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9.10(월)
소윤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기로 한 뒤, 지난 한 주는 새벽기도 때문에 평소와 다른 생활 패턴으로 지내기도 했고, 또 그 특수를 누리기도 했다. 이번 주가 진짜 시작인 셈이다. 시윤이는 지난주 리듬이 몸에 뱄는지 10시 조금 넘은 시간에 집 여기저기에 누워서 뒹굴거리고 있는 사진을 아내가 보내줬다. 소윤이는 어떠냐고 물었더니 훌륭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극찬이다. 훌륭함이라는 평가는 소윤이릉 향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상황 자체를 평하는 말이기도 했다. 곧바로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사진과 동영상이 도착했다.
[벌써 놀이터도 갔다 왔어?]
[어, 당분간 하루에 두 번 가려고, 오전 오후]
매일 살 붙이고 자는 아내지만 새삼 놀랍기도 하고 경이롭기도 하다. 하루에 두 번, 그것도 애를 둘이나 데리고 놀이터에 다녀오겠다니. 역시 애 둘과 하루 종일 지낸다는 건, 특히 '잘' 지낸다는 건 저절로, 알아서 되는 일은 아니다. 누군가(대체로 아내인 경우가 많지만)의 헌신과 노력이 있어야만 한다. 어린이집에 보내 놓고 잘 지내는지 어떤지 오매불망 기다리기만 하던 삶에서 언제든지 아내에게 물어볼 수 있는 삶으로 바뀌었다는 건, 나에게는 참 좋은 일이다. 어린이집 대신 아내가 그 역할을 기꺼이 자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고. 물론 약간의 걱정은 여전하다.
'어린이집에 다니면 접하고 배울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놓치게 하는 건 아닐까'
본격적으로 홈스쿨링을 시작하면 이런 염려도 좀 사그라들지 않을까 하며 기다리고 있다.
오후쯤 다시 카톡이 왔다.
[예상치 못한 난관이 찾아옴 낮잠 재우는 데 소윤이 40분, 시윤이 30분 걸림]
[난관? 오래 걸려서?]
[응, 나의 마음 지키기 난관, 그래도 잘 지킴]
커피 내려놓고 한 모금도 못 마실 정도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던 아내는 낮잠이라는 위험한 고비도 잘 넘겼다. 밥 먹을 때, 씻길 때, 재울 때. 이런 순간만 잘 넘겨도 평온한 하루를 만들어가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거다. 애들 재우고 나서는 빨래도 널어야 하고 애들 점심도 준비해야 하고 고구마랑 감자도 쪄야 해서 또 바쁠 예정이라고 했다. 애들 재우고 나면 여유롭게 커피나 한 잔 하면서 좀 쉬는 걸로 만족을 얻는 게 아니라 애들 방해 없이 후다닥 집안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쾌감을 느끼는 육아인의 현실이란. 심지어 낮잠 자던 소윤이가 이불에다 오줌을 잔뜩 싼 바람에 두꺼운 매트와 이불을 빨고 말려야 하는 일까지 생겨 버렸다. 아내는 초연하게 반응했다.
퇴근해보니 아내랑 애들이 없었다.
'놀이터에 갔나'
생각하며 소파에 누웠다. 어디냐고 확인하는 전화는 굳이 하지 않았다. 그냥 몸이 그러라고 시켰다. 아내랑 시윤이가 금방 집에 돌아왔다. 아내는 시윤이를 아기띠로 안고 있었고 유모차에는 소윤이가 오줌을 싼 이불과 매트가 실려있었다. 집 앞 빨래방에 가서 세탁기와 건조기를 돌렸는데도 덜 말라서 베란다에 널어놨다.
"소윤이는?"
