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지 않는 자녀들

22.09.29(목)

by 어깨아빠

일을 하루 쉬었다. 지인의 가족과 나들이를 다녀왔다. 날씨가 엄청 좋았다. 요즘 날씨가 매일 그렇기는 하다. 1년을 기준으로, 이런 날씨를 누릴 수 있는 날이 며칠 안 될 거다. 그게 요즘이다. 어디를 봐도 푸르고 파랗고 깨끗하고. 거기에 시원한 바람까지 분다. 놀기에 너무 좋은 날씨다.


공원에서 점심을 먹었다. 각 집에서 유부초밥을 싸 왔다. 아내는 마요네즈에 버무린 양파와 크래미도 준비했다. 소나무가 많아서 바닥에는 솔방울도 많고, 이런저런 나무의 부산물이 많이 떨어져서 걸을 때마다 서걱서걱, 부스락부스락 소리가 나는 그런 곳에서 먹었다. 우거진 나무 덕분에 그늘이 많았고 옆에는 강이 흘렀다. 뉴욕을 가 본 적은 없지만 ‘센트럴 파크’가 이런 느낌일 듯했다. 아이들은 솔방울을 가지고 한참 놀았다. 서로 공격하는 건 안 되니까 아빠들에게 던지거나 동그라미 안에 넣기를 하거나.


근처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카페만 있는 게 아니라 중고서점도 있고 정원도 있고 도서관도 있고 모터스튜디오(뭐 하는 곳인지 한글로 뭐라고 적어야 할 지 모르겠다)도 있고 공연장도 있는 복합문화공간이었다. 엄청 컸다. 컸지만 허접하거나 삭막하지 않았다. 날씨의 공로가 제일 컸겠지만 공간 자체가 지닌 매력도 분명히 있었다. 카페에도 넓은 야외 자리가 있었는데 자녀들은 거기서도 여전히 뛰어 놀았다. 아무리 밖이어도 너무 시끄러운 거 아닌가 하고 걱정을 했는데 화장실에 다녀 온 지인네 가족이 안은 더 시끄러워서 바깥의 소리가 거의 안 들리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했다.


시윤이는 너무 열심히 놀다가 바짓가랑이가 부욱 찢어졌다. 이런 상황(왠지 모르게 창피한)을 싫어하는 시윤이는 곧장 아내와 나에게 왔다. 찢어진 바지는 싫으니 당장 어떻게 해 달라고 했다.


“시윤아. 근데 지금 당장 갈아입을 바지가 없잖아. 엄마, 아빠도 어떻게 해 줄 방법이 없어”


진짜 그랬다. 바지를 사는 거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바지를 사더라도 당장 가서 살 만한 곳은 없었고 카페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어디론가 이동을 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시윤이도 나의 말을 이해는 했지만 당장 바지가 찢어진 건 싫으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시윤아. 근데 잘 안 보여. 그냥 놀 때는 거의 안 보여. 괜찮아”


라고 얘기하고 시윤이를 돌려보냈는데 생각보다 속옷이 너무 훤히 보였다. 아내와 내가 막 웃는 걸 보고는 시윤이도 뭔가 눈치를 채고 왜 웃냐면서 다시 돌아왔다. 아내가 시윤이를 데리고 화장실로 갔다. 잠시 후 시윤이는 아내의 속바지를 입고 등장했다. 어찌 보면 그 모습이 찢어진 바지를 입은 것보다 더 우스웠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시윤이는 아내의 속바지를 휘날리며 다시 노는 대열에 합류했다.


