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 짜리 설거지로 저녁 빚도 갚는다

22.12.18(주일)

by 어깨아빠

날씨가 엄청 추웠다. 올 겨울 들어 가장 춥게 느껴졌다. 실제로도 가장 낮은 기온이었다. 교회까지 가는 길은 매우 짧기도 하고 차도 타지만, 모두 두터운 외투로 단단히 채비를 했다. 요즘 부쩍 추위를 많이 탄다. 젊은 시절의 타오르는 나는 없어졌다. 덕분에 자녀들의 추위에 관해서도 더 대비를 하게 되는 장점도 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괜찮다’라면서 대충 입혀서 나올 때도 많았다.


서윤이는 평소보다 일찍 잠들었다. 거의 예배가 시작하자마자 눕더니 바로 잠들었다. 예배가 끝날 때까지 계속 잤다. 마침 나는 바로 월례회가 있어서 서윤이는 그대로 자리에 눕혀 놓고 월례회를 했다. 아내는 먼저 밥을 먹으러 갔다. 예배당의 긴 의자에 눕혀 놓은 거라 깨면서 뒤척이다가 바닥으로 떨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앞 줄에 있는 의자를 서윤이가 누운 의자 쪽으로 바짝 붙여서 불의의 사고를 대비했다. 서윤이는 회의 중간에 깼다.


“엄마는여어?”

“엄마는 밥 먹으러 가셨어”


엄마를 찾기는 했지만 엄마한테 가겠다며 울고 그러지는 않았다. 사실 서윤이가 그러는 경우는 거의 없긴 하다. 좋다. 엄마가 없을 때는 아빠여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나 보다.


오후 예배를 드리고 나서는 성탄절에 할 찬양 연습이 있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는데 아내 쪽 연습이 더 늦게 끝났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곳에 가서 아내들의 연습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꽤 걸렸다.


어제 시내를 나갔다 오지 않았으면 오늘 나갔다 왔을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그냥 바로 집으로 가려고 했는데 하늘이 너무 파랗고 깨끗했다. 구름도 많았지만 그림 같은 구름이었다.


“와, 날씨 너무 좋다”


그렇다고 어딘가에 가서 산책을 할 날씨는 아니었다. 집 근처 바닷가 쪽으로 조금 더 돌기로 했다. 간소한 드라이브랄까. 잠깐이라도 내려서 바람을 쐬고 싶었지만, 내리자마자 후회하게 만드는 추위였다. 차에만 있었다. 중간에 호떡과 와플, 국화빵을 파는 트럭이 있길래 조금씩 사서 차에서 먹었다.


“소윤아, 시윤아. 이걸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어”

“뭔데여? 뭔데여?”

“아, 밖에 나가서 먹으면 돼. 추위에 떨면서. 그럼 엄청 맛있지”

“아빠. 우리 나가자여. 그렇게 해 보자여”

“아니야. 오늘은 너무 추워서 안 돼”


소윤이와 시윤이는 또 우노를 하자고 했다. 집에 오자마자 바로 우노를 했다. 그 사이 아내는 저녁 준비를 했다. 오늘 저녁도 교회에서 싸 주신 반찬으로 해결했다. 귀하고 소중한 일용할 양식이었다. 저녁을 먹고 나니 갑자기 엄청 졸렸다. 졸린 거야 항상 그렇지만, 유독 참기 어려운 졸음이 올 때가 있다. 오늘 그랬다. 내가 선택하고 말고의 여지가 없는, 불가항력적인 졸음이었다. 그대로 소파에 누웠다.


아내가 아이들을 모두 씻기고 잘 준비를 시켰다. 중간 중간 아내의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을 향해 호통을 쳤다. 피곤으로 인한 짜증도 적잖이 담겼다. 다 지나고 나니 미안하고 후회스러웠다. 괜한 짜증을 너무 많이 낸 것 같았다. 그래도 자녀들은 기쁘게 뽀뽀를 하며 밤인사를 건네고 받아준다.


주방 정리는 내가 했다. 가장 지치고 힘들 시간에 자느라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미안했다. 아내는 무척 고마워 했다. 애들을 눕히고 나니 만사가 귀찮아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걸 다 치워주니 고맙다고 했다. 역시 인생은 타이밍인가. 식기세척기 작동을 위한 반쪽 짜리 설거지로 이렇게 치하를 받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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