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와 둘째의 역학 관계

19.01.13(주일)

by 어깨아빠

당연히 소윤이, 시윤이가 먼저 방에서 나갔고 아내와 나는 한참 있다 일어났다. 집에서도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아주 늦게 일어나서 (내) 엄마가 차려주는 아침을 먹고 교회에 갈 준비를 했다. 워낙 늦게 일어난 덕분에 아내가 가장 바빴다.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를 기다리게 할 수도 있다는 부담감에 엄청난 부지런을 떨었으나 기상 시간이 너무 늦어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소윤이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영아부 예배에 갈 수 있었는데, 이제 해가 바뀌어서 영아부 예배에 참석 불가능한 다섯 살이 되었다. 할머니네 교회에 가면 영아부 예배에 가서 이것저것 간식 먹는 재미가 쏠쏠했을 텐데, 아쉽겠구나. 어쩔 수 없이 어른 예배를 함께 드렸다.


소윤이는 안내 봉사를 하는 할머니 옆에 앉았고, 아내랑 나랑 시윤이는 그보다 앞자리에 따로 앉았다. 예배 중간중간 소윤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한테 들렸다는 건 다른 사람한테도 들렸다는 얘기고, 소윤이의 목소리가 꽤 컸다는 얘기다. 조용히 소윤이에게 가서 말했다.


"소윤아. 쉿. 지금 예배 시간이야. 떠들면 안 돼. 한 번만 더 돌아다니고 떠드는 모습 보이면 그때는 아빠 옆으로 와서 앉는 거야"

"네"


물론 그 이후로도 소윤이의 소란스러움은 그치지 않았다. 몇 번을 그냥 넘어갔지만, 소윤이가 크게 웃은 걸 명분 삼아 내 옆으로 앉혔다. 당연히 소윤이는 울먹거리며 앞으로는 안 떠들겠다고 했지만, 계약사항(?)을 이행했다. 오히려 내 옆에 와서는 태도가 더 좋았다. 시윤이는 크게 힘들게 하는 건 아닌데, 쉬지 않고 계속 움직이고 번잡스럽게 하고 그러는 통에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예배를 마치고 식당으로 내려가 밥을 먹는데, 밥솥이 문제가 있었다며 밥 대신 끓인 누룽지가 나왔다. 커다란 사발에 꽤 많이 담아줬는데, 소윤이는 밥풀 하나 남기지 않고 싹싹 비웠다. 시윤이도 잘 받아먹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유모차에 태운 시윤이는 거의 잠들었다. 아내가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금방 재우고 나왔다. 소윤이는 어제의 일을 잊었는지, 역시나 끊임없이 군것질을 하려고 했다. 아내는 수시로 양치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특히 사탕이나 캬라멜 같이 단 걸 먹고 나면, 바로바로 양치를 시켰다.


아내와 나는 소파에 앉아서 TV도 보고 휴대폰도 하면서 잉여로운 시간을 보냈다. 오후가 무르익었을 때, 아내에게 얘기했다.


"여보. 들어가서 한 숨 자"

"아니야. 괜찮아"


"그래. 가영아 들어가서 좀 자"

"아니에요. 어머니. 안 졸려요"


아내는 그 말을 하고 5분 뒤에 졸고 있었다.


"여보. 들어가서 자"

"아. 그럴까? 어머니 저 좀 잘게요"


아내는 방으로 들어가고, 난 여전히 소파에 앉아 NBA2K18에 몰두하고 있었다. 소윤이는 할머니랑 신나게 놀고 있었고. 잠시 후 낮잠에서 깬 시윤이가 문을 열고 나왔는데,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엄마가 보이지 않았으니까. 엄마한테 못 가게 했더니 한참 동안 우울했다. 나한테 한참을 안겨 있었는데, 결국 먹을 걸로 나한테서 떼어냈다.


저녁은 순댓국을 먹기로 했다. 내가 고기만큼 좋아하는 음식이지만 아내랑은 거의 먹을 수 없는 음식이다. 우리 식구(엄마, 아빠, 나, 동생)가 옛날부터 가는 단골 가게가 있는데 그 집 순댓국이라면 아내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내는 두 시간 넘게 푹 자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바로 순댓국 먹으러.