카페에서 나와서 중고 서점 구경도 하고 정원 산책도 하고 꽃 가게 구경도 했다. 지인네 가족이 선물이라면서 화분을 사 줬다. 지인네 남편은 아내들에게 작은 꽃다발도 선물했다. 거기서도 시간을 한참 보냈다. 자녀들은 계속 뛰면서 놀기도 했고 커다란 화면에 나오는 미디어 아트 영상을 한참 동안 보기도 했다. 아, 서윤이 똥도 치웠다. 이미 카페에서도 한 차례 분출이 이뤄져서 아내가 처리를 했었다. 밖에 나와서도 또 쌌다. 난 이번에도 붕대를 감은 왼팔을 아내에게 흔들며


“여보. 서윤이가 똥을 쌌네”


라고 얘기했다. 부러진 손목 덕분에 아내가 모든 똥을 전담하고 있다. 미안한 마음에 아내와 함께 가족 화장실로 갔다. 가도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갓 미용실에 취직한 보조 일꾼처럼 잡일만 도왔다.


그 다음 행선지는 쇼핑몰이었다. 다 그 근방이었다. 지인네 가족이 살 게 있기도 했고 우리도 살 게 있었다. 시윤이 바지. 정말 필요에 의한, 디자인이나 만족도는 거의 고려하지 않은 구매 행위가 이뤄졌다. 그래도 마음은 편했다. 일본 변태 같은 자태에서 멀쩡한 여섯 살 남자 아이로 돌아와서. 저녁도 거기서 먹었다. 낙지곱창새우 전골을 먹었는데 아이들이 먹을 게 정말 하나도 없는 곳이라 미리 양해를 얻고 김밥을 사 갔다. 아이들에게는 김밥을 주고 어른들은 ‘낙곱새’를 먹었다. 얼마나 매운지 조금씩 맛보던 자녀들이 ‘별로 안 맵다’면서 계속 더 달라고 했다. 결국 공깃밥을 몇 번이나 추가를 했고 나중에는 아예 국물에 비벼서 먹었다. 이럴 거면 아예 처음부터 같이 먹을 걸 그랬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디저트도 먹었다. 프레즐을 먹었다. 아내가 워낙 좋아해서, 연애 때부터 자주 먹었던 그 프레즐이었다. 입이 많다 보니 꽤 많이 샀다. 아내는 최대한 공평하고 정확한 배분을 위해 몸소 프레즐을 찢고 나눴다. 자녀들은 밥을 그렇게 먹고도 프레즐도 거절 없이 먹었고 여전히 틈만 나면 뛰어다녔다.


“와, 계속 뛰네. 체력도 좋다 진짜”


이쯤에는 어른들도 꽤 묵직한 피로를 느꼈다. 계속 날씨가 좋았고 가는 곳마다 만족스러워서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이 넘쳤지만, 피곤한 건 피곤한 거였다. 아이들은 전혀 피곤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마지막 행선지가 있었다. 가구 쇼핑몰이었다. 이사 오면서 조립한 옷장에 넣을 바구니 서랍을 사야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는데 마감 시간 20분 전이었다. 어디로 가야 그 제품을 찾을 수 있는지 고민하다가 바로 직원 분에게 물어봤다. 다행히 재고가 있었고 구매 절차까지 상세히 알려주셨다. 아내와 내가 부지런히 물건을 구매하는 동안 자녀들은 여전히 즐겁게 놀고 있었다.


거기서 헤어졌다. 같은 동네지만 차는 각각이니까. 집에 오니 당연히 엄청 늦은 시간이었다. 소윤이는 혼자 샤워를 했다. 오는 길에 잠들었다가 깬 시윤이는 너무 피곤해서 샤워는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안 그랬어도 그냥 간단히 씻기고 재웠을 가능성이 크기는 하다. 소윤이는 자기가 너무 샤워를 하고 싶다고 했다. 사실 오늘 하루 종일 땀을 많이 흘리긴 했다. 소윤이의 반응은 지극히 당연했다.


“여보 오늘 너무 좋았는데 진짜 피곤하기도 하네”

“맞아. 오늘 진짜 꽉 채워서 놀았다”


세 자녀를 각자 자리에 눕히고 나니, 비로소 피곤이 파도처럼 계속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