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인에게 당연함이란

18.09.09(주일)

by 어깨아빠

평소에 가던 10시 30분 예배를 드리려면 신림동에서 늦어도 9시 30분에는 출발해야 했다. 아내와 나는 9시 30분에 일어났다.


"여보, 어떻게 하지?"

"아, 그러게"

"그냥 신림동에서 예배드릴까?"

"그럴까?"


잠시 후 아내가 다시 말했다.


"여보, 그냥 12시 10분 예배드리자"

"그래, 그럼"


소윤이랑 시윤이는 진작부터 일어나서 이미 아침까지 먹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늦잠을 자고도 몸이 개운치 않았다. 바쁘게 아침 먹고 준비해서 교회로 출발했다. 거의 예배시간에 딱 맞게 도착했다. 시윤이는 가는 동안 잠들어서 아내가 아기띠로 안았는데 예배가 끝날 때까지, 그러니까 거의 1시간 30분을 잤다. 소윤이도 가는 길에 잠들어서 조심스레 유모차에 눕혔지만 이제 소윤이에게는 너무 작아서 안락함을 제공할 수 없는지라 금방 깼다.


지난주에 축구를 하기도 했고 어제는 야구장에도 다녀왔으니 당연히 오늘은 축구하러 갈 생각이 없었다. 2주에 한 번이 암묵적으로 합의된 내용이니까.


"여보, 오늘은 축구하러 안 가?"

"오늘? 지난주에도 했잖아"

"갔다 와"

"아니야, 괜찮아, 어제 야구장도 갔다 왔는데"

"괜찮다니까, 갔다 와"

"갑자기 왜?"

"그냥 날씨 좋을 때 많이 하고 와"

"아니야, 오늘은 됐어"


거절이 연기는 아니었지만 사실 축구하러 가고 싶기는 했다. 양심상 그럴 수가 없어서 오늘은 그냥 집에 있겠노라고 했다. 아내는 재차 자기는 괜찮다면서 하고 싶으면 하고 오라고 했다.


"그럼 그럴까?"


평소보다 늦은 예배를 드린 탓에 예배 끝나자마자 목장 모임이 있었다. 아내랑 애들은 식당에서 밥 먹고 난 바로 목장 모임 하러 갔다. 아내랑 애들은 목장 모임 끝날 때까지 교회 근처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아내는 논 게 아니지만. 축구까지 하러 가면 주말에도 내내 혼자 애들을 봐야 하는 아내가 걱정되서 물어봤다.


"여보는 애들이랑 뭐하게?"

"글쎄"


하긴, 의미없는 질문이었다. 뾰족한 해결책이나 도움을 더해줄 것도 아니면서.


처음에 경기장을 집에서 멀리 있는 곳으로 잘못 알아서 차도 내가 가지고 갈 생각이었다. 덕분에 기동력이 현저히 떨어진 아내는 애들이랑 뭘 해야 하나 고민이었다. 짐 챙겨 나와가지고 차에 타서 다시 한번 장소를 확인하는데 집 근처에 있는 곳이었다.


"여보, 차 쓸 수 있겠다, 가까운 곳이네, 차 두고 갈게"


5시부터 시작해서 6시 30분 정도까지 정신없이 하다가 쉬는 시간에 휴대폰을 보니 6시쯤 아내에게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고 카톡도 와 있었다.


[여보, 애들 상태가 좀 안 좋네]


아내는 보통 나에게 자유를 주거나 놀다 올 기회를 주면 귀가 재촉 전화를 잘 하지 않는다. 그런 아내에게 부재중 전화가 와 있고 카톡도 와 있었다는 건 꽤 힘들었다는 얘기라 바로 전화를 걸었다.


"어, 여보 괜찮아? 애들은?"

"이제 좀 진정됐어, 아까는 둘 다 너무 졸려가지고"

"아픈 건 아니고? 그냥 졸려서?"

"어, 지금은 괜찮아졌어, 애들은 밥 먼저 먹여야 될 것 같아"

"그래그래, 나도 이제 갈게"


아마 한 차례 폭풍 고비가 있었던 듯하다. 둘이 동시에 땡깡 피우며 울고, 경쟁적으로 엄마 품을 파고드는. 부지런히 집으로 돌아갔을 때는 둘이 나란히 아기의자에 앉아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니 동시에 쳐다보며 함께 함박웃음을 지었다. 사태가 진정되었음을 보여주는 두 녀석의 웃음이었다. 아내는 막 지쳐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 굉장히 용을 쓰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여러모로.


나도 무지하게 피곤했다. 일주일 동안의 피로가 쌓인 상태에서 어제도 늦게까지 놀고 오늘 축구까지 했으니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소윤이랑 시윤이도 일찍, 조금 낮잠을 잔 터라 피곤해 보였다. 저녁 먹이고 씻겨서 재우러 들어갔다. 책 다 읽고 기도해주는데 기도하다 말고 내가 막 졸았다. 졸다 깨다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겨우겨우 힘겹게 기도를 마치고 나니 소윤이가 두 손을 고이 모은채 잠들어 있었다. 소윤이도 어지간히 피곤했나 보다. 기도하면서 잠든 건 거의 처음이다. 시윤이는 책 읽어줄 때 이미 잠들었다. 아내와 나는 거실로 나와서 저녁 겸 야식을 주문했다. 아내가 떡볶이랑 튀김이 먹고 싶다길래 배달을 시켰다. 배까지 채우고 나니 정말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잠이 쏟아졌다. 밀린 일기를 쓰겠다고 노트북을 펴고 앉기는 앉았는데 도저히 능률이 오르지 않았다. 한 개도 채 쓰지 못하고 노트북을 덮었다.


"그래도 오늘 나한테 고맙지?"

"어, 그럼"

"난 오늘 열심히 살았어, 헌신했어"

"그래, 수고했어"


육아인의 삶에 당연한 건 없다. 배려가 당연함이 되고 그게 무슨 일이든 누군가의 당연히 해야 할 일이 되는 순간 반대쪽에서는 불쾌함이 스멀스멀 고개를 든다. 당연함은 곧 불화의 씨앗이다. 그런 면에서 적극적으로 어필해본다.


여보, 난 하나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아.

어차피 난 이'나'영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그보다 한 수 위인 이'가'영이 아내인 것부터 시작해서

이번 주 야구도, 축구도 물론이고 그대의 모든 것이 감사함이야.

그런데 말이야 여보. 원래 올해 나한테 한 번 더 혼자 여행 다녀오라고 하지 않았었나?

아닌가? 맞나? 아, 그냥 벌써 9월이라서 해보는 말이야.


아무튼 나는 미리 감사하고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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