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 내 아들이라 그래

22.12.19(월)

by 어깨아빠

아침에 일어나면 간단히 출근 준비를 하고 소파에 앉아서 할 일을 한다. 오늘은 불을 아예 켜지 않고 휴대폰 불빛에 의존했다. 혹시 모르는 안전사고(?)에 대비해 방 문을 조금씩 열어 두고 손 끼임 방지 쿠션을 끼워 놓는다. 그 문 틈 사이로 불빛이 새어 들어가면 ‘아빠가 일어났구나’라고 생각하고 불빛을 따라 한 명, 두 명씩 나오는 거 같아서 오늘은 아예 불을 켜지 않았다(언젠가 시윤이가 자기는 거실에 불이 켜져 있으면 나온다는 말을 했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불이 꺼져 있어도 나올 때가 되면 다 나왔다. 소윤이가 가장 먼저 일어났다. 어둠 속에서 졸음을 헤치며 나왔다. 반갑게 인사하고 조금 더 자라고 했더니 내가 나가면 다시 들어가겠다고 했다. 소윤이는 내 옆에 앉아서 종알종알 말을 걸었다. 어제 월드컵은 누가 이겼는지, 점수는 어떻게 됐는지, 이제 월드컵은 끝난 건지, 우리나라는 누구랑 대결을 했었는지 등등. 성심성의껏 답했다.


“아빠. 이제 엄마 깨워야 할 거 같아여. 아홉 시 반까지 가야 되거든여”


그저 일찍 일어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엄마나 아빠의 동선과 시간까지 파악하고 있다. 덕분에 도움을 받을 때가 많다. 아내와 서윤이, 시윤이가 거의 동시에 깨서 나왔다. 나도 막 나가려던 참이었다. 모든 식구의 인사를 받고 나왔다. 소윤이는 베란다에도 나와서 손을 흔들어줬다.


아내와 아이들은 처치홈스쿨을 하는 날이었다.


“여보. 잘 갔어요? 아침에 시윤이 자면서 짜증 많이 내던데 괜찮았나?”

“네. 피곤해 보여요. 말 안 듣고”


이렇게 메시지를 주고 받은 지 10분 만에 또 메시지가 왔다.


“너무 화나네 진짜. 시윤이는 대체 왜 이럴까. 으악 정말”


나의 엄마는 내가 대체 왜 이러는지 아는데 얼마나 걸리셨을까.


오늘은 퇴근이 늦었다. 본의 아니게 아내에게 길고 긴 독박육아를 선사했다. 퇴근하고 집에 왔을 때는 아이들이 방에 누워 있었는데 아직 잠들기 전이었다. 반가웠다. 얼른 들어가서 한 명씩 뽀뽀를 하고 나왔다.


아내는 오늘도 시윤이 때문에 적잖은 몸과 마음의 고생을 했다고 했다. ‘대체 왜 이럴까’의 답을 찾기 위한 아내의 고된 여정은 언제 끝이 날까. 아내에게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위로라기 보다는 시윤이 전에 이미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랄까. 시윤이가 요즘 주로 듣는 이야기는, 나도 30여 년 전부터 엄마에게 듣던 이야기다. 물건 잘 챙겨라, 정리 좀 해라, 잃어버리지 말아라, 옷으로 뭐 닦지 말아라, 준비물 잘 챙겨라 등등등. 들은 횟수에 비해 개선 정도는 매우 떨어지는 듯하다. 요즘은 아내에게 ‘속옷 좀 거꾸로 입지 말아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아내와 시윤이 이야기를 한참 했다. 낮에 아무리 힘들었어도 밤에는 웃으며 이야기 하게 된다. 덕분에 아내의 낮 시간의 치열함을 내가 온전히 체감하기가 어렵다. 다 지난 일이니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당장 내일이 되면 다시 또 시작되는 일이기도 하다.


“여보. 나도 시윤이랑 똑같았어”


위로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그랬다. 아이를 낳아서 기르기 전에는 ‘유전’이라는 게 그저 외형에 국한되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외모, 성격, 습관, 생각, 정서까지 주고 받는 게 유전이다. 마치 구형 아이폰에서 신형 아이폰으로 영혼까지 복사하는 것처럼.


대체 왜 이러긴. 나랑 결혼했으니까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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