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하는 가족

19.01.17(목)

by 어깨아빠

아내와 아이들 모두 출근길에 동행했다. 퇴근하고 미선이네(아내 친구, 시온이 엄마)랑 밥을 먹기로 했고, 미선이네 집이 장모님 댁 근처였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미선이네와의 만남을 마치고 나면 아내랑 나만 집에 가서 자기로 했다. 애들은? 장모님과 장인어른께 맡기고.


보통 친정에 가면 소파 위를 떠날 줄 모르는 아내지만, 오늘만큼은 부지런히 움직여야겠다고 다짐하며 갔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어도, 어쨌든 애 둘을 맡기고 하룻밤을 지낼 예정인 자의 양심이랄까.


소윤이는 소윤이 나름대로 기대가 잔뜩이었다. 처갓댁 근처의 키즈카페에 가기로 했었고, 며칠 전부터 손가락을 세며 얘기했다.


"아빠. 이제 세 밤만 자면 타요키즈카페 가는 거지?"

"아빠. 이제 두 밤 남았네?"


타요카페는 가 본 적도 없으면서, 거기 가면 타요도 있고, 록이도 있고, 란이도 있고, 간이도 있다면서 시윤이한테 설명을 했다.


아침에 헤어지고 나서 아내에게 처음 소식이 도착한 건 오후 1시 30분쯤이었다.


[시윤이 재우다 또 열 받음]

[으아 진짜]


통화하며 얘기를 들어보니 자러 들어가서 거의 한 시간이 넘도록 뺀질거렸다고 했다. 말 그대로 뺀질뺀질. 오라 그러면 도망가고, 이것저것 만지면서 놀고. 아무리 봐도 우리 애들은 낮잠 하고는 연이 없는 생인가 보다.


시윤이의 낮잠이 늦어진 덕분에 키즈카페에 가는 것도 조금 늦어졌다. 소윤이도, 시윤이도 신나게 잘 놀고 있다고 했다. 아내는 피곤함을 호소했다. 본인은 키즈카페와 맞지 않는 것 같다면서. 사실 나도 그렇긴 하다. 키즈카페에 간다고 편히 쉬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뭔가 더 정신 사납기만 하고. 그래서 자주 가지 않는다.


아내와 장모님, 아이들보다 먼저 처갓댁으로 퇴근했다. 40-50분 뒤에 애들이 돌아왔다. 장인어른은 그보다 2시간 정도 있어야 도착할 것 같다고 하셨다. 약 2시간 동안 장모님 혼자 소윤이, 시윤이를 돌봐야 한다고 하니 조금 죄송스러웠다. 물론 죄송은 죄송이고, 외출은 외출이었지만.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엄마. 괜찮으시겠어요?"


라는 아내의 질문에 장모님은


"그럼. 얼른 가"


라고 답하셨다. 기계적인 문답이라는 생각을 했다. 소윤이야 이제 이별을 잘 받아들이고, 시윤이는 타고난 천성이 쿨하기 그지없으니 어려움 없이 헤어졌다.


"소윤아. 할머니, 할아버지 말씀 잘 듣고"

"네. 내일 만나여"


"시윤이도. 잘 있어"

"안냥"


미선이네 집에 가서 저녁 먹고 얘기 좀 나누고 나왔더니 10시였다. 영화라도 볼까 잠깐 고민했지만, 볼 만한 건 [말모이]뿐이었는데, 당기지 않았다. 엄청 웃기거나, 막 때려 부수거나. 이런 자극적인 게 보고 싶었다.


"여보. 뭐 하지?"

"그러게"

"지금이 7시면 좋겠다"

"그러게. 미선이네는 다음에 애들이랑 같이 만나고, 오늘은 우리끼리 놀 걸 그랬나?"


농담이긴 했지만 아쉬움이 잔뜩 밴 한탄이었다. 그 무렵 소윤이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 어디에여?"

"어. 이제 미선이 이모 집에서 막 나왔어"

"왜여?"

"어. 시온이도 잘 시간이고 하니까"

"그럼. 이제 어디에여?"

"어. 차에 있어"

"왜여?"

"이제 어디 가려고"

"어디 가여?"

"글쎄. 아직 못 정했는데. 소윤이는 뭐해?"

"이제 자려고 누웠어여. 할아버지랑"

"그랬구나. 할아버지랑 잘 자고, 우리 내일 만나자"

"엄마"

"어. 소윤아"

"지금 뭐해여?"

"어. 엄마 지금 차에 있다니까"

"왜여?"

"아. 어디 가려고 그런다고 얘기했잖아"

"어디 가는데여?"

"그냥 영화 볼까 생각 중이야"

"어디서여?"

"그건 자세히 설명하기 어려워. 이제 끊고 얼른 자. 알았지?"

"엄마"

"어. 소윤아"

"근데 뭐해여?"


이 사이클이 두 번 정도 더 반복됐다. 소윤이는 졸리기도 하고, 괜히 끊기는 싫고 그러니까 대화에는 집중하지도 못하면서 계속 영혼 없는 질문을 반복했다. 가까스로 작별을 고하고 통화를 종료했다.


일단 카페에 가서 커피를 한 잔 마시기로 했다. 잠시 숨 고르기 차원에서 들어간 것 치고는 커피도 맛있었고, 함께 시킨 피낭시에도 훌륭했다. 맛있는 커피, 훌륭한 디저트, 오붓한 분위기의 조합은 생각보다 큰 만족을 선사했다.


"여보. 이것도 좋은데?"

"그러니까. 여기 오길 잘했다"


카페에서 아내가 장인어른과 통화했는데, 애들은 아까 통화를 끊고 나서는 10여분 만에 잠들었다고 했다. 이미 그전에 30-40분을 허비했다는 사실도 말해주셨다. 애들이 잔다는 걸 확인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시간에 딱히 할 것도 없으니, 집에 가서 영화를 보기로 했다. 중간에 끊길 걱정 없이, 아주 잘 들리도록 소리를 키워 놓고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했다. 아내는 환청을 호소했다.


"여보. 자꾸 시윤이 울음소리가 들려"


두 시간 동안, 아내와 나는 아주 편안한 몸과 마음으로 영화를 시청했다.


누가 보면 그게 뭐하는 짓이냐고 할 수도 있고, 뭐하러 그러냐고 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이래야 산다. 이렇게 잠깐씩이라도 아이들과 분리되어야 살고, 또 아내와 나도 가끔씩 분리되어야 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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