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은 육아로

22.12.07(수)

by 어깨아빠

장모님이 오셨다. 아주 이른 아침 비행기로. 소윤이와 시윤이는 며칠 뒤에 오시는 걸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깜짝 놀랐을 거다. 형님(아내 오빠)이 만든 식탁을 장인어른이 차에 싣고 오시는 김에 함께 오시려고 했던 게 최초의 계획이었다. 식탁은 따로 택배로 보내고 장인어른은 근처 출장 오실 때 오시고, 장모님은 먼저 오시는 게 최종 실행안이 됐다.


퇴근하고 집에 왔을 때 장모님과 아내는 저녁 준비가 한창이었다. 장모님이 오신 날답게 반찬은 고기였다. 그것도 소고기. 정작 장모님과 아내는 저녁을 안 먹었다. 아내는 성경공부 모임을 하러 가야 해서 좀 바쁘기도 했고, 배가 안 고프다고 하기도 했다. 장모님도 배가 안 고프다고 하셨고. 나와 아이들만 앉아서 맛있게 고기를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할머니가 재워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장모님은 흔쾌히 아이들 방에 누우셨다. 한참 동안 안 자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기침과 콧물로 고생하는 시윤이와 서윤이에게 최대한 긴 수면이 절실했지만 그렇다고 할머니와의 즐거운 시간을 막기는 어려웠다.


장모님이 설거지를 하신다고 그대로 두라고 하셨다. 식기세척기를 돌리면 되긴 하는데 대체로 부모님들은 식기세척기에 들어가기 전까지 쌓여 있는 그 꼴(?)을 보는 게 아직 적응이 안 되시나 보다. (내) 엄마가 왔을 때도 식기세척기를 돌리지 않고 바로바로 설거지를 하셨다. 장모님도 마찬가지다. 장모님이 생각보다 너무 늦게 나오시길래 그냥 내가 했다.


어느 순간 장모님의 목소리도 안 들렸다. 오히려 소윤이와 시윤이 목소리는 들렸다. 아내도 돌아왔다. 아내가 방에 들어가서 장모님을 깨웠다. 장모님이 원래는 밤에 잠이 잘 안 와서 항상 TV를 켜 놓고 보시다가 잠든다고 하셨는데, 역시 기적의 불면증 치료제 ‘육아’의 힘이다. 잠든 척하다가 잠드셨다고 했다. 서윤이는 그때까지도 잠을 안 잤다. 자기 죄(?)를 아는지 할머니가 나간다고 해도 울지 않았다. 오히려 엄청 반갑게 인사를 했다.


“할머니 안녀어엉”


낮에는 아이들과 함께 옷을 사러 갔다고 했다. 소윤이는 이제 확실한 자기 취향이 생겼고, 그걸 강력하게 원한다고 했다. 전통적으로(?) 언제나 아내와 다른 노선의 옷을 좋아했다. 원색적이고 화려한. 아내는 무채색의 담백한. 오늘은 소윤이의 든든한 지원군인 할머니의 기세에 힘입어 소윤이가 원하는 옷을 골랐다고 했다.


아내는 이제 앞으로 이런 일이 많을 거라고 예상했다. 자본가의 권력을 휘두르면 언제든 아내의 뜻대로 결정하는 게 가능하겠지만 아마 그러지는 않을 거다. 그렇다고 소윤이가 고른 옷이 또 엄청 튀고 그러는 건 아니었다. 내가 보기에는 괜찮았다. 다만 아내가 원하는 옷을 소윤이가 끝까지 거부했을 뿐이다. 소윤이의 특유의 심드렁한 반응으로.


자녀 중 한 명이었는데 점점 ‘강소윤’의 개성이 드러나고 있는 게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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