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때는 둘이, 올 때는 다 같이

19.01.18(금)

by 어깨아빠

아이들의 방해 없는 평화로운 아침을 맞이했다. 아내가 여느 때처럼 고구마와 계란과 감자를 챙겨주려 했다. 냉장고에서 차디찬 밤을 보낸 고.계.감 삼총사가 등장했지만 왠지 먹기 싫었다.


"여보. 커피도 타지 마. 그냥 사 먹을래"


아내도 다시 애들이 있는 친정에 가야 하니 함께 차에 올라탔다. 사무실 근처 빵집에서 바게트 샌드위치와 커피를 사 가지고 출근했다. 물론 취식은 내가, 결제는 아내가. 그래도 출근길에 아내랑 같이 커피에 빵 사 먹으니 뭔가 신혼부부 같고 그랬다. (정작 신혼 때는 이런 적이 없었지만서도)


내가 산 바게트 샌드위치가 어떻게 먹어도 질질 흘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걸 알아차렸을 때쯤, 소윤이한테 전화가 왔다. 급히 손에 묻은 기름기를 닦아 내고 전화를 받았다.


"아빠"

"어. 소윤아"

"아빠. 아빠가 안 와서 내가 얼마나 슬펐는지 알아? 내가 얼마나 아빠를 기다렸는데"

"아. 그랬어? 이따가 아빠 퇴근하면 만나자"


어느 정도가 진심인지는 모르지만, 100% 인사치레라고 해도 이런 인사치레는 언제나 환영이다. 시윤이도 옆에서 내 목소리를 듣고 "아빠"를 외쳐댔다.


장인어른이 딸도 손주들도 당신의 퇴근 전에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소 아쉬운 눈치셨다고, 아내가 얘기하길래 하루 더 자고 오려면 그렇게 해도 된다고 말했다. 아내는 사양했다. 엄마(장모님)가 너무 힘들어 보이기도 하고 자기도 피곤하다면서.


하루도 안 빼놓고 지지고 볶는 사이면서, 고작 하룻밤 떨어져 있었다고 아이들 얼굴이 아른거리는 건 도대체 왜 그럴까. 일하면서 틈틈이 사진으로 그리움을 채우고 있는데 아내가 점심을 먹으러 오겠다고 했다. 장모님과 아이들도. 같이 일하는 형들도 다 친한 사이라 함께 먹었다. 대낮에 내 품으로 뛰어드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받는 느낌이 은근히 괜찮았다. 그리워하던 중이라 그런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밥 먹고 나서는 사무실에도 잠깐 있다가 갔다. 시윤이가 내내 내 품을 점령한 채 떠나지 않았다. 아내가 퇴근 시간에 맞춰 다시 사무실에 오기로 하고 다시 헤어졌다.


퇴근 시간 조금 전에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홈플러스에 있는데, 그냥 거기서 저녁을 먹고 집에 가자고 했다. 집에 가면 나는 금방 교회에 가야 하고, 그럼 아내 혼자 애들 밥도 먹이고 재워야 하는데 혼자 밥 차려서 먹일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아내가 시윤이와 함께 퇴근 시간에 맞춰 나를 데리러 왔다.


"시윤아. 안녕"

"아빠아"


아내도 장모님도 무지 힘들어 보였다. 뭔가 목적이 있는 외출이 아니고, 그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하루 종일 밖에서 애들하고 씨름한 이들의 최후랄까. 아, 질렸다는 표현이 가장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아내도 장모님도 다소 질린 상태였다.


하긴 우리 소윤이가 좀 그렇긴 하다. 막 떼쓰고, 드러눕고 그런 게 없는 대신에 찌릿찌릿하게 사람을 긁고 지치게 만들 때가 있다. 그나마 요즘은 말도 더 잘 통하고, 수긍의 폭도 넓어져서 한결 나아지긴 했어도 소윤이는 소윤이다. 시윤이는 '아이들의 떼'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줄 때가 많고, 힘도 세서 아내나 장모님이 완력으로 제압하지도 못한다. 이런 둘이 함께 있으면, 그야말로 환장의 콤비가 아닐 수가 없다.


아내와 나는 전혀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애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식당을 찾았다. 소윤이랑 시윤이가 특별히 더 힘들게 했다기보다, 양육자들의 체력이 모두 소진된 상태라 유난히 정신없었다.


아내는 비염 증상이 극에 달해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콧물 폭발이었고, 그로 인해 다른 모든 신체 능력이 바닥이었다. 몸이 아프거나 몸살 기운이 있는 건 아니라 다행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애들은 자지 않았고, 아내가 잤다. 자면서 자꾸 이상한 소리를 했다. 잠꼬대라고 하기에는 깊은 잠이 아니었으니, 그냥 헛소리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아무 맥락 없는, 졸다가 얘기할 때 나오는 그런 음성.


집에 도착해 간단히 애들을 씻기고 잠자리에 눕혔다. 아내도 함께 누웠다. 비염이긴 해도 어떻게 발전할지 모르니(나도 지난 독감의 초기 증상은 비염이었다) 오늘은 일찍 자라고 계속 닦달했고, 아내도 아이들과 함께 누웠다. 무려 8시도 안된 시간에.


"소윤아. 아빠 교회 갔다 올 게"

"아빠. 가지 마"

"아빠 가야 돼. 대신 내일 토요일이니까 내일 아빠랑 많이 놀자. 알았지?"

"내일 아빠 회사 안 가여?"

"그럼"

"그래여. 내일 만나자여"


"시윤이도 안녕"

"안냥"


"여보도. 푹 자고"

"알았어요"


아직 교회에 있을 때, 10시쯤,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여봉. 나는 잠들었다가 남옥 언니한테 연락 와서 잠시 깼음]


(전쟁통을 방불케 하는) 집도 치우지 말고, 놀지도 말고, 웹툰도 보지 말고 얼른 다시 자라는 나의 재촉에 아내는 그러겠다고 했다. 언제쯤 다시 잤는지, 정말 웹툰은 보지 않았는지는 모르지만.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다짐, 또 다짐했다.


'들어가서 절대 소파에 앉으면 안 된다. 바로 움직여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난장판인 집을 치울 수가 없으니까.


눈에 보이는 것보다는 심각한 상태가 아니었다. 어떤 날은 보기에는 별로 안 지저분한 것 같은데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는 날이 있고. 또 오늘 같은 날은 얼핏 보면 정말 쓰레기장 같은데 막상 치워 보면 그 정도가 아니기도 하고. 집중해서 집도 치우고, 재활용 쓰레기도 갖다 버렸다. (설거지는 미처 하지 못했다) 12시 30분쯤(오후가 아님) 내 시간이 시작됐다.


방 안에서 소윤이의 기침 소리가 많이 들렸다. 이 놈의 기침은 잊을만하면 나타나고, 잊을만하면 나타나고. 가장 걱정이 많이 된다. 소윤이한테 만성 기관지 질환이 있을까 봐. 다니는 소아과에서도, 응급으로 찾았던 대학 병원에서도 당장 큰 문제가 발견되지는 않았었는데.


소윤이의 기침 소리 덕분에 갑자기 걱정과 불안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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