다가 괜히 또 무슨 일이 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한 마음이 떡 하니 자리 잡았다. 그거 먹인다고 뭐 잘못되는 것도 아니고.
일단 먹였으니 열이나 떨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