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08(목)
아침에 식탁이 왔다. 새벽같이 왔다. 미리 약속한 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왔다. 원래 함께 일하는 K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는데 그냥 기사님과 날랐다. 신혼 때부터 쓰던 작은 식탁에서 드디어 5인 가족에 맞는 식탁으로 바꾸게 됐다. 형님(아내 오빠)의 이사 선물 겸 재능 기부 덕분에.
장모님은 손주 세 명과 차례대로 데이트를 하셨다고 했다. 동네 산책도 하고 문구점도 들르고 그랬다고 하셨다. 한 명씩, 세 번을. 몸은 힘드셨을지 몰라도 마음은 너무 행복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이들도 좋았을 거다. 몸도 안 힘드셨을지도 모른다. 실제로는 아니겠지만 감각적으로는 약간 마비가 되어 계신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격투 선수들이 링 위에서는 아드레날린 덕분에 아무리 맞아도 버티게 되는 것처럼. 그냥 얼마나 좋으셨을까 싶다.
저녁은 밖에서 먹기로 했다. 집 에서 30초 거리에 있는 중국 음식점에 가기로 했다.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기도 했지만 시윤이를 위한 시간이기도 했다. 짜장면과 짬뽕을 비롯한 음식과 탕수육을 시켰다. 대 자로. 원래 낮에 중국음식점에 가려고 하다가 저녁에 가는 걸로 변경했는데 시윤이가 별로 좋아하자 않았다고 했다.
“낮에 가는 게 좋아여”
“왜?”
“밤에 가면 사람이 많으니까 조금밖에 못 먹잖아여”
“밤에 가면 왜 사람이 많아?”
“아빠도 계시고 그러니까”
이렇게 억울할 때가 있나. 내가 자기 먹으라고 젓가락은 장식으로 사용하듯 태만하게 둘 때가 얼마나 많은데. 아빠=많은 사람으로 계산하다니.
대 자를 시켰으니 양이 결코 적지 않았는데 시윤이의 아쉬움은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시윤이 혼자 절반 이상은 먹었다. 장모님은 계속 걱정을 하셨다. 탈이 나는 거 아니냐고 하시면서, 배가 부르면 억지로 안 먹어도 된다고. 매일 보는 우리도 ‘배 부르면 그만 먹어도 된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 정도로 많이 먹긴 한다. 시윤이는 마지막 남은 한 조각까지 알차게 먹었다.
오늘은 장모님이 아이들과 함께 눕지 않으셨다. 아이들이 따로 요청을 하지도 않았던 것 같았고 장모님도 굳이 그러지 않으셨던 것 같다. 이사 와서 아내와 나의 밤 시간의 질이 확 높아진 결정적 이유가 분리 수면 덕분이다. 그만큼 아이들 재우는 일은 몸과 마음의 수고를 동반한다.
장모님과 아내는 재활용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오면서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오셨을 때는 아내와 밤에 데이트도 하고 그랬는데 이번에는 왠지 모르겠지만 그럴 생각을 아예 안 했다.
장모님은 하루 종일 아이들과 보드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하셨다. 각종 집안일을 하시느라 아이들과 놀 시간이 없었던 예전에 비하면 엄청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논 셈이었다. 설거지를 하시려는 장모님을 만류하는 아내에게, 장모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했다.
“이런 건 하나도 안 힘들어”
이건 내가 퇴근해서 아내의 집안일을 도우려고 하면
“여보. 괜찮아. 이게 차라리 나아. 이게 쉬는 거야. 가서 애들 좀 봐 줘”
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육아는 불면증도 치료하고 집안일도 좋아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