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남편과 아빠 없는 일상으로

22.08.08(월)

by 어깨아빠

첫 출근이었다. 그동안 직장 생활을 하며 경험했던 ‘출근’하고는 많이 다른 형태다. ‘업무를 하기 위한 어떤 공간으로 가는 행위’에서 ‘일을 하기 위해 집에서 나가는 행위’로 바뀌었다고 하면 정확한 설명일까. 아내는 남편의 첫 출근을 응원하고 격려하기 위해 굳이 이른 시간부터 일어났다. 삶은 계란과 사과, 양파즙을 아침으로 준비해 줬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일어났다. 아빠가 출근하면 울 거라던 시윤이만 깨지 못하고 잤다.


오랜만(이라고 해 봐야 3-4주 정도지만)의 출근이었고, 이걸 다르게 표현하면 오랜만의 남편, 아빠의 부재였다. 아내의 상황을 걱정하기에는 내 코가 석자였다. 이전 회사에 처음 출근하던 날처럼 스트레스가 심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꽤 묵직한 긴장감은 느꼈다. 처음 접하는 일을 향한 긴장, 새로운 삶(일)의 형태를 향한 긴장,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온 듯한 긴장 등이 어우러졌다. 사람을 향한 긴장이 없는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빠의 새로운 일, 혹은 일의 형태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럴 만했다. 나도 처음이었고 나도 이해하기 어려웠으니까.


“아빠. 근데 아빠는 그럼 어디서 일하는 거에여?”

“그러게. 카페?”

“사무실은 없어여?”

“어, 없지”

“무슨 일을 하는 거에여?”

“그러게?”

“아빠. 그럼 몇 시에 와여?”

“글쎄. 아빠도 모르겠는데?”


회사에 다닐 때 보다는 집에 일찍 들어갔다. 의지(?)만 있었으면 그보다 더 일찍 들어가는 것도 가능했다. 서윤이는 아빠한테 가겠다고도 하고 아빠가 보고 싶으니 전화를 해 달라고도 했다는 얘기를 아내가 전해줬다. 듣기만 해도 어깨가 치솟고 기분이 좋아졌다. 퇴근하고 집에 갔을 때 서윤이가 가장 먼저, 박력 있게 달려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블록 놀이가 한창이었다. 바닥에 만들어 놓은 블록을 보니 꽤 몰입한 듯했다(수준급이었다).


나 스스로를 챙기기에 바빠서 예리하게 관찰하지 못했는지도 모르지만, 이사 오기 전에(회사에 다닐 때) 비하면 아내가 훨씬 괜찮아 보였다. 여전히 내가 모르는 크고 작은 위기의 순간이 많았을 가능성이 크지만, 오감의 본능이 작동해 느낀 분위기나 기운이 확연히 달랐다.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어두운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여보. 나 요 앞에 잠깐 마트 좀 다녀올게”


저녁 반찬 재료를 사러 간다고 했다. 겸사겸사 잠깐 숨을 쉬러 나가는 것 같기도 했다. 내 느낌이 틀렸을지도 모르고, 설령 맞았다고 해도 그게 ‘힘들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었다. ‘힘들었지만 버틸 만한 힘이 있었다’가 정확한 표현일 거다. 버티지 않아도 되는 변수(남편)가 등장했으니 바로 탈출을 한 거다.


그 짧은 시간에도 시윤이와 서윤이는 국지전을 계속 벌였다. 내가 보기에는 서윤이가 더 포악질을 많이 했다. 웬만하면 서윤이를 받아주는 소윤이가 서윤이를 향해 한숨을 내 쉰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언니와 오빠가 만들어 놓은 블록 조형물을 진격의 거인처럼 훼손하고 언니와 오빠가 쓰려고 하는 블록만 골라서 자기가 선점한 것처럼 행세했다. 소윤이는 한숨을 푹 쉬며


“서윤아아아”


라고 얘기하는 게 전부지만 시윤이는 조금 달랐다. 시윤이는 적극적으로 서윤이와 다퉜다. 미국과 러시아처럼 협상도 절충안도 없었다. 막무가내로 ‘내가 원하는 것’만 주장했다. 그러니 다툼이 생길 수밖에. 틈만 나면 언니와 오빠를 방해하려고 하는 서윤이를 먹을 걸로 묶어놨다. 먹을 게 다 떨어지면 다시 언니와 오빠 곁으로 간다는 게 문제였지만 이게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아내는 하루 종일 이런 상황을 수십 번도 더 마주쳤을 거다. 아내가 이전에 비해 덜 힘들어 보였다면, 거기에는 아내의 처절한 인내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나름 긴장하고 하루를 보냈는지 크게 한 것도 없는데 피곤했다. 아이들을 씻기기 전에 바닥에 누워서 쉬었는데 나도 모르게 졸았다.


“딱 5분만 있다가 씻자”


아이들을 위한 선심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위한 미루기였다. 꼭 일이 힘들어서 피곤했던 건 아니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서윤이는 매일 새벽마다 아내와 내가 자는 방으로 건너 온다. 침대로 올라오면 중간에 떨어질까 봐 걱정이 돼서 올라오지 말라고는 하는데 자꾸 올라온다. 실제로 두어 번 정도 침대 끝에서 자고 있던 걸 옮겨주기도 했다. 오늘도 내가 잠들기 전에 터덜터덜 걸어왔다. 슬쩍 다시 방으로 보내 보려고 해 봤는데 너무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여기(안방)서 자고 싶다고 했다.


“그래, 알았어. 서윤아 여기 누워”


바닥에 이불을 깔아줬다. 난 침대에 누우려고 했더니 나도 바닥으로 오라고 했다. 허리가 아파서 침대에서 자고 싶었지만 역시나 한껏 안쓰러운 표정이라 외면하기 어려웠다. 서윤이의 포슬포슬한 손을 잡는 건 언제나 좋지만 그래도 그냥 언니, 오빠와 함께 아침까지 잤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