한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는데, 소윤이가 졸려서 잠들려고 했지만 (내) 엄마가 같이 탄 덕분에 어렵지 않게 깨울 수 있었다. 다행히 가게에 손님이 별로 없었고 동생네랑 애들까지 포함해서 총 8명의 대식구가 모두 앉을 수 있었다.


시윤이는 인생 첫 순댓국이었는데, 엄청 잘 먹었다. 고기며 내장이며 순대며 잘라 주는 족족 날름날름 집어 먹었다. 소윤이도 별로 가리지 않고 잘 먹고. 아내는 아직 힘겨워 보였다.


"그래도 먹을 만 한데?"


별로 안 먹을만해 보였는데 말은 그렇게 했다. 그러더니 덧붙였다.


"아직 이게 무슨 맛인지, 왜 먹는지는 모르겠지만 먹을 만 한데?"


먹을 만 하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는 건가. 안타깝다. 연애할 때, 신혼 때 더 가열차게 데리고 다녔어야 하는데 맞춰 준다고 파스타만 주구장창 먹으러 다녔더니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


시윤이는 지 먹을 거 다 먹고 나서는 또 내려가겠다고 막 떼를 쓰더니 갑자기


"하빠. 하빠"


하면서 할아버지를 찾았다.


"시윤아. 할아버지 아직 식사하고 계시잖아. 좀 기다려"

"아아아. 하빠. 하빠"


소윤이 때는 경험한 적 없는 적극적인 구애와 반주로 인해 적당히 기분이 좋아진 아빠는 냉큼 시윤이를 안으셨다. 시윤이는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식사를 이어 나갔다. 아빠는 시종일관 껄껄거리고, 자랑하고. 뭘 자랑하나 싶겠지만, 무릎에 앉아서 사부작 거리는 손주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나머지 식구에게 중계하셨다. 시윤이도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은지 제대로 기쁨조였다.


어제도 엄마, 아빠가 소윤이와 시윤이 선물을 샀다면서 뭔가를 꺼냈는데, 시윤이는 조그마한 타요 자동차 네 개짜리 세트, 소윤이는 썼다 지울 수 있는 책. 딱 봐도 시윤이 위주의 선물이었고, 소윤이 선물은 곁다리인 느낌이었다. 선물을 꺼냈을 때도 다들 시윤이가 좋아하는 반응에만 집중하길래, 난 일부러 소윤이한테 붙어서 신나게 호응을 해줬다. 소윤이는 말을 워낙 잘하니까 주로 감탄하거나 웃을 때가 많고, 새로운 행동과 말이 느는 시윤이를 보면 그저 귀여워하고 신기해할 때가 많다.


심지어 아내도 귀마개를 쓴 시윤이의 모습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귀엽다고 소리 지르다가 입을 틀어막았다. 그보다 조금 전에 소윤이가 썼을 때는 그만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니까.


불쌍하다. 우리 딸. 괜찮아, 아빠는 널 등한시하지 않을 게. 할머니들도 아무리 시윤이가 예뻐도 니가 아직 최고라고 그러시던데. 엄마, 아빠는 물론이고 아마 할머니,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일 거야. 그냥 니 동생이 요즘 예쁨 받을만한 때인 거지. 파주 할아버지는 모르겠는데, 신림동 할아버지는 요즘 시윤이한테 푹 빠지신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야.


집으로 오는 길에 정신없이 수다를 떨다 보니 시윤이가 잠든 걸 아무도 몰랐다. 나중에 알아차리고는 급히 시윤이를 깨웠다. 당연히 짜증을 내며 울었지만, 이번에도 (내) 엄마의 노력으로 금방 웃게 만들었다.


아내와 나는 아이들의 수면 욕구가 충만할 때까지 시간을 채우고 출발했다. 차에 탄 소윤이에게 할아버지가 만 원짜리 한 장을 쥐어줬는데, 옆에서 그걸 본 시윤이가


"아꺼. 아꺼"


하면서 자기도 달라고 난리였다. 덕분에 2만원 벌었다. 아내가.


소윤이랑 시윤이 모두 차에서 잠들었다.


아내는 엄청 맛있는 빵이 먹고 싶다며 동네의 한 빵집에 들렀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덜 맛있는 빵집에라도 들러서 기어코 빵 하나를 샀다. 내가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빵 같아 보였다. 맛도 그랬다.


아까 순댓국 먹을 때 그렇게 덜어내더니, 역시 배가 부르지 않은 게 분명하다.


여보, 다음에는 여보 좋아하는 거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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