"아, 남옥 언니가 한살림 가는데 거기 같이 따라갔어"
잠시 후 소윤이도 505호 사모님(남옥 언니, 하람이 엄마)이 데려다줘서 집으로 돌아왔다. 역시 소윤이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아니 단순히 기분이 좋다는 표현으로는 담을 수 없는 뭔가 긍정적인 기운을 계속 뿜고 있었다. 어린이집 적응기 때 온몸에서 흑암의 기운을 발산하던 것과 정반대의 느낌이랄까.
월요일이다.
원래 아내의 필라프리데이(Pilates+Free Monday의 줄임말)지만 아내는 게으름을 피우다 이번 달 필라테스 등록을 하지 못했다. 자비롭고 너그러운 남편인 나는 필라테스 등록 여부와 상관없이 필라프리데이를 폐지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소윤이는 여전히 엄마가 운동하러 가는 줄 안다.
"엄마, 운동복 안 입고 가도 돼요?"
"엄마, 운동복은 가지고 갈 거예요?"
소윤아, 너네 엄마 운동 안 해, 이번 달은. 그냥 나가는 거야. 살려고.
아내가 나갈 때쯤 되니까 애들이 졸려서 그런 건지 아니면 엄마의 외출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건지 땡깡을 피우며 울어댔다. 난 이번 주 수요일까지 마감해야 할 게 있어서 마음의 부담이 큰 상태였지만 차마 아내의 외출을 막지는 못했다. 소윤이보다, 시윤이보다 내가 가장 아내를 붙잡고 싶었다. 아내는 수정이(아내 친구, 채은이 엄마)를 만나러 간다고 했다. 아내가 나가는 것과 동시에 모든 잘 준비와 작별 인사를 마치고 소윤이는 이미 자리에 누워 있었다. 시윤이만 엄마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현관까지 나가서 질척대고 있었다. 내가 시윤이를 안고 나서야 아내가 나갈 수 있었다. 소윤이한테 책 세 권 읽어주는 동안 시윤이는 자기 자리에 눕지 않고 매트리스 위에 눕거나 멀찌감치 누워서 뒹굴대길래
"시윤아, 이리 와, 아빠 옆에 누워"
라고 했더니 오른손 엄지는 입 안에 넣은 채 고개를 가로저으며 거부 의사를 표시했다.
시위하는 건가.
책 다 읽어주고 기도해주기 전에 멀리 누워 있는 시윤이를 안아서 옆에 눕히니 또 고분고분 누워 있었다. 시윤이는 기도하는 동안 잠들었고 소윤이는 꽤 오래 걸렸다.
"아빠, 눈을 감고 있는데도 잠이 안 와"
"어, 그래도 계속 감고 있다 보면 잠들어"
그러고 나서도 계속 나한테 장난치고 말 걸고 그랬다. 아내처럼 나도 마음 지키기에 힘썼다.
'그래, 잠이 안 오니까 안 자겠지'
물어보면 대답도 잘 해주고 장난치면 적당히 받아주기도 하면서 기다렸다. 1시간 정도만에 잠들었다.
됐다.
마음이 분주함에도 불구하고 애들한테 크게 짜증내거나 재촉하지 않고 잘 기다려 준 것에 스스로 만족스러웠다.
수정이를 만나고 돌아와 하루를 품평하는 아내에게서 뭔가 강인함, 결연함 같은 게 느껴졌다.
"안 힘들었어? 놀이터도 두 번이나 가고?"
"날씨 좋을 때 자주 나가야지. 추워지기 전에는 계속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나갔다 오려고. 추워지고 먼지 많아지면 나가고 싶어도 못 나가니까"
둘 데리고 가면 그렇게 힘들다면서도, 누가 졸라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먼저 저런 생각을 하다니. 우리 아내도 진짜 애 둘 엄마 다 된 건가. 난 아직 어떻게든 피하고만 싶은데. 아무튼 아내도 본인의 하루에 만족스러워했다. 소윤이도 그런 것 같고. 시윤이는 잘 모르겠다.
매일 오늘만 같으면 참 좋을 텐데. 그럴 수는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