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식이 비소식

19.01.20(주일)

by 어깨아빠

내가 늦게 일어났다. 아주 많이. 덕분에 예배에도 늦었다.(늦지 않고 가는 게 더 예외가 된 지 오래지만) 아침을 먹으며 소윤이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소윤아. 오늘도 새싹꿈나무 울면서 갈 거야?"

"응"

"그래? 아빠 생각에는 이제 소윤이가 안 울고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가서 또 율동도 안 하고 찬양도 안 하고 가만히 있을 거야?"

"응"


이렇게 시작한 대화에 '예배의 의미'라는 다소 어려운 주제를 이어 붙였다. 어제 부모교육 강의 내용을 실천했다고나 할까.(부모교육에 가지는 않았지만, 혼자 동영상으로 강의를 듣긴 했다) 새싹 꿈나무에 왜 가는지, 그게 어떤 의미인지. 그냥 교회만 갔다 오는 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은 소윤이를 만나고 싶은데 그러려면 예배를 열심히 드려야 한다고. 이런 주제의 얘기를 소윤이에게 전할 때면 언제나 그렇듯, 이게 소윤이한테 하는 얘기인지 아니면 나 자신에게 하는 얘기인지 혼란스러웠다. 아무튼 소윤이도 이제 어엿한 5살이니 이런 고차원적(?) 메시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내랑 소윤이를 먼저 내려주고, 난 시윤이와 함께 조금 멀리 주차를 하고 걸어갔다. 아내는 소윤이를 데려다주고 먼저 본당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소윤이는?"

"잘 갔지?"

"안 울었어?"

"울었지"

"많이?"

"많이는 아니고"


강시윤은 어딜 가도 가만히 있는 시간이 현격히 줄어든 요즘의 추세를 그대로 이어 나갔다. 바닥에 내려놓고 돌아다니는 것까지 허용했지만 만족하지 않았다. 역시 인간은 탐욕의 동물이다. 만족이 없구나. 급기야 시위하듯 바닥을 기어 다니려고 했다. 그걸 못하게 하니까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울기 시작했다. 참 곤란한 게, 보통 이렇게 울면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안에서는 소란을 피우면 안 된다고 얘기한다.(못 알아듣는 척 하지만 분명히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고 나서 엄마가 있는 예배당 안으로 들어간다고 하면 반겨야 마땅한데 시윤이는 그렇지가 않다.


"시윤아. 이제 안에 들어가자?"

"아아아"

"안 들어갈 거야?"

"응"

"엄마랑 못 만나는데?"

"응"

"엄마 보러 갈까?"

"아아아"

"엄마 안 보고 여기 있을 거야?"

"응"

"안 돼. 들어가서 예배드려야지. 들어간다?"

"아아아"


억지로 데리고 들어갔다가 5분도 안 되어서 다시 퇴장했다. 손으로 밖을 가리키며 자꾸 나가자고 했다. 하아.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자모실에 가지 않고 함께 예배드리기를 해보려고 했는데, 쉽지가 않다.


결국 예배 끝날 때까지 밖에서 시윤이랑 들어가네 마네 씨름했다. 아내가 소윤이를 데리러 다시 올라가고 난 시윤이랑 먼저 식당에 가서 줄을 서고 밥을 받았다. 시윤이를 데리고 3인분의 국밥을 받을 수 있는 기술이 새로 장착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소윤이가 아내와 함께 밝은 표정으로 등장했다.


"아빠. 오늘 소윤이가 찬양도 열심히 하고, 기도도 열심히 하고, 예배도 잘 드렸대요"


아내가 먼저 상황을 전했다.


"진짜? 우와. 역시 소윤이 짱이네"

"아빠. 나 오늘 율동도 열심히 했다여"

"그래. 잘했어. 거 봐. 하나님이 만나주신 거 같아?"

"응"


소윤아. 아빠는 못 만난 것 같아. 대신 시윤이만 열심히 만났어.


