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치에 입문하다

19.01.12(토)

by 어깨아빠

일어나라며 징징대는 소윤이의 목소리를 아침부터 잔뜩 들으니 절로 짜증이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덕분에 아침부터 내면의 울화가 가득 찼고, 나도 모르게 툭툭 신경질적인 반응이 튀어나왔다. 하루 종일 조심하지 않으면 소윤이한테 또 후회할 짓을 할 것 같으니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내가 어제 얘기하기를


"여보. 치과 문 여는 시간이 9시니까 문 열자마자 갈까?"

"9시에? 가능할까?"

"뭐 마음먹으면 되는 거지"


9시에 나오긴 했다. 방에서. 아이들이 밥 먹는 동안 옆에서 기타 치며 찬양도 부르고, 찬양을 듣기도 하면서 심신의 안정을 꾀했다.


'소윤이는 아무 잘못이 없다. 그렇게 깨워도 안 일어나는 내가 문제다'


치과에 전화를 해보니 한 30분쯤 기다리면 된다고 하길래, 소윤이랑 시윤이를 데리고 치과에 갔다. 아내는 머리 감고 뒤따라 온다고 했다. 치과에 도착하니 애들이 바글바글했다.


'불쌍한 마이쭈의 피해자들이여'


"지금 접수하시면 한 시간 정도 기다리셔야 하는데 괜찮으세요?"


[전화했을 때는 30분이라면서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부질없는 말 같아서 다시 삼키고 접수를 했다. 한편에 아주 자그마하게 애들 놀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그나마 좀 힘들지 않게 기다렸다.


아내가 오고 나서도 한참을 더 기다린 후에(나중에 보니 우리가 마지막이었다) 소윤이 차례가 되었다. 소윤이한테 계속


"괜찮아. 하나도 안 아파. 무서운 거 아니야"


라고 말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떨쳐 내기 힘든 게 치과가 주는 공포인데. 소윤이는 무서운 걸 꾹 참고(정말 이를 악 물으며 꾹 참고) 무사히 진료를 마쳤다. 4-5개의 치아에 충치가 생겼고, 의사 선생님은 댐에 갇혀 있다가 방류되는 물처럼 감히 멈출 수 없는 추후 치료 과정에 대한 설명(혹은 영업)을 시작하셨다.


1. 충치가 생긴 곳은 레진으로 메우고

2. 심한 곳은 은니를 씌우고

3. 치료 시에는 '웃음가스'라는 걸 사용해서 마취를 할 거다


핵심 내용은 이거였다. 나의 의문은 이랬다.


1. 정말 꼭 치료해야 하는가?

2. 치료해야 한다면 정말 은니까지 씌울 정도인가?

3. 웃음가스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본능적 거부감)


일단 다음 치료받을 날짜를 예약해 놓고 나왔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내는, 철저한 양치에 대해 다시 한번 의지를 다지고 있었다.


"소윤아. 앞으로는 양치 열심히 하자"


사실 난 어찌 보면 양치 무용론자(?)에 가깝다. 주변에 죽자 사자 양치 열심히 하는 사람도 치아로 고생하는 사람을 참 많이 봤다. 옛 말에 오복 중에 하나가 치아 건강한 거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이건 관리와 예방으로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인 것 같다. 오히려 입냄세 제거가 더 큰 목적이다. 내게는. 아침에 소윤이랑 얘기하는데 입냄새가 많이 나면 '얘, 양치 좀 해야겠는데?' 라고 생각하곤 한다. 아내도 늘 얘기한다. 소윤이는 이가 다닥다닥 틈 없이 붙어 있어서 충치가 잘 생기는 치열이라고. 물론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아내는 표정부터 싹 바뀌면서, '그럼 이거라도 잘해야지 어쩌라고' 이런 표정을 지을 것이기 때문에 생각만 했다. 아내는 당장 집에 가서 애들 점심 먹이고 난 뒤부터, 바로 치실을 동원한 열혈 양치를 시작했다.


소윤이 치료는 일단, 아내 친구의 엄마가 간호사로 일하는 곳이기도 하고 아내가 젊었을 때부터(헐. 지금도 젊지만) 다녔던 치과에 한번 더 물어보기로 했다. 애초에 거기로 가려고 했는데, 소아 진료는 안 한다길래 동네로 간 거였다. 오늘 소윤이의 태도를 보니 일반 치과에 가도 전혀 무리가 없을 것 같아서 한번 더 물어보기로 했다. 기왕 치료받는 거 바가지도 안 쓰고 실력 좋은 분한테 받으면 좋으니까.


진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서 아이들 점심을 샀다. 주먹밥과 만두를 샀다. 20여분 남짓한 시간에 시윤이는 잠들었다. 낮잠 시간을 좀 지나기도 했기 때문에 그대로 재우려고 방에 눕혔다. 아내가 시윤이가 쓰고 있던 모자를 벗겨 주겠다고 들어가서는 시윤이를 깨웠고 시윤이의 낮잠은 그걸로 끝이었다. 뭐 그리 슬프지는 않았다. 어차피 밥만 먹고 또 나가야 하니까.


그 후에 부모교육을 받으러 가야 했고, 부모교육 후에는 신림동(내 엄마, 아빠 집)에 가기로 했다. 잠시 틈이 나는 동안 아내는 설거지를 하고, 난 어질러진 집을 치웠다. 집안일의 미스터리인데, 아무리 시간이 많이 남았어도 일단 시작하면 시간이 부족해지는 건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오늘도 굉장히 빠듯하게 출발했다.


