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21(목)
소윤이가 교회에서 1박 2일로 캠핑을 했을 때 키즈카페(라고 하기에는 더 비싸고 규모가 큰)에 갔는데 너무 재미있었다면서 나중에 아빠하고도 꼭 같이 갈 거라고 했다. 마침 일을 쉬는 시간이 생겼고 하는 것도 없이 바쁘고 빡빡한 일정에도 거기 갈 시간을 우선 배정했다. 그게 오늘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기대가 무척 컸다. 소윤이는 시윤이이게 거기가 얼마나 재밌었는지 수도 없이 얘기했다. 덕분에 시윤이의 기대도 부풀었다. 그에 비해 언니와 오빠만 가고 혼자 남을 서윤이가 걱정이었다. 서윤이가 놀 만한 곳은 아예 없는 곳이었다.
일단 온 가족이 쇼핑몰로 출동했다. 서윤이에게 밑밥을 많이 깔았다. 가장 잘 먹히는 건 ‘언니랑 오빠는 아빠랑 가고, 서윤이는 엄마랑 데이트 하네’였다. 언니와 오빠가 들어가는 곳이 어디인지 최대한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유모차를 입구 반대 방향으로 뒀지만, 서윤이는 몸을 비틀어 가며 언니와 오빠가 들어가는 걸 봤다. 다행히 울고 그러지는 않았다. 서윤이도 나름대로 엄마와의 데이트 시간을 기대하는 듯했다.
아내는 서윤이를 데리고 갔고 난 소윤이, 시윤이와 함께 입장했다. 나도 궁금했다. 소윤이가 하도 재밌다고 하길래 얼마나 특별한지 궁금했다. 짚라인과 튜브슬라이드가 있는 게 좀 특별했다. 평일 오전이었는데도 사람이 북적북적 했다. 한 무리의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단체로 온 거였다. 그 아이들이 있을 때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타고 그랬는데, 빠지고 나니 엄청 한산했다.
아무튼 생각보다 별 거 없었다. 아마 소윤이도 그때는 여러 명의 친구들과 함께 와서 더 재밌었을 거다. 오늘도 재밌게 놀긴 했지만 처음에는 왠지 모르게 덜 흥분(?)한 듯했다. 그래도 둘이 손을 꼭 잡고 뛰어 다니는 걸 보니 엄청 흐뭇했다. 이용 시간이 두 시간이었는데 우리 자녀들답게 늦게 발동이 걸렸다. 나갈 시간이 되니 오히려 더 적극적이었다.
“소윤아, 시윤아. 재밌었어?”
“네. 너무 재밌었어여. 다음에 또 오고 싶어여”
바로 앞에 햄버거 가게가 있길래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기로 했다. 아이스크림을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딱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아내와 서윤이도 합류했다. 서윤이는 아직 웬만하면 어린이 간식(혹은 군것질)만 제공한다. 오늘은 특별히 아이스크림을 조금 줬다.
“아빠. 저는 이거 못 먹져?”
라고 말하는 서윤이의 눈빛에, 내가 졌다. 서윤이를 무릎에 앉히고 서윤이만큼이나 행복한 표정으로 서윤이의 입에 아이스크림을 넣어 줬다. 서윤이는 세상을 다 가진 표정으로 날름날름 받아 먹었다. 그러다 자기 몫으로 할당된 아이스크림을 모두 먹고 바닥이 드러나자 더 달라며 울었다. 역시 인간은 탐욕의 동물인가. 먹었던 걸 감사하지는 않고 더 못 먹는 걸 불평하다니.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매우 미안하지만 서윤이는 이렇게 해도 전혀 감정의 동요가 없다.
점심은 돈까스를 먹었다. 처음 가 보는 곳이었는데 지인에게 소개를 받았고 온라인 평점도 괜찮았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갔는데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돈까스를 좋아하는 아빠의 자녀들답게 소윤이와 시윤이도 아주 잘 먹었다. 서윤이는 가는 길에 잠들어서 유모차에 눕혀서 재웠다. 안 그래도 맛있는 돈까스가, 잠든 서윤이 덕분에 맛이 배가 됐다. 서윤이와 먹어도 맛있지만 잠든 서윤이와 먹으면 더 맛있다.
