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10(목)
아내는 아쉬워했다. 나의 출근을. 나의 쾌차는 반겨 마다하지 않았지만. 페라미플루의 효능으로 공짜로 얻은 듯했던 1.5일 정도의 평일 휴가(?) 느낌의 이틀이 지나고 찾아온 출근의 아침을 안타까워했다. 소윤이랑 시윤이는 털털하게 현관문 앞에서 나란히 손을 흔들었다
"아빠. 이따 만나"
"아빠아. 안냐앙"
다행히 몸이 다시 안 좋아지는 증상은 없었고, 차곡차곡 원래의 몸상태를 찾아가는 느낌이었다. 꼬박꼬박 약을 챙겨 먹으며, 어쩌면 30 중반에 입성했다는 걸 알리는 몸의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야 젊은 게 무기라고 막 굴려도 아무렇지 않았다지만, 이제는 그러면 안 되는 나이가 된 건가 싶은 생각도 들고. 누군가가 보기에는 여전히 새파랗게 젊은 나이겠지만.
잘 지내고 있을까 걱정하던 차에 전화가 왔다. 아침을 먹고 있다면서. 다들 괜찮아 보였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났을 때, 다시 전화가 왔다. 영상통화로. 시윤이는 자고 있는지 안 보였고, 소윤이는 김밥(막 만든 간편김밥)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정말 맛있고, 즐겁게.
"아빠. 좀 어때여?"
"어. 아빠 괜찮아"
"이제 안 아파여?"
"어. 거의 안 아파"
소윤이는 가끔 진심이라고 오해(?)할 만큼 진지하게, 마치 어른인 것처럼 나의 안위를 걱정하곤 한다. 오늘 새벽에는 바지에 오줌을 조금 쌌다길래 화장실에 데리고 가서 마저 소변을 보게 하고, 바지를 갈아 입혔다. 그러고 나서 다시 방에 들어와 소윤이는 바닥에 눕고 난 매트리스 위에 누웠다. 잠깐 휴대폰을 보며 발의 굳은살을 만지작거리며 뜯었더니, 소윤이가 한소리 했다.
"아빠"
"어?"
"뜯지 마"
"왜?"
"아프잖아. 그만 뜯고 자"
퇴근하기 20분 전쯤 다시 전화가 왔다.
"아빠. 지금 뭐 해여?"
"아빠 일 하지"
"언제 올 거에여?"
"어. 조금 이따가"
"어. 지금. 지금 긴 바늘이 8에 가 있는데 어디 가면 올 거에여?"
"음. 한 바퀴 돌아서 다시 8에 갈 때쯤에?"
"알았어여. 이따 만나여"
집에 들어섰더니 소윤이만 아기 의자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고, 시윤이는 바닥에 내려와 놀고 있었다. 둘 다 기분은 좋았다.
"시윤이는 왜 밥 안 먹어?"
"주긴 했는데, 잘 안 먹었어"
시윤이는 날 보더니 흡사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며(꼬리는 없었지만) 다리 춤을 붙잡고 엉거 붙었다. 거기에 최대의 경쟁자이자 (시윤이 입장에서는)방해자인 누나는 아기 의자에 고립되어 있으니 완전히 자기 세상이었다. 그대로 안아서 던지고, 돌리고 놀아주니 좋다고 깔깔댔다. 아기 의자에 앉은 소윤이는 함께 웃더니, 역시나 얘기했다.
"아빠. 나도 밥 다 먹으면 똑같이 해주세여"
소윤이가 식사를 마치고 내려오자 시윤이는 바로 밀려났다. 물론 난 기회균등의 원칙을 철저히 적용하기 때문에, 항상 번갈아 가며 탑승(?)의 기회를 주긴 하지만. 아내가 어제 먹고 남은 삼겹살을 넣고 김치볶음밥을 해놨길래 같이 먹었다. 아내랑 나랑 안아서 저녁 먹는데 강시윤이 막 아내 무릎 위를 올라오고 그러길래, 또 무섭게 이놈, 이놈했더니 일자 입술을 만들며 울더니 내려갔다.
"시윤아. 엄마, 아빠 밥 먹을 때는 밑에서 기다려. 알았지?"
"데에"
밥 다 먹고 나서 조금 더 놀아주고, 씻겼다. 오늘도 애들 재우는 건 아내가. 아직 난 마스크를 쓴 바이러스 살포자 신분이니까.
퇴근하는 길에 아내가 좋아하는 동네 케이크 가게에서 딸기 생크림 케이크 한 조각을 사고, 꽃 집에 들러 망고 튤립이라는 꽃 한 송이를 샀다. 남편 병간호하느라 수고했다는 게 명분이었다.
월요일에 장모님이 오셨을 때, 소윤이가 장모님한테 꽃 사달라고 그랬더니 장모님이 또 몇 송이를 사주셨는지 집에 꽃이 있었다. 별로 싱싱하지도 않은 데다가 소윤이가 억지로 졸라서 받은 꽃이라 아내에게 천대받고 있었다. 아내는 꽃들을 정리해 물컵에 담아 놓으면서도 그리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기념일 때 사려면 크게 사야 하니까 돈도 많이 들지만, 이렇게 갑자기 훅 줄 때는 한 송이로도 큰 효율을 누릴 수 있다. (아내는 일기를 안 쓰니까 이런 얘기를 할 수가 없으니, 이런 건 친절히 내가 직접 생색질)
애들 재우고 나온 아내에게 차에서 뭐 좀 가지고 올 게 있다고 말하고 차에 가서 꽃과 케이크를 가지고 왔다.
"헐. 뭐야?"
"어. 나 병간호하느라 수고했으니까"
"뭘. 수고해. 난 진짜 여보 있어서 좋았는데"
주일날 하는 축구모임 1년 치 회비를 내야 하는데, 수요일에 하는 축구 모임 회비도 내야 하고. 이거 두 개를 한꺼번에 내려니 부담이고, 그렇다고 아내한테 얼른 내놓으라고 말하지도 못하고. 이번 달 용돈을 제외하고 모아둔 돈이 딱 주일 축구 모임 회비 낼만큼이라 양심적으로다가 그건 내 돈으로 해결해야겠다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오늘 케이크와 꽃을 사려고 하니까 마음 한 구석에서 회비 내고 나면 쥐뿔도 없을 텐데 뭔 케이크랑 꽃이냐고 검은 악마가 속삭였다. 나도 모르게 머리로 계산기를 두드려 보다가,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실천적 행위에 계산이 웬 말이냐 싶어 그 따위 천한 짓 접어 두고 케이크와 꽃을 샀더랬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계산하지 않으니까. 갑분삼차(갑자기 분위기 삼송의 차인표).
아이쿠야. 내가 왜 이걸 여기다 썼냐.
기왕 쓴 거 지우기도 귀찮고, 올려야지 뭐.
다른 의도는 없어.
여보.
여보.
여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