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07(수)
오늘도 아침에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아내의 목소리는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받을 때부터 느껴졌다. 이곳으로 오고 나서는 정말 오랜만에 받는 전화였다.
“시윤이? 끝까지 갔어?”
여기서 ‘끝’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정의하기 어렵다. 아내와 나도 대략적인 상황으로 이해할 뿐이다. 아내가 더 이상 손을 쓰기 어려울 정도로 시윤이의 말과 행동이 나쁜(?) 상황을 이른다. 내 나름대로는 시윤이가 적어도 끝까지는 가지 않기 위해 노력(혹은 자기도 모르게) 했다면 그것도 성과라고 생각한다. 그 상황에서 당장 그걸 가지고 시윤이를 칭찬하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오랜만에 그런(?) 전화를 받으니 숨이 턱 막히긴 했다. 일단 시윤이와 통화를 하면서 상황을 좀 정리해 보려고 했다(부드럽게 권면하고 그런 건 아니었다. 엄하게 시윤이의 잘못을 짚어 주고 그만하라고 했다. 원격으로 엄하게 할 때마다 이게 맞나 싶은 의심은 끊이지 않는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 다시 아내에게 연락을 해 봤는데 정확히 어떻게 정리가 됐는지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아내는 낮부터 교회에 갔다. 오후에 처치홈스쿨 모임이 있었는데 미리 가서 점심도 같이 먹고 얘기도 나눈다고 했다. 나도 오후에는 일을 조금 일찍 마치고 교회로 갔다. 아내의 상태가 어떤지가 제일 궁금했는데 직접 봐도 아리송했다. 무척 힘들고 지쳐 보이는 건 확실했는데 아내의 정신과 마음이 어디까지 상처(?)를 입었는지는 확실하게 알기가 어려웠다. 눈이 뭔가 충혈된 느낌이었다. 그게 피곤해서 그런 건지 오늘 많이 울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두 가지 모두 원인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뭐. 그랬어요”
같은 대답만 들었다.
시윤이도 왠지 모르게 더 얌전해 보였는데, 나중에 보니 졸려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저녁에는 아빠 선생님의 모임도 있었다. 아내들과 자녀들은 두고 ‘아빠들만’ 모이는 모임이었다. 다닥다닥 붙은 테이블에 연기가 자욱하고, 왠지 소주를 잔뜩 마셔야 할 것 같은 분위기의 고깃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애들이랑 가기 힘든 곳 가죠”
이게 오늘 모임의 방향성이었다. 남자 네 명이 모여서 저녁 먹고 커피 마시는 일이 보기 드문 일은 아닌데, 우리는 굉장히 어색했다. 교회의 일이나 처치홈스쿨의 일로는 모여봤어도 이렇게 온전히 쾌락(?)을 위해 모인 적은 없었다. 고기도 먹고 커피도 마셨다.
안 그래도 일어나려고 했는데 마침 아내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모든 아내에게 전화가 온 건 아니고 ‘대표자’ 혹은 ‘대리자’의 성격을 띤 내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 혹시 몇 시쯤 오나요?”
“아 이제 가려고. 가고 있어”
아내들은 만만하지 않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교회에 모여서 함께 저녁도 먹고 자녀들도 계속 함께 놀았으니 ‘그거 별로 안 힘들지 않나’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을 거다. 일단 시간 자체가 워낙 늦은 시간이었다. 집이었다면 퇴근을 향해 달릴 시간이었는데 여전히 밖이라는 사실이 힘들었을 거다. 그만큼 아이들도 피곤했을 거고 피곤했으니 짜증이나 떼도 많았을 거고. 엄마들도 피곤했을 거고.
“여보. 다음에는 그냥 집에 가기로 했어요”
함께 모여 있는 것의 장점도 있지만 각개전투의 장점 또한 분명하다. 특히 처치홈스쿨을 하는 엄마 선생님들은 평균치 이상의 ‘나 홀로 육아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각개전투가 더 편할 때도 있다.
아내도 무척 피곤해 했다.
“애들 오늘 땀 많이 흘렸나?”
“많이 흘리긴 했는데 그냥 재울까?”
소윤이는 샤워를 하고 싶다고 했지만 정중하게 양해를 구했다.
“소윤아. 오늘은 정말 너무 피곤해서 안 되겠어. 내일 아침에 씻자. 알았지?”
무척 미안했지만, 아내가 몸도 마음도 탈탈 털린 하루였기 때문에 아내의 요구를 수용하는 게 더 우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