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09(수)
긴 잠을 자고 나니, 몸은 훨씬 나아졌다. 오늘 아침에는 한 75% 정도. 그래도 아프긴 아픈 건지, 소란스러운 아내와 아이들의 소음에도 늦게까지 잠을 잤다. 역시나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아빠. 어때여? 좀 괜찮아여?"
"어. 많이 나아졌어"
방에서 나오는 나를 향해 소윤이가 가장 먼저 질문을 던졌다.
"아빠아? 아빠아?"
"어. 시윤아. 아빠 괜찮아"
"아빠아아"
그다음은 아들.
"여보. 좀 어때? 괜찮아?"
"어. 이제 거의 정상이야"
"진짜? 다행이네"
아내는 아침으로 떡만둣국을 끓였다. 함께 앉아 한 그릇을 비운 뒤 잠깐 소파에 앉았는데 약간 힘겨웠다.
"소윤아. 아빠 체온계 좀 갖다 줘"
"아빠. 내가 재 줄게 여"
"그래"
"어. 3.7.8"
"이쪽은?"
"이쪽도 3.7.8"
정확히 표현하면, 몸에서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 숨 자고 일어나면 싹 나을 거라고. 약을 먹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여보. 나 한 숨 자고 나올 게"
역시나 자면서 땀이 삐질삐질 흐르는 게 느껴졌다. 자다 보니 아내와 아이들의 소리가 들렸고, 눈을 떠보니 다 방에 들어와 있었다. 시윤이를 재우려는데 소윤이가 따라 들어와서 방해하는 소리와 그런 소윤이를 다그치는 아내의 소리에 잠이 깼나 보다.
"소윤아. 아빠랑 나가자"
거실에 혼자 있는 것만 아니면 상관없는 소윤이는 흔쾌히 나와 함께 거실로 나왔다.
"소윤아. 아빠가 아무것도 못 놀아주는데 그래도 좋아?"
"그래도 혼자 있지 않고, 아빠랑 같이 있으니까 좋아여"
그러고 보니 몸이 또 한층 좋아진 게 느껴졌다.
"소윤아. 아빠 체온 좀 재볼까?"
"아빠. 내가여. 내가"
"그래. 재 줘"
"어. 3하고 6하고 5"
"이쪽은?"
"이쪽도 3하고 6하고 8"
"소윤아. 아빠 이제 거의 다 나았나 봐"
"그래여? 다행이다"
천만다행이다. 하루 사이에 이렇게 회복된 게. 몸이 먼저 알아차리는지 슬슬 집안일에도 반응하기 시작했다.
시윤이를 재우러 들어간 아내가 오래도록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방 안에서는 계속 시윤이 소리도 들렸다. 아마 안 자고 버티는 것 같았다.
"소윤아. 아빠가 들어가야겠다"
아내를 밖으로 불러내고 내가 방으로 들어갔다.
"암마아. 암마아아아"
"아니야. 엄마는 이제 나갔어. 시윤이가 엄마 있을 때 안 잤잖아"
"으아아아앙. 엄마아아아아아아아"
"이제 아빠랑 잘 거야. 얼른 코 자"
"으아아아아아앙"
그게 끝이었다. 짧게 울더니 금방 손가락 넣고 빨다가 순식간에 잠들었다. 나도 좀 더 누워 있다가 거실로 나갔다. 아내랑 소윤이는 점심을 먹으려고 준비 중이었다.
"여보. 벌써 또 점심 먹을 시간이야?"
"그러니까. 하루 종일 밥 차리다 끝난다니까"
시윤이가 잠든 점심 무렵은 평화 그 자체였다. 아내에게도, 소윤이에게도 한 시간 남짓한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윤아, 미안. 오해하지 마. 그냥 한 시간이니까 그런 거지. 영원히 너의 부재를 갈망하는 건 절대 아니니까.
