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21(월)
오늘 홈스쿨 모임이 취소된 덕분에 차를 가지고 출근할 수 있었다. 아내랑 시윤이는 자고 소윤이만 깨서 날 따라 나왔다.
"소윤아. 아빠 이제 출근해야 돼"
"아빠. 출근하지 마"
"그건 안 되지"
"왜? 그럼 우리 맛있는 것도 못 먹고 장난감도 못 사주니까?"
"그렇지. 소윤아. 아빠 이제 가야 되니까 소윤이 혼자 거실에서 놀던가 방에 들어가서 누워 있던가 해. 알았지? 엄마 깨우지 말고"
"그럼 나 찰흙만 꺼내주세여"
"알았어"
찰흙을 꺼내 주자마자 시윤이가 깨서 나왔어.
"아빠아. 흐으"
퉁퉁 부은 눈으로 나한테 와서 안겼다. 곧이어 아내도 깼다. 결국 온 가족의 배웅을 받으며 출근했다.
아내랑 아이들은 홈스쿨이 취소돼서 하루 종일 집에 있었고 퇴근하기 조금 전에 아내랑 통화를 했다.
"여보. 뭐해?"
"어. 나 놀이터야"
"놀이터? 이 날씨에?"
"어. 그렇게 됐어"
"춥지 않아?"
"춥지. 나 시윤이 놀아줘야 돼"
"그래. 사람 있어?"
"아니. 없지"
실제로 온도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두꺼운 겨울 점퍼를 입고 나가도 바람이 불면 추운 그런 날씨에 놀이터라니. 아내의 심정이 십분 이해가 됐다. 오죽하면 놀이터로 나갔을까.
그래도 아내의 목소리가 괜찮아 보이길래, 몸은 힘들지언정 정신은 온전하다고 안심하며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여니 소윤이랑 시윤이의 모습이 보였다. 아내는 싱크대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그냥 설거지만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울고 있었다. 훌쩍거리고 있었다.
"여보. 왜?"
"흑흑흑"
왜긴 뭘 왜인가. 뻔하지.
"소윤아. 엄마 왜 울어?"
"아니. 시윤이가 계속 울었어여"
놀이터에서 들어가자고 할 때부터 울기 시작해서는 내가 도착하기 조금 전까지 줄창 울었던 모양이다. 애 둘, 육아연차 5년차나 되었으니 이런 날, 이런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니었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아는 이렇게 슬픈 일이 되곤 한다.
설거지를 하고 있는 아내에게 얼른 나가라고 재촉했다. 애들 마실 물만 끓여 놓고 나간다며 버티길래 그냥 빨리 나가라고 몰아붙였다. 부부관계 전문가들의 솔루션 같은 걸 보면, 이럴 때는 말없이 안아주면서 토닥거리고, 괜찮아 괜찮아 이렇게 하라던데. 그걸 안 해서 그런지 아내는 화장실에 가서 또 펑펑 울고 있었다.
소윤이한테 뭔가를 하라고 했는데, 엄마를 찾으며 엄마한테 해달라고 한다길래 소윤이랑, 시윤이한테 싫은 소리를 좀 했다.
"강소윤, 강시윤. 엄마 지금 울고 있잖아. 왜 우는 줄 알아? 너네가 하루 종일 너무 힘들게 하니까 엄마가 울잖아. 엄마가 우니까 좋아? 엄마가 힘들 때는 니네가 좀 엄마 말도 잘 듣고 그래야지. 어?"
요즘은 이런 상황에서 소윤이와 시윤이의 반응이 확연하게, 그리고 늘 비슷하게 갈린다. 소윤이는 서러운 듯, 눈가가 촉촉해지며 입술을 쌜룩거린다.
"아빠. 그게 아니고. 나는 엄마가 해주는 게 좋으니까 그런 거지"
시윤이는 말하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가 내 지시가 떨어지면 즉각 순종한다.
"시윤이도 의자에 앉아서 밥 먹어"
"데에. 아나. 아나(안아)"
한 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반찬 중 하나였던 삼치 가시를 발라주며 밥을 먹였다. 아내는 울음을 그치고 나갈 준비를 했다. 원래 대학생 때 알던 동생을 오랜만에 만나기로 했다가 약속이 취소됐다고 했다.
나랑 싸웠거나 소윤이한테 화를 냈을 때는 상대가 사람이기 때문에 푸는 것도 오래 걸리지만, 오늘은 아닐 거라고 예상했다. 오늘의 상대는 그저 상황이었다. 물론 시윤이가 사정없이 울어재낀 게 큰 원인이긴 했어도, 이 상황이 끝나고 기억에서 헐거워지면 아내도 금방 괜찮아질 것 같았다.
아내는 소윤이, 시윤이, 나에게 차례로 인사를 건네고 나갔다. 시윤이는 아내를 그렇게 슬프게 만든 애가 맞나 싶을 정도로 말도 잘 듣고 기분도 좋았다. 다 씻기고 자러 들어가려는데 소윤이가 얘기했다.
"아빠. 우리 딱 10분만 놀자여"
"10분? 그래"
"아빠. 몸으로 놀아주세여"
내 몸을 타고 조금 놀더니, 소윤이가 숨바꼭질을 하자고 했다. 저번에 숨바꼭질할 때, 소윤이가 이제 시윤이의 방해에 짜증을 낸다는 걸 알아차렸다. 소윤이랑 내가 번갈아 가면서 숨기도 하고, 찾기도 하는 동안 시윤이는 내 짝꿍으로 데리고 다녔다.
"시윤아. 누나 찾으러 가볼까"
"시윤아. 쉿. 우리 숨자"
100%는 아니어도 시윤이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따라줬다. 무엇보다 숨어 있는 누나를 자기가 먼저 찾아서 누나의 기분을 망치는 일은 막을 수 있었다. 모두가 즐거운 숨바꼭질을 마치고 기분 좋게 자리에 누웠다. 해피 엔딩이었다. 아내는 아니었겠지만.
아내는 일산 쪽으로 가서 비빔밥과 수플레 케이크를 먹고, 카페에 있다가 돌아왔다. 비빔밥과 수플레 케이크를 한 가게에서 같이 팔았다는 것도 신기했고, 그걸 다 시켜서 먹었다는 아내도 신기했고.
나의 예상 혹은 바람처럼, 아내의 눈물과 슬픔은 말라 있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시윤이 덕분에 한바탕 했구나.
아빠가 그렇게 얘기했건만. 삼류인간이 되다니. 너 때문에 엄마도 삼류인간 됐잖아. 아들 분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