나의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난 독감에서 완전히 자유했지만 독감균은 여전히 내 입과 코를 통해 전파되고 있을 수도 있었다. 다른 아이(아기)들도 함께하는 부모교육 장소에 내가 나타나면 내심 불편해하는 부모들이 있을 수 있으니, 난 데려다 주기만 하고 근처 카페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절대 나의 자유시간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다. 독감균의 전파를 미리 조심하는 차원이었다.


"소윤아. 오늘도 가서 욕심쟁이처럼 굴지 말고, 엄마나 다른 집사님들 말 잘 듣고. 알았지?"

"네에"


"시윤이도 엄마 말 잘 듣고. 알았지?"

"응"

"네 해야지"

"데에"


아내와 아이들을 내려주고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오늘 듣는 강의가 1시간 30분짜리였다. 강의 듣고 나눔까지 하려면 2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았다. 갑자기 마음에 여유가 넘쳐났다. 난 분명히 독감균의 전파를 막기 위해 스스로 격리된 건데 괜히 즐거워지는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시윤이가 똥을 쌌다는 소식, 애들은 잘(아내를 힘들지 않게 하고) 있다는 소식, 소윤이가 아빠가 보고 싶다는 소식을 아내가 전해줬다.


2시간 30분 정도 지났을 때, 모임이 끝날 것 같다며 아내가 호출했다. 잠깐 들어가서 인사를 나누고 바로 애들을 챙겨서 다시 차에 탔다. 소윤이는 케이크가 먹고 싶다고 했지만, 케이크를 먹으면 신림동에 갈 수 없다는 해괴한 논리로 소윤이의 욕구를 억눌렀다. 물론 100% 뻥은 아니었다. 이미 늦었으니 조금이라도 빨리 신림동에 가야 소윤이가 할머니, 할아버지랑 조금이라도 더 놀 수 있으니까.


"엄마. 졸린데 눈은 안 감겨여"

"엄마. 피곤하기는 한데 잠이 안 와여"


소윤이는 매우 졸려 보였지만, 잠들지는 않았다. 낮잠까지 잤으면서, 차에 타자마자 잠든 시윤이 하고는 확실히 인생의 연륜이 다른가 보다. 평소 같았으면 시윤이는 그대로 밤잠이고, 소윤이도 어떻게든 잠들기를 바랐겠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소윤아, 시윤아. 니네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신림동이다'


시윤이는 도착하니까 딱 잠에서 깼다. 다 함께 늦은 저녁을 먹었다. 커피를 한 잔 하며 TV를 보고 있는데 엄마가 물었다.


"오늘은 데이트 안 가?"

"가야지"


이미 아내랑 어느 정도 합의를 이뤄 놓은 상태였다. 먼저 얘기하기 민망하니 멍석 깔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


"엄마, 아빠. 나가지 마"

"왜"

"엄마랑 아빠는 신림동만 오면 맨날 나가잖아"


(내) 엄마가 우리의 변호인이 되어 소윤이를 설득하셨다.


"소윤아. 엄마랑 아빠가 평소에는 소윤이랑 시윤이가 있으니까 같이 데이트를 못 하잖아. 그런데 신림동에 오면 할머니랑 할아버지한테 맡길 수가 있으니까 나가는 거야. 그러니까 소윤이가 이해해 주자"


애초에 소윤이의 푸념은 진짜 잡겠다는 의지는 별로 없었을 거다. 말 그대로 푸념일 뿐이었다. 시윤이는 잠이 덜 깼는지 기분이 별로인 것 같아서 걱정했는데, 나가는 아내와 나를 신경도 쓰지 않았다. 손 흔들며


"안냥"


한 번 하고는 다시 자기 놀이에 몰두했다.


아내랑 영화라도 볼까 했는데 마땅히 당기는 게 없었다. 뭔가 엄청 웃기거나, 막 때려 부수는 게 보고 싶었는데 왠지 잔잔하게 재밌을 것 같은 영화밖에 없었다. 아내가 와플이나 수플레 팬케이크(?)가 먹고 싶다길래 여기저기 검색해봤는데, 이미 마감시간이 임박한 뒤였다.


목적 없이 가출해서 갈 곳 없어 방황하는 청소년처럼, 차 안에서 한참 동안 머물렀다.


"여보. 어디 가지?"

"그러게. 조금 더 일찍 나왔어야 했는데"


결국 또 샤로수길. 가장 가깝고, 주차도 편하고. 샤로수길에 도착해서도 한참 동안 방황하다가 파전 집에 들어가서 한두 시간 정도 앉아 있다가 돌아왔다. 더 있을 수도 있었지만, 마주 앉은 아내가 하품을 너무 많이 하고, 눈꺼풀이 많이 많이 내려와 있었다.


애들은 곱게 잘 자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갔을 때가 애들 잠든 지 한 시간쯤 지났을 때였는데, 깊이 잠들어서 그런가 막 만져도 별 반응이 없었다. 아내는 소윤이 옆에, 난 시윤이 옆에 누워서 잠을 청했다. 시윤이의 손과 발을 가지고 장난을 쳐도 별 기척도 없이 잘 잤다.


다음부터는 조금 더 일찍, 계획을 가지고 데이트를 해야겠다. 뭔가 아까웠다. 신림동만 오면 얻을 수 있는, 어찌 보면 흔한 기회이기는 해도 아이들 없는 시간을 너무 허비하고 온 것 같다.


여보. 더 빠르게, 더 치밀하게.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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