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우리 집 같네

22.11.06

by 어깨아빠

어제보다 더 늦게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교회에 갈 준비를 해야 할 정도로 늦은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진작에 아침도 먹고 노는 중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말 안 들음 지수’가 높아졌다. ‘선택적 청각 상실 지수’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아침부터 할머니와 할아버지, 고모 사이에서 매우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후유증이라고나 할까.


아침에 아이들 옷을 갈아입히면서 대충 짐을 정리했다. 어딘가로 움직일 때마다 유모차를 끌지 않는 나의 모습이 어색했다. 아내도 없고 서윤이도 없이 소윤이와 시윤이만 데리고 다니는 자체가 영 어색했다. 동생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점심은 밖에서 먹었다. 쌀국수를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와 나는 쌀국수 곱빼기 한 그릇과 볶음밥 한 그릇을 시켰다. 하나만 시키기에는 부족할 테니 그렇게 시켰는데 오늘은 아이들이 잘 안 먹었다. 아니, 잘 안 먹은 건 아니다. 충분히 적당량을 먹었고 ‘엄청’ 잘 먹을 때처럼 먹지는 않았다. 동생과 엄마는 조카를 데리고 먹는다고 정신이 없었을 거다. 거의 전자동에 가까울 정도로 알아서 먹는 소윤이와 시윤이가 새삼 많이 컸다고 느꼈다.


동생네 집에 돌아 오니 바로 나가야 할 시간이었다. 나는 나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짐을 챙겼다. 아이들은 돌아가는 KTX에서 가지고 놀 슬라임과 먹을 빼빼로를 신경 써서 챙겼다. 슬라임이 우리 집에 입성한 적은 없다. 아마 만져 본 적도 거의 없을 거다. 할머니 찬스를 활용해 얻은 슬라임을 KTX를 타는 두 시간 동안 마음껏 가지고 놀 생각에 나름대로 신이 난 듯했다. 엄마는 귤도 챙겨주겠다고 했지만 짐이 늘어나는 건 싫다며 내가 거절했다.


바로 내려 오는 건 아니었다. 지인의 장로 취임 예배에 들르기로 했다. 아빠와 엄마가 태워줬다. 동생네 집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었다. 운전하는 아빠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곯아떨어졌다. 차에서는 웬만하면 자지도 않는 데다가 카시트도 아니라서 불편했을 소윤이도 세상 모르고 잤다. 그만큼 피곤하다는 얘기였다. 모두가.


교회 앞에 도착해서 길에 차를 대고 급히 짐을 내리고 인사를 나눴다. 예전처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곳으로 헤어지는 게 아니었다. 마음을 먹기도 어렵고, 마음을 먹어도 실천으로 옮기기 어려운 먼 곳으로 헤어지는 이별의 순간이었다. 오래 머물며 이별의 슬픔을 나눌 상황이 아니어서 강제적으로 손을 흔들며 멀어지긴 했는데, 뒷좌석에 앉아 손주들에게 눈을 떼지 못하는 엄마의 표정이 슬퍼 보였다. 나중에 들어 보니 엄마는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예배가 끝나고 난 뒤, 지인과 5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고 서둘러서 나왔다. 기차역까지는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태워 주기로 하셨다. 맞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친히 우리가 있는 곳으로 나오셨다. 차를 안 가지고 온 덕분에, ‘손주’라는 특급 VIP를 대동한 덕분에 이곳저곳에서 황송한 의전을 받았다.


기차역에서 저녁을 먹고 잠시 카페에 들렀다. 카페에 가고 싶어서 간 게 아니라 시간이 좀 남으니 앉아서 시간을 보낼 곳이 필요했는데 생각보다 앉을 곳이 없었다. 장모님은 ‘상술’에서 비롯된 ‘앉을 곳 없애기’의 결과라고 하셨다. 그나마 카페에도 자리가 없었다. 거기 있는 대부분의 카페와 식당에 사람이 가득 찼다. 서울과 지방을 오가는 사람이 참 많다는 걸 눈으로 확인했다. 무지하게 혼잡하고 시끄러운 상황이었지만 장인어른과 장모님,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행복해 보였다. 잠깐이라 더 소중하고 애틋했나. 애틋한 건 아마 장모님이 가장 컸을 테지만.


어김없이 이별의 순간은 찾아왔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기차에 올랐다. 창밖의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계속 손을 흔드셨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계속 손을 흔들었다. 장모님도 우리가 사라진 뒤에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우연히 우리가 살던 동네 근처를 지날 때도 우셨다고 했다.


원래 자리가 다 떨어져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통로를 사이에 둔 옆 자리였고 난 두 칸 앞 자리였다. 워낙 사람이 많은 시간대였고 늦게 예매해서 선택권이 없었다. 소윤이 옆에 앉은 분에게 조심스럽게 여쭤봤다.


“아, 저기 죄송한데 제가 아이들하고 같이 왔는데요, 제 자리는 여기구요. 혹시 괜찮으시면 자리를 바꿔 주실 수 있을까요?”


감사하게도 기꺼이 바꿔주셨다. 소윤이를 시윤이 옆에 앉히고 내가 시윤이 자리에 앉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슬라임도 하고 빼빼로도 먹고 귤도 먹으며 두 시간을 보냈다아, 엄마에게 짐이 된다며 거절했던 귤이 장모님의 손에서 부활했다). 장모님도 가는 동안 먹으라며 귤을 가지고 오셨다. 아이 둘을 데리고 보내는 두 시간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만 데리고 가면, 반나절이 넘게 걸리는 곳에 가는 것도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그럴 일이 언제 실현될지는 모르지만.


아내와 서윤이가 마중을 나왔다. 차로 한 시간을 가야 하는 거리라 아내의 마중이 매우 소중했다. 고작 2박 3일이었는데 무척 반가웠다.


“소윤아. 2박 3일밖에 안 됐는데 엄청 오래 된 거 같네”

“맞아여”


다 반가웠다. 아내도 반갑고 서윤이도 반갑고 다 함께 있는 그 모습도 반갑고. 집도 우리 집이 최고였다.


“아빠. 이제 여기가 우리 집 같아여”


소윤이 말에 심히 공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