가구 쇼핑몰을 또 갔다. 서윤이는 거기 도착했을 때 깼다. 식당가로 가서 일단 서윤이 밥부터 먹였다. 돈까스 가게에서 미리 서윤이 몫을 따로 포장했다. 그럭저럭 잘 먹었다. 서윤이가 밥을 먹는 동안 소윤이와 시윤이는 둘이 열심히 놀았다. 참 희한하다. 집에서는 그렇게 티격태격하면서 밖에서는 그런 모습이 전혀 없다. 아니, 전혀 없지는 않지. 훨씬 덜 하지.
저녁에는 소윤이 교회 선생님과 소윤이의 저녁 식사 약속이 있었다. 소윤이만 가는 건 줄 알았는데 아내도 함께 가는 거라고 했다. 아내는 그 만남이 끝나고 나면 또 다른 약속도 있었다. 시윤이와 서윤이는 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고 아내와 소윤이는 곧장 다시 차를 타고 나갔다.
시윤이와 서윤이는 엄청 잘 놀았다. 죽이 척척 맞는다는 표현이 아주 딱이었다. 다투기도 엄청 다투지만 놀 때는 또 어찌나 잘 노는지. 내가 별로 신경 쓰거나 힘들 게 없을 정도로 알아서 잘 놀았다. 오늘도 시윤이와 서윤이 옆에 쪼그리고 누워서 잠시 눈을 붙였다. 잠을 보충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역시나 아이들 샤워였다. 시윤이와 서윤이를 차례대로 씻겼다. 씻기고 나니 저녁이 고민이었다. 점심이 늦어서 배가 많이 고프지는 않을 거고, 어차피 집에 밥도 없었고. 뭔가 항상 비슷한 상황인 느낌이다.
“시윤아. 빵 먹을래? 저녁으로? 잼 발라서?”
“그래여”
빵도 없었다. 시윤이와 서윤이를 데리고 집 앞 편의점에 다녀왔다. 서윤이가 입을 만한 옷을 찾지 못했다. 소윤이가 있었으면 소윤이에게 부탁했을 텐데 소윤이도 없고 그래서 그냥 아무거나 대충 입혔다. 입혀 놓고 보니 소윤이의 민소매 티셔츠 같았다. 서윤이가 입으니 원피스 같고 괜찮아 보였다. 시원해 보이기도 했고. 어차피 집 앞에 잠깐 나가는 거니 개의치 않고 입혔다.
딸기잼을 바른 식빵 두 장과 미숫가루 한 잔. 이게 시윤이와 서윤이의 저녁이었다. 아내는 소윤이 선생님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다음 약속 장소에 가기 위해 먼저 자리를 떴다고 했다. 소윤이 친구도 함께 저녁 식사를 했고, 소윤이는 아내가 떠나고 나서도 놀이터에 가서 좀 더 논다고 했다. 집에는 선생님이 데려다 주시기로 했다.
조금 놀다 오겠지 싶었는데 생각보다 오지 않았다. 시윤이와 서윤이를 먼저 재우지 않고 소윤이를 기다렸는데, 차라리 먼저 재웠어도 될 정도로 오지 않았다. 오빠와 잘 놀던 서윤이도 슬슬 잠이 오는지 자꾸 바닥에 누워서 손가락을 빨았다. 시윤이도 하품이 잦아졌다. 어떻게 된 건가 싶어서 선생님께 연락을 좀 드려 보라고 아내와 통화를 하고 있는데,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소윤이였다. 서윤이가 가장 반갑게 뛰어 나가서 맞이했다.
“언니이이이이익”
선생님과 선생님의 막내 딸(이지만 소윤이보다 서너 살 많은)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소윤이에게 들어 보니 선생님의 막내 딸이 계속 같이 놀아주고 챙겨줬다고 했다. 덕분에 소윤이도 아주 재밌게 놀고 온 듯했다. 이마와 머리카락의 경계선을 따라 눌어붙은 젖은 머리카락이, 얼마나 신나게 놀았는지를 말해 주고 있었다.
“소윤아. 땀 많이 흘렸지?”
“음, 엄청 많이는 아니지만 좀 흘렸어여”
“그래. 샤워 하자”
아주 잠깐 그냥 재울까 고민도 했지만 그야말로 고민일 뿐이었다. 요즘 같은 날씨에 안 씻기고 그냥 재우는 건 너무 비인격적인 처사였다. 시윤이와 서윤이는 미리 씻겨 놨으니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소윤아, 얼른 씻고 자자”
셋 모두 피곤했는지 금방 잠들었다. 나도 엄청난 사투를 벌이고 겨우 탈출했다. 아내는 꽤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왔다.
“여보. 출근할 때보다 더 피곤한 거 같네?”
그럴 리는 없겠지만 꼭 그런 것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