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09(화)
어제 일을 마치고 갔던 곳이 너무 좋았다. 높고 커다란 나무가 벽과 지붕처럼 두르고 있는 곳이었는데 엄청 시원했다. 바깥은 폭염주의보인데 거기는 선선함을 넘어 서늘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얼른 소개하고 싶었다. 아내에게 점심 시간에 맞춰 나오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다. 그곳에서 함께 김밥을 먹자고 했다. 아내에게는 다소 갑작스러웠을지도 모른다. 미리 말한 게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아내는 부지런히 준비를 해서 나왔다.
작은 숲 같은 공간에서 점심을 먹고 잠시 산책도 했다. 이곳을 방문하는 많은 사람이 주로 가는 곳이 아닌 다른 곳을 걸었다(나도 불과 어제 알게 됐다). 좋은 바다 풍경이야 너무 많겠지만 이곳이 주는 독특한 매력을 느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열심히 설명하고 공감을 구했다. 어쩌면 감탄을 강요하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좋았다.
뿌듯하게도 아내와 아이들도 반응이 좋았다. 많은 사람이 생각났다. 이제는 자주 보기 어려운 옛 처치홈스쿨 선생님들과 자녀들, 지난 번에 모시고 오지 못한 부모님들, 언젠가 우리 집을 방문하게 될 누군가들. 좋아하는 모든 사람에게 소개해 주고 싶었다.
새로운 삶을 향한 불안이나 의심이 문을 두드릴 때마다 문단속을 해 주는 몇 가지 요소가 있다. 가장 확실한 건 신앙적 확신이고 두 번째는 오늘처럼 자연과 가까워진 아이들을 보고 느끼는 거다. 너무 감상적인 이야기일지 몰라도 아이들이 아파트 숲을 벗어나 산과 바다의 품으로 들어간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결정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나무와 파도를 보며 감탄의 경험을 쌓는 것이 아이들의 인생에 큰 재산이 되길 바라고 있다.
아내와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고 난 다시 일할 곳을 찾았다. 집으로 간다던 아내는 카센터에 갔다고 했다. 시원한 바람을 잊은 에어컨이 너무 괴로웠나 보다. 아이 셋을 데리고 카센터에 오는 엄마가 흔하지는 않을 거다. 아내는 거기서 꽤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점검하고 정비하고 냉매 충전하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아이들과 머물기에 적합한 장소는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히 아내의 체력 소모도 컸을 거다.
두어 시간 후에 다시 만났다. 아내와 아이들이 퇴근 시간에 맞춰 내가 있던 곳으로 왔다. 오랜만에 보는 녹초가 된 아내의 얼굴이었다. 이곳으로 이사 온 뒤에는 좀처럼 보기 어려웠는데.
저녁에는 의자를 보러 갔다. 꽤 멀리, 타 지역까지. 시윤이는 그때 푹 잤다. 서윤이는 아까 카센터에서 기다리는 동안 푹 잤고. 의자를 보러 쇼룸에 들어가서 한 20-30분 정도 있었을 거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시윤이와 서윤이가 자꾸 가구 위에 올라 가려고 하는 통에 적잖이 잔소리를 했다. 끊임없는 통제와 잔소리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부모도 피곤하게 만든다.
저녁도 먹고 왔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아마 평생 다시 안 올지도 모르는 생소한 동네에서도 아내는 맛집을 찾아냈다. 정갈하고 담백한 비빔밥을 맛있게 먹었다. 밥을 먹고 커피를 사러 갔는데 원래 아내만 내리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까지 함께 내리면 안 되냐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잠깐이니 그냥 차에서 기다리자는 나의 말을 바꾸면, 잠깐이니 내려서 구경해도 되지 않냐도 가능했다.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차에서 내리지 못하게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들어간 지 얼마 안 돼서 후회했다. 쇼룸에서처럼 시윤이와 서윤이가 너무 방방 거렸다. 조용히 시키고 가만히 있게 하느라 애를 먹었다.
“여보. 오늘 애들 샤워해야 되나?”
“아니. 오늘은 세수만 해도 되지”
아내가 아이들을 씻겼고 엉덩이도 닦아줬다. 샤워의 핵심은 ‘머리 감기’의 실행 여부다. 이에 따라 소요 시간과 노동 강도가 달라진다.
여느 날처럼 아이들을 방에 눕히고 나왔다. ‘재우는 시간’이 사라진 게 얼마 안 됐는데 오래 전부터 이랬던 것처럼 익숙해졌다. 아내와 ‘서윤이가 이렇게 혼자 자다니’라며 놀라곤 한다. 오늘은 조금 달랐다. 들어간 지 조금 됐을 때 서윤이가 약간 울었다. 나와서 얘기를 하고 그러지는 않았지만 울음 소리만 들어도 서윤이의 마음이 느껴졌다.
‘엄마랑 같이 자고 싶다’
구슬픈 울음이었다. 다행히 짧게 울고 스르륵 잠이 들었는지 조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