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살아도 놀라운 아내의 육아력

22.12.20(화)

by 어깨아빠

아내와 아이들은 아무 일이 없는 날이었다. 어제도 아이들을 제대로 못 봤고, 오늘 아침에도 제대로 못 보고 나왔고, 오늘 저녁에도 못 볼 예정이었다. 아침에 전화로 듣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유난히 반가웠다. 전화로는 당장 못 보면 큰 일이 날 것처럼 보고 싶다는 말도 잘 하고 그러면서 막상 만나면 엄청 튕긴다.


평소였으면 집에서 함께 저녁을 먹고 있을 시간이었지만, 오늘은 따로 있었다. 아내가 전화를 했다. 집 근처의 작은 포구에 산책을 나갔다고 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나갔다고 했다. 안 그래도 일 하면서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와 노을의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아내가 보낸 사진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파란 하늘과 바다, 분홍빛과 붉은빛이 동시에 감도는 노을의 모습이 아주 멋있었다. 멋진 풍경 덕분에 잠시 잊었다.


‘응? 아내 혼자 애들 셋을 데리고? 이 시간에?’


날씨도 적잖이 추웠다. 두꺼운 외투를 입어도 곳곳의 빈 틈으로 찬 기운이 스미는 날씨였다. 아이 셋을 데리고 다니면 오히려 땀이 나니까 괜찮나. 아무튼 아내의 추진력과 기동력에 새삼 감탄했다. 심지어 아내는 저녁도 밖에서 먹었다. 혼자 아이 셋을 데리고. 또 다른 의미의 ‘혼밥’이다. 혼자 밥 먹이기.


“나는 채소 비빔 먹었어. 고추랑 양념장 빼고 다 긁어 먹고”


원래는 ‘전복비빔밥’이다. 아이들 퍼 주고 나니 남은 게 채소뿐이라 전복 없는 전복비빔밥을 먹었다는 말이었다. 하나 더 시켜서 먹으면 되겠지만, 여러 이유로 그게 쉽게 안 된다. 서로에게는 ‘그냥 더 시켜서 먹어’ 라고 얘기해도, 막상 당사자의 입장이 되면 ‘짜장면이 싫다고 하신 어머니’로 변신한다.


난 당연히 차를 가지고 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걸어서 갔다 왔다고 했다. 아내의 육아력에 다시 감탄했다. 아내는 너무 좋았다고 했다. 날씨는 물론이고 아이들과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집에 와서 마지막 일과로 아이들을 씻길 때 너무 힘들고 피곤해서 좀 차갑고 퉁명스럽게 얘기했는데, 그게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저녁에 너무 즐겁고 좋았는데 마지막에 조금 더 힘을 내지 못하고, 다정하지 않은 태도로 대한 게 미안했다고 했다. 다르게 해석하자면, 그만큼 앞의 시간이 좋아서 작은 티 하나에도 아쉬웠다는 뜻이었다.


인간은 어리석고, 육아인은 일시적으로 더 어리석어진다고 했던가. 아내가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들여보낼 때의 퉁명스러움을 자책하며 소파에서 쉬고 있었는데, 소윤이가 나왔다고 했다. 엉덩이가 가려워서 아내에게 씻겨 달라고 하려고 나온 거였다. 아내의 머리와 마음, 입술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후회와 인내, 이해와 분노 등의 감정이 혼란스럽게 뒤섞였지만, 결국 다시 퉁명스러움이 승리했다. 늦은 시간에 돌아온 나에게 얘기할 때는, 비로소 다 제자리를 찾은 뒤였다.


정말 좋긴 했나 보다. 아내는 아이들과 이사 오기 전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그리움에 잠겨서 울고, 아이들과 걷는 지금 이 순간이 좋아서 울었다고 했다. 감정이 충만했다는 건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는 거다. 분노나 슬픔만 가득 찼을 때는 다른 감정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기 마련이다.


난 아내가 열심히 찍은 사진과 영상으로 그리움을 달랬다. 문만 열고 들어가면 자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지만, 그리움은 일방적인 관찰로 달래지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교감과 교류가 있어야 해갈된다. 아내도 이 그리움을 조금 더 많이 느끼는 게 가능하면,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 조금 더 수월할지도 모르겠다. 그리움이 불가능할 정도로 모든 일상을 함께 지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겠지만.


아내가 자고 있는 서윤이의 귀에 대고 ‘사랑해’라고 하자 ‘네’라고 대답했다. 나도 아내처럼 귀에 대고 사랑한다고 말했는데 아무 답이 없었다. 아내가 다시 사랑한다고 하니까 거기에는 다시 대답을 했다. 그렇게 한 열 번은 했나 보다. 아내가 말할 때는 다 대답을 했고 내가 말할 때는 모두 대답이 없었다. 잠이 깨고 의지를 발휘하는 건가 싶었는데 그런 건 아니었다. 손에 힘이 빠진 걸 보면 정신을 차린 건 아니었다. 무의식 속에서도 엄마의 목소리에만 반응하다니.


잘 해 줘 봐야 소용없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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