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는 단데 인내가 너무 쓰다

22.08.11(목)

by 어깨아빠

아내가 시윤이를 어떻게 대하는 게 좋을지 나의 의견을 구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쉽게 말하면 ‘이 힘든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 지 모르겠다’는 말이었다. 이사 오고 나서는 처음이 아닌가 싶다. 그전에는 빈번한 일이었고.


가장 이상적인 방법을 답변으로 보냈다. 그게 안 되니까 메시지를 보냈을 텐데. 아내도 내 메시지의 의도를 알았을 거다. 아내는 이미 그럴 상황이 지났지만 한 번 해 보겠다는 답장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한참 메시지가 없다가 점심 시간 직전에 잘 지내고 있는지 물어봤다.


“휴…”


아내가 이렇게 메시지를 보냈길래 뭔가 순탄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내의 한숨은 시윤이가 원인이 아니었다. 서윤이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배변 훈련을 하는 서윤이’ 덕분에 아내가 힘들었다. 이미 팬티를 네 번이나 빨았다고 했다. 아직은 전혀 훈련이 안 된다는 얘기였다. 아무래도 아내와 나의 기대가 좀 컸나 보다. 그러고 나서는 시윤이와의 힘든 점도 얘기했다. 늘 그렇듯, 육아인을 힘들 게 하는 건 콕 집어 어떤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다. 아까처럼 가장 이상적인 답변을 전했다.


일을 마치고 집에 갔는데 아내는 안 보였다. 화장실에서 씻고 있었다. 그런가 보다 하고 싱크대로 손을 씻으러 갔는데 한 젓가락도 뜨지 못한 라면이 냄비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마치 화석 같았다. 조리가 완료된 상태에서 조금도 훼손되지 않은 채로 싱크대 개수대 위에 냄비 채로 놓여 있었다.


“소윤아, 시윤아. 엄마 무슨 일 있었어?”


나의 질문에 소윤이와 시윤이는 쉽게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렸다. 소윤이는 대놓고 동생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 같으니까 쉽게 입을 못 떼는 거고, 시윤이는 자기의 지분이 많은 일이니 선뜻 말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몇 번 더 물어 보니 시윤이는 자기가 왜 그랬는지부터 설명을 시작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아내에게도 어떤 상황이었는지 물어봤다. 아내도 아이들 앞이라 시원하게 이야기 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런 얘기를 했다.


“오늘은 나도 잘못한 게 많아서”


아내나 내가 자녀에게 자주 저지르는 잘못은 주로 ‘감정의 배설’이다. 아니면 아이들에게 그렇게 침이 마르도록 가르치는 ‘정중하고 공손한 태도’를 갖추지 못했거나. 아내가 그렇게 말한 이상 아이들에게 뭔가를 더 묻거나 훈육을 하는 건 실효성이 떨어져 보였다. 장난을 치는 듯 시윤이를 누워서 안고 얘기했다.


“아들. 왜 그랬어. 왜 엄마한테 짜증 내고 소리 질렀어. 아빠가 그러지 말라고 했잖아. 으이그”


이렇게 기록하면 내가 스스로를 너무 인간적인 아빠처럼 묘사한 것 같겠지만, 절대 그런 건 아니다. 그렇다고 인간적이지 않다는 것도 아니겠지만, 아무튼 ‘미화’는 아니다. 그냥 아내도 시윤이도 힘든 시간을 겪었을 테고 아내가 먼저 자기도 잘못이 있다고 했으니, 아주 가볍게 시윤이의 잘못을 언급만 하고 넘어가는 방법을 택한 거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아이들 셋을 데리고 나왔다. 아내에게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주는 의미로. 다이소에 가서 필요한 걸 살 겸 밤 바닷가를 산책했다. 꽤 한참 걷고 돌아왔다. 바깥 바람을 쐬는 게 아주 단순하고 원시적인 방법이지만 때로는 가장 큰 효과를 내기도 한다. 그렇게 믿고 있다. 아내에게나 아이들에게나 내가 선사할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이기도 하고.


마침 오늘 저녁에 처치홈스쿨 온라인 모임이 있었다. 난 듣지 않고 아내만 들었다. 영어 학습과 관련한 강의였지만 어떤 분이 ‘둘째와의 관계’에 관한 질문을 하셨다고 했다. 아내는 큰 위안을 얻었다. 아내만 그런 상황을 겪고 있는 게 아닌 건 물론이고, 시윤이만 그러는 게 아니라는 것도 새삼 알게 됐다. 다른 가정의 둘째도 시윤이와 비슷했다. 거기에 시윤이만의 특성도 분명했다.


“이걸 알면 뭐 하냐고. 막상 안 되는데”


아내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지만 한편으로는 누구나 그렇다. 아는 대로 다 실천하면, 난 벌써 김종국 님 이상 가는 멋진 몸의 소유자가 되었을 거다.


“여보. 그래도 이사 오기 전 보다는 좀 나아?”


아내는 명확히 대답을 하지는 못했다.


“시윤이가 그래도 위에서 보다는 나름대로 노력을 하는 게 느껴지냐는 말이야. 여보는 딱 느껴질 거 아니야”

“어, 그런 거 같아. 그때보다는 그래도 낫지”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주 조금씩이라도 나아지고 있다면 된 거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아내가 그렇게 느꼈다면 더더욱.


당장은 시윤이보다 서윤이를 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 아내에게 얘기로만 들었을 때는 ‘그렇구나’, ‘그런가 보다’ 정도였는데 내가 직접 겪으니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탄식이 터져 나왔다. 퇴근하고 나서 팬티를 몇 개를 빨았는지 모르겠다. 오줌 팬티에 똥 팬티까지.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고 했지만, 인내가 너무 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