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은 맡기고 마음껏 놀아

22.12.15(목)

by 어깨아빠

일 할 때 필요해서 주문한 게 있었는데 배송이 늦어졌다. 오늘 행사에 필요했는데 저녁 늦게나 도착할 것 같았다. 택배 기사님에게 부탁을 드려서 직접 만나서 받기로 했다. 나는 행사장에 있을 시간이라 아내에게 대신 받아달라고 했다. 받는 거야 문제가 안 되지만 그걸 나한테 전달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것도 아내에게 부탁했다.


아침에 아내와 통화를 했는데 목소리가 무척 안 좋았다.


“여보. 왜? 어디 아파?”

“아, 머리가 조금 아프네”

“약 먹었어?”

“먹으려고”

“여보. 괜찮겠어?”

“일단 약 먹어 봐야지”


잠깐 아프고 말 것 같은 목소리가 아니었다. 아픈 아내도 걱정이었지만 나에게 물건을 갖다 줄 방법이 사라지는 것도 걱정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을 하던 차에 새로운 방법이 생겼다. 미리 주문한 2단 케이크를 아침에 찾아 왔는데 거치대가 없었다. 가게에 전화를 했더니 실수로 빠뜨렸다고 하시면서 퀵 서비스를 통해 보내 주시겠다고 했다. 사장님께 부탁을 드려서 아내가 보내 주기로 했던 물건도 함께 받기로 했다.


“여보. 고맙네”


아내가 나에게 고마워 할 일은 아니었는데 고마워 했다. 그만큼 두통이 심해서 부담이 있었던 거다. 아무튼 다행히 아내는 먼 곳(차로 40-50분)까지 오지 않아도 됐다. 택배 기사님에게 물건을 받기 위해서 나갔다가 동네 공원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바람을 쐬니까 두통도 좀 옅어지고 울렁거리던 속도 진정이 됐다고 했다. 아이들도 뜻밖의 아침 나들이에 잔뜩 신이 났고.


“이때까지만 해도 평화로웠지”


그 이후에는 적잖이 고달픈 시간이었다는 얘기였다. 녹록하지 않은 일상에도 다행히 아내의 두통이 엄청 더 심해지지는 않았다.


아내는 저녁에 약속이 있었다. 친구(K의 아내)와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나와 K가 일을 마치고 가면 너무 늦으니까 아예 아이들과 함께 나와 K가 있는 곳으로 오면 어떠냐고 제안했다. 아내는 K의 아내와 상의를 한 뒤,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아내와 K의 아내는 끝날 시간에 맞춰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 거기서 바로 아이들을 인계 받았다. 아내와 K의 아내는 떠났다.


근처의 수제비 가게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아빠 둘에 아이 여섯. 정신없는 건 당연했다. 그래도 조용한 곳이 아니라서 부담이 덜했다. 자녀들이 조금 떠들어도 크게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시끄러운 곳이었다. K의 막내는 계속 잤다. 덕분에 조금이나마 덜 정신없게 먹었다. 아, 나 말고 K. 너무 잘 자서 마지막에는 일부러 깨워서 밥을 조금 먹였다. 아내와 K는 초밥을 먹으러 간다고 했다. 시내 중심가의 분위기 좋은, 아이들과 가기 어려운 곳으로.


“여보. 나랑 K랑 정말 좋은 남편인 거 같아”

“그럼. 우리도 엄청 감사해 하고 있어”


밥을 먹고 나와서 근처 저수지에 갔다. 깜깜해서 아무것도 안 보였다. 산책은 하는 게 불가능했고 입구에 있는 정자에서 조금 놀았다. 너무 추워서 오래 머무는 건 불가능했다. 자녀들은 ‘이제 어디를 가냐’면서 ‘집에 바로 가는 건 싫다’고 했다. K와 긴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집 근처에 있는 키즈카페에 잠시 들르기로 했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키즈카페라고 하기에는 조금 빈약한, 그래서 오히려 마음에 드는 그런 곳이었다. 아이들이 노는 것도 한 눈에 보이고 우리도 적당히 앉아서 쉴 수 있는 곳이었다. 자녀들은 당연히 뛸 듯이 좋아했다.


검색 사이트에는 영업 종료 시간이 아홉 시라고 나왔는데, SNS에는 여덟 시였다. 전화를 해 봤더니 여덟 시 반까지라고 했다. 도착하면 여덟 시가 조금 넘을 것 같았다. 30분도 채 못 놀고 나오는 것보다는 다음에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대안은 필요했다. 이미 마음이 들뜬 이상 바로 집으로 가자고 하면 슬퍼할 테니까.


문구점에 가기로 했다. 지난 번에 장모님, 장인어른과 갔던 곳에 가기로 했다. 넓어서 각 집의 막내들을 풀어 놓아도 부담이 좀 덜 할 것 같았다. 자녀들의 소비 욕구를 자극하는 곳이라 내키지는 않았지만 마땅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아서 어쩔 수 없었다. 용돈을 챙겨 온 K는 자잘한 장난감을 몇 개 샀다. 동생도 사 줬다. 소윤이는 용돈을 안 챙겼다. 빌려서 사는 건 금지하고 있다. 소윤이도 그걸 아니까 사겠다고 말은 못하고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오늘만 빌려주기로 했다. 그냥 왠지 불쌍하고 안쓰러워서. 소윤이는 팔찌 만드는 세트(?)를 샀다. 소윤이 다운 선택이었다. 거금 4,000원이나 들였다. 서윤이는 600원 짜리 비눗방울, 시윤이는 천 원 짜리 블록을 골랐다. 다 소윤이가 사 줬다.


집에 오니 아홉 시였다. 엄청 피곤했다.


“소윤아, 시윤아. 양치하고 손, 발 닦고. 세수하고”

“아빠. 아빠가 닦아주면 안 될까요?”


시윤이가 매우 애교스럽게 물어봤지만


“시윤아. 미안. 아빠가 너무 피곤해서. 오늘은 시윤이가 좀 씻어”


라고 대답했다.


“아빠. 근데 오늘은 이 아니지 않아여?”


틀린 말이 아니었다. 고맙게도 소윤이와 시윤이는 알아서 척척 씻고 나왔다. 서윤이는 아직 불가능한 일이라 초약식으로 후다닥 씻겼다. 아내가 봤으면 씻긴 게 맞냐고 물어봤을지도 모른다.


아내는 생각보다 일찍 왔다. 너무 좋았다고 했다. 오랜만에 ‘친구’로 만나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고 했다. 교회나 처치홈스쿨로 만날 때가 많다 보니 순수하게 친구로 만나는 시간은 의외로 없었나 보다. 너무 만족했고, 애써 준 남편들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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