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04(화)
새벽에 서윤이가 안방에 눕겠다고 왔다가 아내에게 거절 당하고 울며 떠나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 아내가
“하아, 너네들 진짜 왜 그래”
라고 해서 소윤이나 시윤이도 있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나중에 아내에게 들어 보니 그 전에 소윤이와 시윤이도 깼었다고 했다. 그냥 깬 것도 아니고 팬티에 오줌을 싸서 깬 거였다. 바지와 팬티 갈아입히고 덩달아 깬 서윤이도 변기에 데리고 가서 오줌 싸게 하고. 그러고 누웠는데 서윤이가 한 30분 있다가 또 온 거다. 대차게 거절당할 만했다. 난 너무 깊이 잤는지 마지막에 서윤이가 왔을 때만 깨고 그 전에는 전혀 몰랐다. 아내도 아내지만 아이들도 잠을 설쳤을 텐데 오늘도 일찍 일어났다. 셋 모두. 덕분에 큰 환송을 받으며 출근했다.
아내는 힘겨운 하루를 보내는 듯했다. 일단 지난 밤에 잠을 너무 설쳐서 아침에 조금이라도 더 자고 싶었는데 이미 내가 나갈 때부터 깨어 있던 아이들이 아내를 고이 자도록 두지 않았나 보다. 아침에 통화할 때, 이미 퇴근 시간에 통화하는 듯 진이 빠진 목소리였다.
내일은 아내의 생일이다. 아내의 생일이지만 내일 시간이 자유롭지가 않다. 차라리 오늘 저녁에 공식(?) 식사를 하고 내일은 간단히 기념만 할까 싶어서 아내에게 제안했다. 아내는 고민을 해 보고 답을 준다고 했다. 한참 동안 답이 업었다. 고민할 여유도 답할 여유도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어서 그랬을 거다.
“여보. 오늘은 그냥 좀 쉬자”
비도 오는데 꾸역꾸역 나가서 저녁을 먹는 게 영 버거웠나 보다. 생일이고 뭐고 육아 퇴근이 훨씬 간절해 보였다. 대신 내일 오후 시간을 함께 보내기로 했다. 선물은 미리 주문을 했고 꽃은 오늘 샀다. 내일은 따로 준비하러 갈 시간이 없을 거 같았다. 집 근처에는 괜찮은 꽃 가게가 없어서 병원 근처의 꽃 가게에 주문했다(오늘 병원에 가서 반깁스를 통깁스로 바꿨다). 지인이 알려 준 카페도 근처길래 커피도 한 잔 사 가려고 했다. 나름대로 깜짝 선물이었다.
“여보. 어디야?”
“이제 집에 가려고”
“아 그럼 혹시 오는 길에 00000에 들러서 조각 케이크 좀 찾아와 줄 수 있어요?”
“아 알았어. 커피는?”
“커피는 그냥 집에 있는 거 마시지 뭐. 커피까지 사는 건 좀 아까워서”
“그래 알았어”
커피가 마시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그럴 때가 있나 싶지만) 참는 거였다. 불안했다. 고민하다가 마음을 바꿔서 커피도 주문할까 봐. 그럼 내가 몰래(?) 사 가는 커피까지 총 네 잔이 될 지도 모르니까.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여보. 커피는 내가 사 갈게”
집에 도착했을 때,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내에게 훈육을 받고 있었다.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걸 보니 꽤 큰 잘못을 한 듯했다. 서윤이만 거실에서 발랄하게 뛰놀았다. 꽃과 커피가 다소 무안한 분위기였다. 꽃은 오늘 밤이나 내일 아침에 더 깜짝 선물로 줄까 하다가 자녀들이 볼 때 선물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들고 왔다. 밤이나 내일 아침에 줬어도 좋을 뻔했다.
“서윤아. 언니랑 오빠 왜 혼나?”
“언니양 오빠? 아 왜냐믄 두디 따워더”
“싸웠어? 왜?”
“언니양 오빠가 ‘덩니하자아아아’ , ‘시여어. 놀다아아아’ 막 이렇게”
서윤이는 언니와 오빠의 모습을 꽤 사실적으로 재연했다. 서윤이의 증언과 재연으로 유추해 보건대 둘이 좀 다툰 듯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꽤 한참 동안 안 나왔다. 그러다가 아내가 혼자 먼저 나왔다. 둘을 남겨 두고 나오는 걸 보니 둘이 다툰 게 맞았다. 서윤이가 언니와 오빠를 따라 하는 게 너무 재밌어서 계속 언니와 오빠는 왜 싸웠냐고 물어봤더니 서윤이가 이렇게 얘기했다.
“아빠. 데가 아까 계독 얘기했단아여. 왜 계독 무더봐여어”
아내는 뒤늦게 꽃을 제대로 감상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조금 있다가 나왔다. 막 개운하게 풀고 나온 건 아닌 듯했다. 그럴 때는 그냥 둬도 된다. 시간이 약이 되니까.
통깁스로 바꿨더니 왼팔의 활용도가 더 떨어졌다. 손가락의 가동 범위도 조금씩 줄었다. 저녁 반찬에 갈치가 있어서 좀 발라 주려고 했는데 아내가 말렸다.
“여보. 그거 한 손으로 하기에는 어려울 거야. 그냥 내가 할게”
잔가시가 많아서 양손으로 섬세하게 발라 줘야 했다. 아이들에게 줄 건데 한 손으로 대충 했다가는 큰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발라 주기는커녕 아내가 발라 주는 걸 받아 먹어야 하는 처지였다.
그래도 미역국은 끓이는 게 가능했다. 오른팔로 육수도 내고, 오른팔로 미역도 불리고, 오른팔로 미역도 볶고, 오른팔로 간장도 넣고, 오른팔로 마늘도 넣고. 지퍼락을 열어야 할 때만 소윤이의 도움을 받았다. 아내가 아이들을 씻기고 잘 준비를 하는 동안 미역국을 끓였다. 잘 끓인 미역국 한 솥보다 잘 씻기는 왼팔이 더 반가웠을지도 모르겠다.
“얘들아. 내일 아침은 정해졌다. 미역국밥이야”
생일이라고 미역국 먹는 게 반가운 게 아니라, 아침에 뭐 먹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돼서 반가울 거다. 아침부터 지칠 수밖에 없는 육아 일상에 생일이라고 신이 나겠냐마는 이유가 무엇이든 미역국을 보며 부디 반가운 생일 아침을 맞이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