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지 않았지만 힘들었다

22.07.12(화)

by 어깨아빠

매우 이른 아침 시간에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제대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도 전인 시간이었는데 시윤이와의 쓰고 진한 시간은 이미 시작되었고, 아내는 나에게 전화라도 하지 않으면 견디기가 어려워서 전화를 했다고 했다. 양상은 비슷했다. 시윤이가 말도 안 되는 생고집과 짜증을 부리고 있었다. 상황을 들어 보니 그래도 시윤이가 극악(?)의 상황까지 치달은 건 아니었다. 시윤이의 그런 모습을 1단계는 매우 평안하고 정상적인 상태, 10단계는 갈 때까지 간 상태로 나눈다면 오늘 아침의 상황은 그래도 한 7,8 단계가 아니었을까 싶다. 요즘 시윤이에게 강조하고 있는 건 적어도 9,10 단계까지는 가면 안 된다는 거였다.


다만 아내는 시윤이의 상태나 정도와 무방하게 또 그런 상황을 마주하는 게 너무 짜증이 났나 보다. 의욕과 의지를 상실한 듯했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 향하는 말도 당연히 날이 섰고 짜증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나도 짜증이 났다. 짜증과 더불어 답답함도 느꼈다.


'왜 나한테 짜증인가. 나는 뭐 항상 받아줘야 하는 사람인가. 나는 누구한테 이런 거 하소연 하나'


싶은 생각도 들고. 아무튼 아내도 나도 감정을 배제하기는커녕 감정을 잔뜩 안고 부딪쳤다. 오늘은 통화를 하고 난 뒤에도 물론이고 그 뒤로도 한참 동안 아내의 감정을 헤아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하루 종일 개운치 않은 마음을 안고 일했다. 그렇다고 다퉜을 때처럼 말도 안 하고 자존심 싸움을 하는 건 아니었다. 다퉜을 때는 명백한 사유라는 게 존재하니까 그에 관한 시시비비를 서로 주장하는 거지만, 오늘은 그런 게 아니었다. 어찌 보면 누구도 잘못한 게 아니라 그냥 지치고 답답했을 뿐이다. 아내는 어떤지 몰라도 나는 그랬다.


아내는 함께 처치홈스쿨을 했던, 지금은 다른 지역에서 하고 있는 선생님들을 만나러 갔다 왔다. 차로 한 시간 남짓 가야 하는 꽤 먼 곳이었다. 아내는 우리 아이들은 물론이고 다른 선생님네 아이들 두 명까지 함께 데리고 갔다고 했다. 한 명은 소윤이, 한 명은 시윤이와 동갑인 아이들이라 사실 크게 손이 가는 일은 없다. 아이들끼리 다투는 일도 거의 없고. 대신 어쨌든 돌봐야 하는 아이가 늘어났기 때문에 조금 더 사방팔방으로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저녁에는 이케아에 가기로 했는데 다른 선생님 아이도 데리고 가기로 했다. 남편 분이 저녁에 없어서 독박 육아를 해야 했는데 우리가 저녁까지 먹여서 돌려보내기로 했다. 난 퇴근하고 바로 이케아로 갔다. 아이 다섯 명을 데리고 밥을 먹는 게 힘들지는 않았는데 힘들었다. 정말이다. 힘들지는 않았는데 힘들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 녀석의 민원을 해결하면 저 녀석의 민원이 들어오고, 그 민원을 해결하면 또 저쪽에서 다른 요구가 들어오고. 그 와중에 다들 밥은 어찌나 잘 먹는지. 끊임없이 채워 주고 보충해 주느라 바빴다. 거기에 자기들끼리 너무 신이 나니까 종종 너무 시끄러워지기도 했다. 그래도 감정의 동요가 전혀 일어나지 않고, 그렇게 서로 웃고 즐거워하는 걸 보면 그저 뿌듯했다. 그래서 힘들지 않았는데 힘들었다.


“여보. 애들 씻겨서 보내면 좋을 텐데”

“그럴까? 그럼?”


집으로 데리고 와서 샤워까지 시켰다. 아내가 아이들 네 명을 씻겼고 난 머리 말려주는 걸 맡았다. 다른 선생님 자녀들 머리가 너무 빨리 말라서 깜짝 놀랐다. 머리숱의 차이가 컸다. 우리 아이들이 머리숱이 그렇게 많은 줄, 오늘 처음 알았다. 머리 말릴 때마다 지나치게 힘든 이유가 있었다. 다 씻기고 나서 아내는 우리 아이들을 재우고 난 다른 선생님의 자녀들을 차에 태우고 데려다 줬다. 차로 10분도 안 걸리는 가까운 거리였다.


그러고 집에 돌아왔더니 꽤 늦은 시간이었다. 힘들지 않았지만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