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07(주일)
새로 다니는 교회는 어린 아이들의 연령 구분을 따로 하지 않고 모두 한 데 묶어 아동부 예배를 드린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친구(K의 자녀)를 만날 생각에 들뜬 듯했다. 그 마음이야 십분 이해가 가지만 주일인 만큼 예배에 보내기 전에 잠시 따로 불러 얘기를 했다. ‘친구를 만나는 것도 좋겠지만 예배를 드리러 왔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다른 친구들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든 소윤이와 시윤이는 배운 대로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아빠. 아빠는 그렇게 하고 있어여?”
라는 질문을 하지 않아서 항상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서윤이는 주일에 잠드는 시간이 조금 늦춰졌나 보다. 이번 주도 예배 시간 내내 안 자다가 마지막쯤에 잠들었다. 안타깝게도 예배가 끝나고 1층으로 안고 내려와서 유모차에 앉히기 직전에 깼다. 엄청 조금 잔 거다. 잔 것도 아니다.
“서윤아. 더 잘래?”
“아니여어”
“그럼 밥 먹을까?”
“네에”
지난 주처럼 점심은 라면, 빵, 떡, 떡볶이, 주먹밥 등이었다. 서윤이는 주먹밥을 좀 줬는데 잘 안 먹었다. 아예 안 먹으면 배가 너무 고플 거 같아서 옆에 앉아서 좀 먹여줬다. 배가 좀 고파도 큰 문제 안 생기고 오히려 그래야 다음 끼니에 알아서 퍽퍽 잘 떠 먹을 텐데, 굳이 떠 먹여 주는 아빠의 심리는 뭘까. 뭐긴. 막내 딸에게 어쩌지 못하는 아빠지.
소윤이와 시윤이는 순식간에 먹고 자리를 떴다. 한시라도 빨리 바깥에 있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싶었나 보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먼저 내보내고 아내와 나는 서윤이가 다 먹을 때까지 있다가 나갔다. 나가 보니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정확히 얘기하면 공뺏기를 하고 있었는데 꽤 과격하고 폭력적인 과정을 수반했다. 공을 가진 친구를 포박하고, 조르고, 이따금씩 가격도 이루어졌다. 소윤이는 별 관심이 없었는지 멀찌감치 앉아서 다른 걸 했는데 시윤이는 같이 어울리고 싶어 했다. 유심히 보며 시윤이를 어떻게 할 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너무 과격하고 위험했다. 관계가 있는 아이들이었으면 잘 타일러서 놀이를 중단시켰겠지만 난 아직 ‘웬 거대한 아저씨?’ 정도의 관계였다. 시윤이만 불렀다.
“시윤아. 아빠가 보기에 저 놀이는 조금 위험해 보여. 그리고 다른 사람 걸 빼앗는 건 하지 않는다고 배웠지? 시윤이는? 시윤이는 저 놀이에 함께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물론 같이 하고 싶겠지만 지금은 아빠 말을 들어 줘. 알았지?”
시윤이는 아쉬워 보였지만 나름 흔쾌히 받아들이고 자리에 앉았다. 엄청 재밌는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는 것처럼 눈을 떼지 못하고 계속 구경하긴 했다.
그렇게 조금 더 시간을 보내다가 교회에서 나왔다. 며칠 전 시동이 안 걸려서 애를 먹었던 차가 오늘은 다행히도 무사했다. 아침에도, 예배가 끝나고 난 뒤에도 시동은 잘 걸렸다. 대신 다른 데서 문제가 생겼다. 에어컨이 시원찮았다. 처음에는 시원찮은 수준이었는데 나중에는 아예 냉풍의 기능을 유실한 듯 조금도 시원해 지지 않았다. 하필 날씨는 엄청 무더웠다. 잠든 시윤이만 빼고 다들 더워서 난리였다. 서윤이도
“아빠아. 너무 더어서 힘드여여어어어어”
라면서 짜증을 냈다. 그 무더위를 뚫고 20-30분 거리에 있는 곳으로 장을 보러 왔는데 휴무였다. 신혼시절 아내와 내가 살던 동네였다. 온 김에 동네 구경도 좀 했다. 물론 차를 타고. 옛 기억이 새록새록 했다. 아내와 타지에서 신혼생활을 해서 잃은 것보다 얻은 게 많다. 그때만 생각하면 마음이 꽉 찬다.
다른 곳에 가서 장을 봤다. 시윤이가 여전히 자고 있어서 아내와 소윤이, 서윤이만 내렸다. 차에서 기다리는데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멈춰 있으니 더 더웠다. 한 여름에 차에 갇히면 왜 목숨을 잃는지 알 것 같았다. 문득 시윤이가 걱정됐다. 잠든 게 아니라 기운을 잃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다행히 숨은 잘 쉬면서 잤다. 이런 걱정을 할 정도의 찜통 같은 온도였다. 시동이 문제가 아니라 에어컨부터 당장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집에 왔더니 꽤 늦은 오후였다. 아내는 집안일을 하느라 분주했다. 저녁은 가지밥이라고 했다. 아내에게 레시피를 듣고 내가 만들었다. 엄청 간단했지만 간단하다고 다 맛이 나는 게 아니다. 이제 아내도 주부 연차가 꽤 쌓여서 레시피에 포함되지 않는 ‘손맛’이라는 게 좀 생겼다. 나와 근본적인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그래도 아내가 알려 준 방법을 철저히 따라서 했더니 다행히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다만 가지의 양이 조금 부족했다. 가지를 더 많이 볶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팬이 너무 작았다. 크게 최대치였다. 내 밥 위에 얹을 가지의 양을 대폭 줄였다. 소윤이는 가지밥을 워낙 좋아하니까 많이 먹고 더 먹을 게 분명했다. 시윤이는 말캉한 가지의 식감이 싫다고 말은 해도 막상 먹기 시작하면 많이 먹을 거고. 예비 가지를 남겨 둬야 했다. 아내는 ‘아무리 그래도 그게 뭐냐’면서 더 먹으라고 했지만 난 정말 괜찮았다. K의 아내가 해 준 감자탕 국물이 아직 남아 있었다.
2주 간의 휴가(?)를 마치고 내일부터는 다시 일상으로의 복귀다. 일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먼 곳으로, 어색한 곳으로 와 버렸지만 어쨌든 출근과 퇴근이 존재하고 남편과 아빠가 부재하는 시간을 살아야 하는 건 일상이다.
“시윤아. 내일 아빠 없는데 괜찮겠어?”
“아빠. 저는 내일 울 거에여”
“왜?”
“아빠가 없으니까. 저는 앙 울 거에여”
시윤이는 고유의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얘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