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의 추억과 함께 한 아내의 생일

22.10.05(수)

by 어깨아빠

아내의 생일이다. 오전에 함께 예배 드리고 오후에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예배 드리기 전까지는 교회에서 일을 했다. 예배 시간이 다 되었을 즈음 교회 앞으로 나가서 아내와 아이들을 기다렸다. 와야 할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길래 아내에게 전화를 했는데 안 받았다. 직감했다.


‘아, 뭔가 돌발 상황이 생겼구나’


잠시 후 아내와 통화를 했다. 역시나 아내는 갑자기 생긴 돌발 상황(시윤이 훈육)이 이제 막 끝났다고 했다. 예배 시간이 거의 임박했을 때였다. 생일이라고 크게 달라지지 않는 아내의 하루가 안타까웠다. 아내와 아이들은 예배가 시작되고 나서도 한참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 안 오지’라고 생각하다가 나중에 깨달았다.


‘아, 3층으로 올라갔구나’


아내는 꽤 늦게 왔다고 했다. 나와 통화했을 때 정말 아무런 준비도 안 한 상황이었다고 했다. 평소 같았으면 용모 단장이고 뭐고 그냥 나왔을 텐데, 생일이니(밖에서 밥을 먹기로 했으니) 시간을 들여 준비를 했다고 했다.


원래 오후에는 아내와 아이들은 처치홈스쿨 기도회에 참여해야 한다. 오늘은 특별히 양해를 구하고 빠졌다. 신혼시절에 종종 갔던 식당으로 갔다. 10여 년 전에 갔던 곳인데 여전히 운영 중이어서 신기했다. 과연 그때 그 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지 궁금했는데 여전했다.


“와, 소윤아, 시윤아. 여기 엄마, 아빠가 신혼 때 자주 오던 곳인데”

“그때 저도 있었어여?”


소윤이가 자기 존재 여부를 물을 정도로 오래 전이었다는 것도 신기했다. 서윤이와 함께 먹기에도 공간이 괜찮았다. 여러 모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근처에 분위기 좋은 카페가 많았다. 지인이 몇 군데 카페를 추천해 줬다. 모두 아이들과 가기에 굉장히 부담스러운 곳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서윤이와 가기에. 다행히 서윤이는 잤다. 교회에서 식당으로 갈 때 엄청 졸리고 잠들 뻔했는데 필사적으로 깨웠다. 소윤이와 시윤이까지 합세해서. 나중에 따로 밥 먹이기도 어려웠고, 밥 먹고 카페에 가서 자면 훨씬 좋으니까. 서윤이는 우리의 기대에 부응했도 카페에서 계속 잤다. 서윤이가 주는 생일 선물이었다. 서윤이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


시윤이가 답답해 했다. 먹을 걸 다 먹고 나니 할 게 없다면서 밖에 나가고 싶어 했다. 그럴 만 했다. 정말 아무것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어야 했으니까. 날씨가 좋았으면 시윤이가 가고 싶어 했던 공원에 갔을 텐데, 비가 추적추적 내리다 말다를 반복했다. 간단하게 그 동네 산책을 했다. 서윤이는 카페에서 나오자마자 깼다.


한살림에 들러서 장을 보고 아주 큰 문구점으로 갔다. 시윤이가 아직 엄마의 선물을 못 샀다고 했다. 작은 수첩과 펜이 시윤이의 선물이었다. 소윤이는 이미 선물을 준비해 놔서 여유롭게 자기가 살 걸 구경했다. 소윤이는 문구점에 가면 엄청 신이 난 게 느껴진다. 꼭 아내 같다. 소윤이는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메모지를 하나 샀다. 빵 가게에 들러서 작은 롤케이크도 하나 샀다. 집 근처 카페에 들러서 예쁜 초도 샀다. 초는 소윤이가 그걸 꼭 사야 한다고 했다.


점심 먹은 게 아직 다 소화되지 않아서 저녁은 냉동실에 있는 빵을 구워 먹기로 했다. 그 전에 롤케이크에 초를 꽂고 아내의 생일을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각자 준비한 선물과 편지를 전달했다. 서윤이도 편지 같은 쓰레ㄱ…아니 쓰레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편지인 찢긴 종이를 건넸다.


아내는 생일 축하를 받고 교회로 갔다. 성경공부 모임이 있었다. 집이 엉망이었다. 아내가 사라지니 갑자기 피곤함이 몰려왔다. 차근차근 하나씩 치웠다.


“서윤아. 쉬 한 번 하자. 펭귄(변기)한테 가”


서윤이는 변기에 거의 다 가서 폭포수처럼 오줌을 쏟아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수습을 했다. 다 마치고 다시 하던 정리를 마저 했다. 아이들을 씻기고 잘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작은방에서 시윤이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아아. 서윤이 쉬”


15분도 안 돼서 또 오줌을 싸다니. 서윤이가 한창 뺀질거리며 말을 안 듣고 장난을 치던 중이었다. 방에 갔을 때도 언니와 오빠의 침대를 칫솔로 막 문지르고 있었다.


“강서윤. 누가 그렇게 장난치라고 했어. 어? 아빠가 칫솔 갖다 놓으라고 했지!”


연달아 방출한 오줌을 향한 분노를 다른 곳에 감춰서 내보냈다. 지나고 나니 조금 미안했다. 나보다 나은 서윤이는 언제 서러웠냐는 듯 금방 괜찮아졌다.


아이들을 모두 재우니 피로와 허기가 동시에 몰려왔다. 아까 아이들이 빵을 먹을 때, 아내와 나는 제대로 안 먹었다. 남은 집 정리를 하고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내일 발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제 사 온 꽃다발 사이에 숨겨뒀다.


성경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아내에게 배가 고프다고 했더니


“치킨?”


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오늘만큼은 빼지 않고 바로


“그럴까?”


로 화답했다. 아내의 생일은 아주 좋은, 자주 우려 먹는 명분이었다.


“생일이잖아”


탐욕의 한 시간이었다. 치킨을 다 먹고 약을 먹었다. 손목 때문에 먹는 건데 약이 독한지 위장약도 들어있다.


“여보. 근데 약 때문에 위장이 상하는 것보다 이 시간에 치킨 먹는 게 더 상하게 할 것 같은데?”

“그러게”


다 먹고 나니 허기와 자리를 공유했던 피로가 홀로 무겁게 내려앉았다. 왜 그렇게 피곤했는지 몰랐는데, 하루를 되짚어 보니 그럴 만했다. 짧은 시간에 꽤 밀도 있게 움직였다. 보통 생각하는 전형적인 낭만은 별로 없었지만, 자녀들과 기도했던 것처럼 아무 일 없이 평범한 일상을 보낸 것 자체가 우리의 낭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