쉬는 시간의 끝을 알리는 요란한 종소리처럼, 까랑까랑한 울음소리를 내며 등장한 시윤이와 함께 본격적인 오후가 시작됐다. 시윤이는 눈을 뜨자마자 점심을 먹었고, 그 이후에는 모두 함께 밤파티를 열었다. 아내가 밤을 삶았는데, 소윤이랑 시윤이 모두 어찌나 잘 먹는지. 한참 동안 아내는 밤을 까고, 두 녀석은 정신없이 받아먹었다.
기력을 많이 회복한 나의 모습에 아내는 안도감을 느끼며, 얘기했다.
"이따 어디 카페라도 나갔다 올까?"
"그래. 그러자"
밤파티를 마치고 나서 집을 나섰다. 동네로 갈까, 아니면 차 타고 갈까라는 나의 물음에 아내는 차를 타고 가자고 했다. [인스타에서 핫한 맛집과 카페 찾기]를 특수 능력으로 보유하고 있는 아내는 오늘도 새로운 곳을 찾아냈다. 놀라운 건 아내가 찾아내는 곳이 늘 만족스럽다는 거다. 오늘 간 카페도 마찬가지였다. 커피 맛도, 분위기도 아주 좋았고, 애들하고 함께 하기에도 적당한 곳이었다.
아내는 어제처럼 [먹고 싶은 것]에 대해 묻지는 않았지만, 대신 [고기]라는 정답을 가지고 있었다. 저녁때 애들한테는 권사님이 사주신 소고기를 구워주려고 했는데, 아내는 계속 나에게도 고기를 먹으라며 집에 가는 길에 좀 더 사가자고 했다. 고기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아내가 그렇게 먹으라고 하니 그러겠다고 했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니 집에서 고기 먹고 치우고 하는 게 번잡스러울 것 같아서, 난 정말 고기 안 먹어도 된다고 했다. 아내는 그럼 햇김에 김치랑 참치 넣고 김밥 싸주겠다고 하길래 그것도 좋다고 했다. 집에 거의 다 왔을 때쯤, 아내가 다시 얘기했다.
"여보. 안 되겠어. 그냥 고기 사서 가자"
"왜?"
"그냥. 아쉬워서 안 되겠어"
결국 집 앞에서 삼겹살 한 근을 사 가지고 들어갔다. 아이들한테는 소고기 구워주고 나랑 아내는 돼지고기를 구워서 먹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내는 나에 비하면 아주 소량을 먹었고, 나는 소고기와 돼지고기 모두 먹었다. 누군가 오늘 나를 처음 만났다면 그 누구도 어제 페라미플루를 맞았다고 상상하지도 못했을 거다.
소윤이랑 시윤이는 오히려 잘 안 먹었다. 평소에는 고기라면 아무리 입맛 없어도 잘 먹더니, 오늘은 신통치 않았다. 이 녀석들이 고기가 자주 오르니까 귀한 줄 모르고 이러나 싶었다. 역시, 결핍이 없는 게 결핍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아빠. 졸려여"
소윤이는 요즘 저녁 먹을 때 이 말을 자주 한다. 진짜 졸리기도 하고, 저녁 먹기 싫다는 우회적 표현이기도 하고.
"그래도 먹어. 졸린 건 핑계가 될 수 없어. 소윤이가 낮잠 안 자서 졸린 거잖아"
"그래도여"
"졸린 게 싫으면 낮잠 자면 돼. 졸려도 저녁은 감사히 먹어. 얼른 먹고 자면 되니까"
시윤이는 한두 번쯤 일부러 울렸다. 이놈, 이놈 해가면서. 막 울먹거리다가 울음 터뜨리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하고, 그런 다음 내가 안아준다고 하면 또 쭐래쭐래 와서 안기는 게 좋아서. 아무 명분 없이 두 번 정도 그렇게 울렸다.
시윤아. 미안.
저녁에 나갔다 오기도 했고, 고기도 구워 먹은 덕분에 평소보다 조금 늦게 취침이 시작됐다. 아내가 애들을 다 재우고 나온 게 9시 30분이었다. 대충 어질러진 집을 치우고 설거지를 했다. 내일부터는 출근도 하기로 했다.
여보. 나 이제 끝났어.
다시 정상인 강지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