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받고 싶다면 아이들과 함께

22.08.14(주일)

by 어깨아빠

새로 이사 온 곳은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청소를 한다고 했다. 빠지면 만 원 정도의 벌금도 있다고 했다. 집 계약할 때 전 주인이 얼핏 얘기했고 막상 이사 오고 나서는 그 누구도 알려 주지 않았다. 다만 며칠 전에, 오며 가며 확인하는 공지용 칠판에 ‘청소 8월 14일 07시’라고 적힌 걸 봤다. 눈에 띄는 건 ‘07시’ 였다. 선약 핑계를 대기 어려운 시간을 고르지 않았나 싶다. 아예 집을 비우지 않는 이상은 특별한 약속이 있기 어려운 시간이다.


아이들이 일어나지 않으면 나만 나갔다 오려고 했는데 아이들이 먼저 깨서 놀고 있었다. 난 알람 소리에 겨우 일어났고 아내는 알람 소리를 듣고도 한참을 못 일어났다. 그냥 아내는 두고 나갈까 싶기도 했는데 아내와 함께 나가고 싶었다. 뭔가 어색하고 처음인 자리에는 아내와 꼭 같이 나가고 싶다. 나에 비하면 사귐 능력치가 월등하다.


일곱 시가 되기 전에 나갔는데 이미 많은 분이 나와서 청소를 하고 계셨다. 곳곳의 상태를 보아 하니 청소가 이미 많이 진행된 정도가 아니라 거의 끝을 향해 가는 듯했다.


“고마 다 끝났는데 마 이제 나와서 뭐하는교? 들어가소 마”


정확한 받아쓰기는 아닐 테지만 대략 이런 느낌으로,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이 말씀하셨다. 경상도 사투리를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나 글로만 접하는 사람은 공격적이라고 느낄지 모르지만 전혀 그런 건 아니었다. 그래도 남은 일이 조금 있으니 어떻게든 그걸 거들었다. 자녀들을 데리고 나간 게 주요(?)했다. 어딜 가든 느끼지만, 아이들 싫어하는 어른이 없다. 특히 연세가 많으면 많을 수록. 청소하러 나오신 분이 대부분 할머니, 할아버지였다. 자녀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되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아파트에 살 때는 경험하지 못한 ‘이웃과의 무언가’였다. 여러 모로 불편하지만, 대신 해 주는 사람이 없고 직접 해야 하는 불편함이다. 나 말고도 직접 하는 누군가를 만날 기회가 되기도 하고(이렇게 써 놓으면 초특급 외향성 인간 같겠지만 꽤 짙은 내향성에 가깝다).


덕분에 하루가 엄청 빨리 시작됐다. 주일이었는데도 시간에 쫓기지 않았다. 차가 고장이 나서 교회까지 걸어 가야 했는데도 여유로웠다. 더 일찍 도착했다. 대신 입은 지 얼마 안 된 티셔츠가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다. 예배 드리는 곳은 시원해서 좋았다. 교회를 천국처럼 느끼게 하려는 하나님의 큰 그림인가.


서윤이는 자기도 언니, 오빠와 함께 예배를 드리고 싶다면서 입술을 내밀었다. 중간에 엄마 보고 싶다며 칭얼댈지도 모르고(왠지 그럴 일은 없을 것 같긴 하지만) 괜히 내가 불안하기도 해서 아예 그럴 생각을 안 했다. 서윤이는 왠지 떨어뜨려 놓는 게 잘 안 된다. 뭔가 나를 안달 나게 하고 쩔쩔매게 하는 녀석이다. 정말 어이없는 순간에 한 번씩 입원했을 때의 모습이 스친다. 내 품에 가로로 누워서 고개를 뒤로 잔뜩 젖히고 몸을 늘어뜨릴 때나 어딘가에서 서윤이가 탄 유모차를 계속 밀 때.


