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가 고픈 하루

22.12.13(화)

by 어깨아빠

시윤이가 가장 먼저 일어났다. 내가 일어나고 얼마 안 돼서 일어났으니까 엄청 빠른 시간이었다. 간단하게 뽀뽀만 하고 다시 방으로 들여보냈다. 안방에 있던 서윤이도 깨서 문을 살짝 열었는데 바로 다시 닫고는 기척이 없었다. 30분쯤 지나고 소윤이가 일어나서 나왔다. 시윤이도 따라 나왔다. 서윤이도 나왔다.


“아빠. 안녕”


현관문에서 한 번, 베란다에서 1층을 보며 한 번. 이렇게 두 번의 인사를 나누는데 언제나 기분이 좋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믿고 든든하게 생각하는 존재들이다.


소윤이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화요일이다. 할머니가 사 준 물감을 하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아내가 굳건하게 약속을 하긴 했지만, 육아인의 삶이라는 건 언제나 변수가 도사린다. 소윤이가 속이 깊다고는 해도 아직 여덟 살이다. 더군다나 이번 ‘물감’은 워낙 기대가 컸다. 혹시나 약속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면, 상심이 매우 클 듯했다. 부디 아내에게 큰 변수가 생기지 않고, 모두가 행복한 하루를 보내길 바랐다.


점심시간에 잠깐 집에 들렀다. 그 전에 잠깐 통화도 했는데 자다 깬 목소리였다. 서윤이를 재우면서 잤냐고 물어봤는데 그건 아니고 그냥 혼자 졸았다고 했다. 집에 잠시 들렀을 때도 아이들만 거실에 있고 아내는 안방에 있었다. 아마 잠깐 눈을 붙였던 모양이다. 아이들이 얼마나 그걸 허락(?)해 준 건지는 몰라도. 금방 나오긴 했다.


“소윤아. 물감은 했어?”

“아니여”


서윤이 낮잠 잘 때 한다고 했다. 부디 평온한 오후가 되길 또 바랐다.


퇴근하고 집에 왔는데, 역시나 소윤이와 시윤이는 물감으로 그린 그림을 가장 먼저 보여줬다. 무사히 한 건지 아니면 무사하지 않게(?) 한 건지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아내는 아직 저녁 준비를 시작하기 전이었다.


“여보. 배고프지. 미안. 갑자기 일이 생겨서 저녁 준비가 늦어졌네”

“무슨 일?”

“아, 훈육할 일”


가벼운 훈육의 시간이 있었나 싶었는데, 저녁 먹고 아이들 재울 준비를 하는 동안 아내가 유독 지쳐 보였다. 그저 피곤한 것과는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다. 하필 나는 급히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아내가 아이들 재울 준비를 도맡았다. 아이들을 모두 눕히고 거실로 나오자마자 아내가 나에게 물었다.


“여보. 바로 씻을 거야?”

“나? 어, 그렇지. 왜?”

“아, 나 방에서 기도하려고 하는데 속옷이랑 옷 미리 꺼내 놓게”

“아, 그래? 알았어. 근데 갑자기 왜? 오늘 기도가 고픈 하루였어?”


아내는 말없이 피식 웃었다. 아내가 가볍게 말한 ‘일’이라는 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무거웠나 보다. 안방에서 아내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서윤이가 들어간 지 얼마 안 돼서 다시 나왔다. 거실을 한 번 둘러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아빠아. 엄마는여어?”

“엄마 방에 계셔”

“왜여어?”

“기도하신대”

“아빠아. 엄마가 기도하는 게 아니라아 노랫소리가 들려여어어”

“아니야. 엄마 기도하시는 거야. 얼른 들어가서 자”

“아빠아. 손뚜건이 없어여어”

“아빠가 이따 엄마 기도 끝나시면 갖다 줄게. 자고 있어”


서윤이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지만 5분도 안 돼서 또 나왔다.


“아빠아. 똥 쌌어여어”


저녁 먹고 나서도 한 번 쌌는데 마중똥이었다. 한 번 더 쌀 거라는 걸 예상은 했다. 서윤이는 다시 기저귀를 차고 있고 여전히 소변만 가리고 대변은 가리지 못한다. 생각해 보면 기저귀나 팬티나 큰 차이가 없다. 어차피 똥 닦아주고 치워야 하는 건 똑같다. 팬티를 입고 똥을 싸면 팬티를 빨아야 하는 일 정도가 추가될 뿐이다. 그럼 아내와 나는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다시 기저귀로 돌아왔을까. 정신적인 타격감이 팬티가 훨씬 세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기저귀를 입고 있을 때는 기대가 사라진다. 팬티를 입으면 ‘얼른 가렸으면’하는 바람이 생기고. 기대와 바람이 크니 실망과 좌절도 커진다. 기저귀를 차고 똥을 쌌다고 얘기하는 막내딸의 엉덩이를 닦아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아내는 한참 있다가 나왔다. 내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내 감각이 무뎌졌나. 아니면 아내의 상황 수습 능력이 향상됐나. 아이들이나 아내에게서 크게 이상한 걸 느끼지는 못했는데. 내가 모르는 ‘큰 일’이 있긴 했나 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