잔뜩 흥이 오른 소윤이는 밥도 엄청 잘 먹었다. 다행히 시윤이도 점심은 잘 먹었다. 열심히 밥 먹고 있는 소윤이에게 일부러 속삭이듯 얘기했다.


"소윤아. 시윤이가 잠들 것 같은데. 우리 카페 갈까?"

"카페?"

"싫으면 말고"

"가자여. 좋아여"


모두의 기대와 예상대로 시윤이는 차에 타자마자 잠들었다. 소윤이는 카페에 앉자마자 거래를 시도했다. 아니, 거래가 아니지. 난 받은 게 없으니까. 아니, 거래가 맞구나. 소윤이의 애교를 봤으니까.


"아빠"

"응?"

"우리 맛있는 거 사러 갈까여?"

"엄마가 빵도 시켰대"

"아니. 빵 말고. 맛있는 거"

"아. 싫어"

"아앙. 아빠아아앙"

"알았어. 대신 단 거는 안 된다"

"네"


카페 옆 편의점에 갔다. 어제처럼 고래밥을 하나 골랐다.


"이제 가자"

"아빠. 초코 우유 먹고 싶은데여"

"안 돼. 단 건 안 된다고 했잖아"

"아앙. 아빠아아앙. 한 번만 사주세여"

"알았어 그럼"


"어. 뭐야. 소윤아. 단 건 안 먹는다며. 초코우유 골랐어?"

"아니. 아빠가 사주니까"


이런 배은망덕한 딸을 봤나.


소윤이는 내내 기분 좋게 있었다. 과자도 먹고, 빵도 먹고, 같이 큐티도 하고. 오늘 아침의 성공경험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진지하게 얘기를 전했다. '기도의 능력'에 대해서. 역시나 저 깊은 마음속에서 '너나 잘해'라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의 육아는 여기까지였다. 간만에(고작 2주) 축구하러 가야 했고, 아내와 아이들을 집에 데려다주고, 조금 같이 있다 다시 나왔다. 아내가 어제, 같은 단지에 사는 언니한테 연락해 본다길래 답장이 왔는지, 약속은 됐는지 여러 차례 물었다. 다행히 약속이 성사됐다. 한결 마음의 짐을 덜었다. 혼자 둘이랑 지지고 볶는 것보다는 둘이 셋이랑 지내는 게 여러모로 나으니까.


축구하는 세 시간 동안 연락이 한 번도 없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생각하며 축구를 마치고 돌아가려고 차에 타서 전화를 했다. 무소식이 비 소식이었다. 아내의 목소리가 매우 무거웠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공백이 매우 길고, 그 빈자리는 한숨으로 채우고 있었다. 시윤이의 매우 거센 울음소리가 배경음악처럼 깔리고 있었고.


"허어. 여보세요"

"어. 여보. 시윤이 많이 우네"

"허어. 끝났어?"

"어. 얼른 갈 게"

"허어. 그래"


부지런히 집으로 갔더니 시윤이는 여전히 거세게 울고 있었고, 아내는 벌겋게 상기된 것 같기도 하고, 넋이 나간 것 같기도 하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기도 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보. 왜 그래?"

"하아"


아내는 말이 없었다. 소윤이에게 물었다.


"소윤아. 시윤이 왜 이렇게 울어?"

"아니. 아까 수윤이 오빠네 집에서 나올 때부터 계속 우는 거야"

"아. 그래? 오기 싫다고?"

"몰라. 계속 울었어"

"소윤이는 엄마 말 잘 들었고?"