오후 예배도 드렸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점심을 먹고 나서 친구, 동생과 노느라 바빴다. 위층에 가서 놀았는데 다시 만났을 때는 다들 머리가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서 왔다. 소윤이는 오후 예배도 위층에서 친구와 함께 드리겠다고 했지만 아내에게 얘기해서 데리고 오도록 했다. 소윤이는 예상대로 이게 속상했는지 뾰로통한 얼굴이었다. 소윤이에게 왜 그래야 하는지 설명을 했더니 오히려 눈물을 글썽였다. 그래도 자기 나름대로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노력하는 게 보였다. 예배가 끝날 때 쯤에는 멀쩡했다.


예배가 끝나고 나서는 카페에 갔다. 세 가정이 함께 갔다. 어른은 다섯에 자녀는 일곱이었다. 작은 마당이 있는 카페라 아이들이 뛰어 놀기에 좋았다. 남편은 나 말고 한 명이 더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남편들이 실내에 앉게 됐다. 아내들은 아이들이 뛰노는 마당가에 앉았다. 밖은 더웠고 안은 무척 시원했다. 그리고 편안했다. 서윤이가 가끔씩 아빠하고 있겠다며 들어 오는 게 전부였다.


함께 저녁도 먹었다. 어른, 아이 모두 합치면 열두 명의 큰 규모였지만 적당한 식당이 있었다. 아까 카페에서의 안락했던 시간을 보답하듯 아내들은 의자 자리에 따로 앉았고 남편들은 자녀들과 함께 바닥 자리에 앉았다. 남편 둘이 아이 일곱을 보살피며 밥을 먹었다. 나만 막국수를 시켰는데 마침 내 것만 먼저 나왔다. 빠르게 흡입했다. 여기저기 챙기려면 빨리 먹는 게 차라리 나았다. 게다가 각자 막내(스스로 식사가 어려운 존재)도 챙겨야 했다.


그야말로 전투 식사였다. 난 먼저 먹었는데도 그랬다. 아이들이 딱히 말썽을 피우거나 말을 안 듣지도 않았다. 그냥 평소 먹던 대로 잘 먹었다. 조금 더 신이 나고 말이 많았다는 걸 빼면 비슷했다. 어른 둘이 아이 일곱을 챙기는 일 자체가 굉장히 바쁘고 만만하지 않은 일이었다. 버거운 듯하면서도 딱 소화 가능한 정도였다는 게 신기했다.


“와, 진짜 정신없이 먹었다”

“그쵸? 정신없긴 하네요”


한 가정은 밥 먹고 바로 집으로 갔다. 우리와 나머지 한 가정은 바닷가를 좀 더 걸었다. 조금 걷다가 아내들은 따로 떨어졌다. 아내가 은밀하게 얘기하길 아이들 몰래(?) ‘회오리 감자’를 먹으려고 그랬다는데 진짜 먹었는지는 모르겠다.


남편들은 아이들과 함께 모래밭을 걸었다. 마지막으로 마음껏 뛰라고 이 한 몸 바쳐 달리기 시합도 했다. 최선을 다해 뛰었다. 오랜만에 숨이 가빠지니 기분이 좋긴 했는데 힘들기도 무척 힘들었다. 땀도 비 오듯 흘렀다. 실컷 뛰고 헤어졌다.


잘 놀고 와서 시윤이가 또 괜한 심통을 부렸다. 입고 있던 옷을 벗으라고 했더니 안 벗겨진다면서 짜증을 내려고 했다. 짜증을 내지 말고 다른 방법으로 벗든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라고 했더니 더 심통을 내면서 자기가 하던 방법을 고수했다. 너무 피곤해서 이성적인 판단이 어려웠을 거라는 건 알았지만 참 고집스러웠다. 한 10여 분을 혼자 그렇게 씩씩거리면서 씨름하더니 결국 옷을 벗었다. 자기가 고수하던 방법으로. 시윤이를 앞에 두고 차분히 얘기했다. 뻔한 내용이었다. 시윤이도 수긍했다. 막상 일이 되고 나니 사르르르 마음이 사그라들었나. 성을 내며 안 되는 걸 붙잡고 있기 보다는 다른 방법을 시도하거나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게 더 지혜로운 거라고 얘기했다. 그러고 나서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해와 논리보다는 감성과 감정의 헤아림이 필요한 녀석이라서 그런가.


아이들을 자기 자리에 눕히고 거실 벽에 기대어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았다. 긴 하루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