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아닌 여행

22.11.04(금)

by 어깨아빠

서울에 가야 했다(동생네 집의 소재지는 경기도지만, 지방을 벗어나는 행위를 표현하는 관용 표현이라고 이해하자). 여러 일이 있어서 겸사겸사 가기로 했는데 소윤이와 시윤이도 데리고 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나만 훌쩍 다녀 오려고 했다. 가는 김에 소윤이나 시윤이도 데리고 갈까 싶었다. 데이트하는 느낌으로. 둘에게 물어봤더니 둘 다 따라가겠다고 했다. 그럴 거면 서윤이도 데리고 갈까 싶었는데 배변 훈련이 큰 장애물이었다. 혼자서는 서윤이의 배변 훈련을 감당해 낼 자신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오줌과 똥 폭탄을 감당해 낼 자신이 없었다. 서윤이는 나머지 식구의 대화를 다 알아듣고 자기도 가고 싶다며 불쌍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평소보다 일을 조금 일찍 마치고 집에 왔다. 짐은 어제 거의 다 쌌고 아내와 아이들이 준비하고 나가기만 하면 됐다. 시간도 그렇게 빠듯하지 않아서 꽤 여유를 부렸는데 막상 집에서 나오고 보니 시간이 그렇게 넉넉하지 않았다. 게다가 차도 많이 막혔다. 금요일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더 많이 막혔다. 딱 10분 전에 도착했다. 아내와 서윤이에게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서둘러 승강장으로 이동했다.


열차를 기다리는데 아내가 서윤이를 안고 급히 뛰어왔다. 그 짧은 시간에 차를 대고 뛰어 온 거다. 덕분에 조금 더 제대로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서윤이는 의외로 덤덤하게 언니와 오빠, 아빠를 보냈다. 사실 서윤이보다 내가 더 서윤이를 보고 싶어 할 게 불 보듯 뻔했다.


소윤이는 이 시간을 엄청 기대하고 기다렸다. 아빠와 함께 멀리 간다는 것도 그렇고 차가 아니라 KTX를 탄다는 것도 그렇고 가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고모네 식구를 만난다는 것도 그렇고. 모든 게 설레는 이유였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나란히 앉아서 계속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눴다. 난 앉자마자 조느라 정신을 못 차렸는데 소윤이와 시윤이는 둘이 뭘 하는지 가는 내내 속닥거렸다. 조금이라도 여행 기분을 내라고 조그만 초코 과자도 하나 사 줬다. 몇 개 되지도 않는 걸 나에게도 나눠줬다.


“소윤아, 시윤아. KTX 타고 오는 거 안 힘들었어?”

“하나도 안 힘들었어여”

“그래? 길어서 힘들지 않았어?”

“길다구여? 차 타고 오는 것보다는 훨씬 짧잖아여”

“그래도. 떠들지도 못하고”

“그래서 재밌었어여”

“뭐가?”

“둘이 소곤소곤 얘기하는 게”


광명역에서 내렸을 때는 매제가 태우러 왔다. KTX 타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도착해서 내리니 아내 없이 아이 둘을 데리고 다니는 게 영 어색했다. 생각해 보면 거의 없는 일이었다. 아내가 아이들만 데리고 멀리 갔던 일은 종종 있었지만 내가 아이들만 데리고 움직였던 적은 거의 없었다. 벌써 서윤이가 보고 싶었다(아, 아내는 헤어지자마자 보고 싶었고).


동생네 집에서 머물기로 했다. (내) 엄마와 아빠도 동생네 집으로 오시기로 했다. 시윤이의 콧물과 기침이 점점 심해지는 듯해서 걱정스러웠다. 여기서 멀쩡하더라도 내려가면 감기에 걸릴 것 같은 강력한 예감이 들었다. 일단 시윤이의 상태는 괜찮았다. 처지거나 늘어지는 건 없었다.


소윤이는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나 고모부보다 사촌 동생(내 조카)이 가장 보고 싶다고 했다. 그 마음이 통하는 건지 조카는 소윤이를 보자마자 어설픈 발음으로 언니를 외치며 가서 안겼다. 아무한테나 그렇게 가는 건 아니었다. 내가 오라고 하면 단호하게 아니라고 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소윤이는 약간 뿌듯한 표정으로 계속 사촌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챙겼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엄청 늦게 잤다. 상태가 상태인 만큼 조금 일찍 재우고 싶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러기가 어려웠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소윤이와 시윤이의 마음을 외면하는 것도 도리가 아니었다. 꽤 늦은 시간까지 취침 준비에 돌입하지 않고 자유롭게 놀도록 뒀다.


“아빠. 오늘 할머니랑 자도 돼여?”

“어, 그래도 되지. 대신 너무 많이 떠들지 말고 일찍 자. 알았지?”


아니나 다를까 소윤이와 시윤이는 할머니와 자도 되는지 물어봤다. ‘너무 늦게까지 떠들지는 말아라’는 내 말의 실천 가능성이 매우 낮아 보이긴 했다. 할머니와 함께 자러 들어간 소윤이와 시윤이의 떠는 소리와 웃음 소리가 꽤 한참 동안 들렸다. 아프려고 하거나 피곤할 때 수면 부족만큼 안 좋은 게 없지만, 별 말을 하지 않고 그대로 뒀다. 오랜만인 데다가 매우 짧은 시간이기도 하고, 거기에 자주 오지 않는 시간이기도 한,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매우 소중하고 아까운 시간이었다. 그렇게 그대로 뒀더니, 소윤이와 시윤이는 거의 한 시간 삼십 분을 떠들었다. 거의 자정이 다 돼서 잠들었다.


덕분에 난 독방을 썼다. 서윤이 동영상을 보다가 잠들었다. 서윤이도 시윤이처럼 코가 막혀서 힘들어 한다고 했다. 아내는 아이들이 없으니 쓸쓸하다고 했다. 서윤이까지 없었으면 더 심했을 거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