"어. 난 잘 들었지"


소윤이는 밥도 열심히 먹고 있었다. 놀러 갔던 집에서 나오겠다고 하니까 그때부터 땡깡을 피우기 시작해서, 내가 집에 돌아갈 때까지 거의 1시간 30분을 그러고 있었던 거다. 나한테 오라 그래도 안 오고, 무조건 엄마한테만 안겨 있겠다는 걸 강제로 떼어내서 안았다. 진정하지 않고 계속 난리 치길래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요즘은 시윤이가 이유 없이 울거나(하긴 이유 없는 울음은 없지. 고집을 부리거나 떼를 쓰며 울 때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신경질을 내면(놀랍게도 같은 울음인데 신경질과 분노가 묻어 있는 울음은 확실히 분간이 된다) 방으로 데리고 가서 훈육을 시도하고 있다. 안 될 것 같지만 된다. 보통은. 차분히 설명해주고 그러면 안 된다고 하면 순순히 "데에" 라고 대답하곤 한다. 오늘은 아니었다. 끝까지 자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미 눈물은 말랐는데 억지로 울음을 쥐어짜고 있었다. 거기에 졸리기까지 한 지, 울다 말고 갑자기 하품을 하기도 했다. 눈도 사정없이 비비고. 그냥 데리고 나갈까 고민하다가 버텨보기로 했다. (두 번째 육아지만, 여전히 언제가 맞고, 뭐가 맞는지 잘 모르겠다) 혼자 바닥과 매트리스를 오가며 뒹굴던 시윤이가 갑자기 매트리스 위에 누워 졸기 시작했다. 아니, 자기 시작했다. 그대로 두면 정말 밤잠을 잘 것 같길래 원래 시윤이 자리인 바닥에 옮겨 눕혔다. 그랬더니 또 깨 가지고는 빽빽 울어댔다. 오랜만에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으. 느는. 드들 즈느믄 을쯜 읎드........' (두 돌 지나면 얄짤 없다)


거실에 나갈 거냐고 물었더니 그러겠다길래, 그럼 나가서 엄마, 아빠한테 소리 지르지 말고 짜증 내지 말랬더니


"데에"


하고 순순히 대답했다. 한풀 꺾였나 보다.


거실에 나갔더니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셀셀 거리고 웃으며 장난을 쳤다. 그래. 꽁하고 있는 것 보다야 백배, 천배 낫다.


울어 제끼느라 저녁도 못 먹였다. 아니지. 지가 안 먹은 거지. 배가 고픈지 몇 번이나 밥을 달라고 했지만, 주지 않았다.


"시윤아. 니가 그렇게 울고 짜증 내느라 밥시간이 지나갔어"


울다 죽은 아이 없고 한 끼 굶었다고 죽은 아이 없다는 게 내 지론이긴 해도, 아마 시윤이가 더 크게 울고, 갈망했으면 줬을 텐데. 그러지는 않았다. 아직 소윤이만큼 안 커서 그런지 몰라도, 망각의 축복이 있는지 금방 잊고 히죽거렸다.


아내는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애들을 데리고 들어가서 재우고 싶었지만, 시윤이가 넘지 못할 산이었다. 소윤이는 어떻게든 설득하면 되는데, 시윤이는 그게 통할만 한 상황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내가 나를 배려했다.


"소윤아. 아빠는 지금 옷도 못 갈아 입고 너네 봐주셨으니까 아빠는 씻으시라고 하자. 엄마가 재워줄 게"


그렇게 아내가 애들을 재우는 동안 급히 어질러진 집을 치우고 설거지를 했다. 양심 있는 축구인의 바람직한 행동양식이랄까.


시윤이도 저녁을 못 먹여서 재웠지만, 아내랑 나도 마찬가지였다.


집 앞 새우튀김 가게에서 떡볶이와 튀김 세트를 시켰다. 배달을 시킬 수도 있었지만 내가 찾으러 갔다. 난 축구인이었으니까.


시윤아. 아빠 축구 좀 마음 편히 하자. 니가 이런다고 아빠가 다음에 안 나가지는 않겠지만, 마음은 불편하단 말이야. 시윤아 이런 말이 있어.


슬플 때 우는 사람은 삼류

슬플 때 참는 사람은 이류

슬플 때 웃는 사람은 일류


시윤아. 다음 주일부터는 일류인간이 되어 보지 않으련?


오늘 하루 종일 너 때문에 난리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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