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31(월)
오랜만에 아침을 제대로 챙겨 먹었다. 아내는 일찍부터 일어나서 아침을 챙기느라 바빴고 난 더 늦게 일어났다. 평소처럼 일찍 일어나서 못한 일도 하고 그러려고 했는데 역시나 잘 때부터 ‘왠지 못 지킬 거 같은데’ 싶은 다짐은, 결과가 뻔하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도 나보다 먼저 일어났다. 일어나서 삼촌과 숙모, 사촌 동생이 왔다는 걸 알았을 때 어떤 반응이었는지 보지 못했다. 내가 일어났을 때는 놀람과 설렘이 모두 지나고 난 뒤였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열심히 종이접기를 하고 있었다. 아내는 그게 마음에 걸리는(못마땅한) 눈치였다. 평소였으면 각자의 할 일 (성경 읽기, 필사, 집안일 등)을 했을 텐데 삼촌의 가족이 왔다는 이유로 모든 일을 뒤로 젖혀 놓고 ‘놀기’에 바빴다. 그렇다고 사촌 동생과 열심히 노는 것도 아니었다. 거기에 사이 좋게 노는 것 또한 아니었고. 틈만 나면 투닥거리며 아내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불러서 차분히 얘기했다. ‘해라, 하지 마라’를 얘기하지는 않았고 뭘 잘못하고 있는지만 얘기했다.
온전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날은 오늘 하루였다. 형님네 식구가 오기 전부터 아내와 함께 고민을 많이 했다. 어디를 가면 좋을지. 수도권이나 내륙에서 온 손님은 집 근처의 바닷가와 대왕암으로 데리고 가면, 평소에는 보기 힘든 자연 풍경이라 그 자체로 색다른 관광이 될 테지만 형님네 식구는 아니었다. 형님의 처가는 제주도다. 공항 검색대를 통과해서 ‘출국’하는 짜릿함만 아니면 웬만한 관광지보다 낫다는 제주도다. 이곳에서 아무리 좋은 자연 풍경을 보여줘도 제주도만 하겠나 싶었다. 너무 사대주의(?)적인 생각이었나. 아무튼 이곳저곳 고민을 많이 하다가 결국 대왕암에 가기로 했다. 파리의 에펠탑이 막상 가면 별 거 없다는 사람이 많다고 해도, 파리에 갔는데 에펠탑을 안 보고 오기 어려운 것과 비슷한가(파리에 가 본 적도 없고, 울산과 파리를 비교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아무튼 대왕암은 우리 집에 오는 이들이 안 보고 가는 것도 이상한, 나름 이 곳의 대표 관광지니까.
다행히 날씨는 엄청 좋았다. 조카는 잠들어서 유모차에 눕혔다. 아직 잘 못 걸어서 잠들지 않았어도 유모차를 탔을 거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출렁다리를 건너고 싶어 했다. 두어 번 건넜던 것 같은데 계속 재밌나 보다. 아니면 함께 건너는 사람의 반응이 어떤지 궁금한 건가. 그것도 아니면 소윤이와 시윤이도 동네의 관광지를 자랑하고 싶은가. 서윤이도 유모차에 타고 있었는데 언니와 오빠를 따라서 건너겠다고 했다. 지난 번에는 내가 등산용 캐리어에 태워서 건넜다. 오늘은 캐리어가 없었다.
“서윤아. 오늘은 아빠가 안아 줄 수가 없어. 그러니까 오늘은 그냥 유모차 타고 엄마, 아빠랑 돌아서 가자”
“시더여어어. 으아아아아아아앙”
진짜 슬퍼서 서럽게 우는 울음에는 약해진다. 안아 줄 사람이 없으니 끝까지 잘 걸으라고 하고 서윤이도 언니와 오빠를 따라 삼촌과 숙모 편에 보냈다. 아내와 내가 조카가 탄 유모차와 주인을 보낸 서윤이의 유모차를 끌고 산책로로 돌아갔다. 산책로에서도 다리가 잘 보였다. 잘 건너고 있는지 보는데 서윤이가 입구에서 마음이 바뀌었는지 안 가겠다고 하는 것 같았다. 결국 숙모와 함께 산책로로 합류했다. 서윤이는 무서워서 못 갔다고 했다.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데 조카들 성화에 반 억지로 건너려던 숙모는, 서윤이 덕분에 안전한 산책로로 돌아왔다며 좋아했다.
산책로도 순탄하지는 않았다. 돌아오는 산책로는 바닥 보수 공사 중이었다. 흙길인 곳을 보수하는 거라 진흙 바닥이 됐다. 아내는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심하게 진흙이 된 곳은 굳이 밟지 말고 피해서 가라고 얘기했다. 시윤이는 특유의 부주의함과 고의에 가까운 지침 불이행으로 아내의 화를 돋웠다.
“강시윤!!!!!”
결국 아내는 큰 사자후를 한 번 내뱉었다. 내가 보기에도 시윤이가 뺀질거리긴 했다. 난 개입하지 않았다.
점심은 또 다른 바닷가에 가서 먹었다. 장모님이 오셨을 때도 갔던 물회 가게였다. 아직 돌도 안 된 아기와 함께 하는 것치고는 무척 평안했다. 물론 이때는 서윤이가 잤다. 아직 이유식과 분유만 먹는 조카와 사람처럼(?) 먹는 서윤이, 누가 더 손이 많이 가고 더 부산스러움을 유발하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서윤이만 자도 식사의 질이 확 올라간다. 서윤이는 식사 시간은 물론이고 다시 차에 탈 때까지 계속 잤다.
“울산에는 부산 달맞이 길 같은 그런 곳은 없어?”
형님이 아내에게 물었다. 달맞이 길 같은 곳이 뭘 의미하는지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대략적인 느낌은 왔다(그게 맞는지 틀리는지는 모르지만). 태화강을 제안했다. 숲과 바다를 봤으니 강도 보면 균형도 맞고, ‘달맞이 길’처럼 뭔가 울산에 와서 꼭 가 볼 만한 곳이기도 했다.
태화강 근처에 도착해서 우선 카페에 들렀다. 언제나처럼 번갯불에 콩 튀기듯 빵이 사라졌다. 무서운 기세로 달려드는 메뚜기떼 아니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 덕분에 어른들은 차마 포크를 움직이지 못했다. 게다가 서윤이는 빵이 점심이었다. 금방 사라졌다. ‘먹을 게 고갈된 아이들과 함께 카페에 머무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힘든 일이다. 적당히 머물다 나왔다.
날씨가 계속 좋았다. 태화강도 성공적이었다. 대왕암이 날계란이라면 태화강은 계란 프라이었다. 예산이 많이 투입된 만큼 훨씬 잘 정비되고 가꿔진 느낌이었다. 그래도 난 대왕암이 더 좋지만. 어쨌든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도 좋아했다. 꽤 오래 걸었는데도 힘들어하지 않았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서로 유모차를 타겠다고 티격태격해서 다시 아내의 신경을 긁기는 했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뭔가 지속적으로 서로에게 불친절하고 양보하지 않는 모습이 내내 이어졌다.
집에 와서 저녁은 아이들만 먹였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 감빠스를 먹기로 했다. 다들 무척 졸렸다. 아들을 재우러 들어갔던 형님네 부부도 한참 소식이 없다가 겨우 형님만 나왔다가 잠들지 않고 우는 아들 소리에 다시 들어갔다. 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형님 부부도 탈출에 성공했다. 그 사이 나도 소파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았다.
꽤 늦은 시간이 돼서야 모든 상황이 종료되고 고요와 평화의 밤이 찾아왔다. 사실 서윤이는 이때까지 안 잤지만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작은 방에서 자기 혼자 떠들며 돌아다닐 뿐이었다. 오늘 밤이 유일한 대화의 시간이니 다들 피곤함을 무릅 쓰고 둘러앉았다. 새우와 식빵, 연어를 가운데 놓고. 늦은 시간이라 다들 못 먹지 않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잘 팔렸다.
놀 때는 좋았는데 눕고 나니 내일이 걱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