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30(금)
아침부터 난리가 있었다. 정신은 차렸지만 눈을 감고 있는 상황에서 거실의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은 일찍부터 깨서 놀고 있었다. 잘 놀았다. 아내가 나보다 먼저 일어나서 거실로 나갔는데 얼마 안 돼서 서윤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뛰어다니다가 어딘가 부딪힌 듯했다. 금방 그치겠거니 싶었는데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울음소리가 달랐다. 정말 아파서 우는 울음이었고, 그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내가 서윤이에게 이것저것 묻는 소리도 다 들렸다. 눈을 뜨고 거실에 나가 보니 지난 번 팔이 빠졌을 때와 비슷했다. 손목이 아프다고 하면서 계속 울고 손도 못 빨고. 겨우 손을 올려서 빨더라도 부들부들 떨었다. 지난 경험 덕분인지 바로 느낌이 왔다.
‘또 빠졌구나’
일찍 문을 여는 집 근처의 정형외과를 검색해서 찾아갔다. 내가 서윤이를 데리고 갔다. 서윤이는 계속 서럽게 울었다.
치료는 30초 만에 끝났다. 지난 번에는 내가 안 가서 몰랐는데 이번에는 소리가 들렸다. 의사선생님이 서윤이 팔을 잡고 살짝 돌렸더니 ‘또독’하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그 소리와 함께 서윤이도 거짓말처럼 울음을 그치고 멀쩡해졌다. 별 거 아니라는 걸 알고 병원으로 갔지만 그래도 마음이 평탄하지는 않았다. 서윤이는 나와 아내에게 그런 존재다. 아마 평생 그럴 거 같다. 갈 때만 해도 우느라 아무 말도 못했던 서윤이가 올 때는 종알종알 몇 분 전 자기 상황을 막 이야기했다.
출근을 안 했다. 아내와 K의 아내에게 자유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나와 K가 자녀들을 보기로 했다. 아침에 아내에게 사과를 했다. 즐거운 자유부인의 시간을 찜찜한 상태로 보내게 하는 건 나에게도 매우 찝찝한 일이었다. 다행이었다. 아주 긴 시간 대화로 푼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라도 풀 시간이 있어서.
K의 차로 한 번에 이동했다. 우선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잠시 공공기관에 들렀다. K가 들어가서 일을 보는 동안 난 차에서 자녀들과 함께 있었다.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일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근처에 있는 허름한 가게였다. 칼국수와 수제비를 파는 곳이었는데 저번에도 갔던 적이 있었다. 그때도 사람이 많았다. 오늘도 많은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그 이상은 상상하지 않았다. 그 이상이었다. 자리가 가득 찬 건 물론이고 먹으려면 40분이 걸린다고 했다. 나와 K 둘이었으면 기다렸을지도 모르지만 자녀들과 함께 40분을 기다리는 건 어려웠다.
다시 차에 타고 목적지를 변경했다. 오늘의 가장 큰 이벤트는 키즈카페였다. 자녀들이 아주 오래 전부터 가고 싶어 하던 키즈카페(라고 하기에는 훨씬 크고, 시설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에 가기로 했다. 그 근처에 있는 식당에 가서 밥을 먹기로 했다. 식당이 즐비한 곳은 아니라 고르는 게 쉽지는 않았다. K가 예전에 갔던 분식집에 가기로 했다. 분식을 비롯해서 이런저런 식사 종류도 파는 곳이었다. 김밥과 만둣국을 자녀들에게 주려고 시켰다.
자녀들이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가장 큰 자녀인 소윤이와 K의 첫째가 국물이 맵다고 했다. 조금 매운 건 얼마든지 잘 먹는 자녀들인데 많이 힘들어 했다. 시윤이도 마찬가지였고 곧이어 서윤이도 혀를 입 밖으로 빼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아빠아. 매워여어어”
김밥도 있었으니 만둣국은 두고 김밥을 먹으라고 했다.
“아빠. 김밥도 매워여”
그러고 보니 모든 음식이 다 매웠다. 나와 K가 주문한 고기덮밥도 엄청 자극적이었다. 결국 미안하게도 자녀들은 제대로 밥을 먹지 못했다. 서윤이는 맨밥만 먹었다. 맨밥이어도 맛이 있었는지 반 공기 넘게 먹었다.
밥을 먹고 바로 키즈카페로 갔다. 아빠 둘이 아이 여섯을 돌보는 게, 당연한 말이지만 쉽지 않았다. 게다가 각자의 막내는 아직 완전한 통제가 불가능했다. 발길 닿는 대로 가려고 하는 습성이 다분한 자녀들이었다. 그런 자녀를 예의주시 하면서 나머지 자녀들도 어느 정도는 봐야 했다. 나나 K나 육아참여도가 높은 편이라 엄청 힘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아무렇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몸이 바쁘고 분주하긴 했다. 이쪽저쪽 쫓아다니느라.
자녀들은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세 시간을 노는 동안 전혀 지치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놀았다. K의 막내와 서윤이도 잘 놀았다. 특별히 뭘 한 건 아니었지만 언니와 오빠가 노는 곳 주변에서 나름대로 사부작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막 울고 짜증 내는 걸 달래느라 고생한 기억이 없었던 걸 보면 잘 있었던 게 맞다.
아주 간단한 놀이기구도 한두 개 있었는데 서윤이는 결국 아무것도 타지 않았다. 언니와 함께 타 보라고 했더니 탄다고 했다가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다가 다시 탄다고 했다가 또 마음이 바뀌었다. 소윤이가 더 아쉬워했다. 동생이 재밌는 걸 경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했나 보다.
“소윤아. 아까 언니랑 그거 타자니까 왜 안 탔어”
서윤이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렇게 얘기했다.
“아니, 언니랑 타는 것도 좋은데 아빠랑 타는 게 더 좋아”
여기서 서윤이가 말하는 ‘좋다’라는 건 아마도 ‘안정감’일 거다. 서윤이에게는 ‘무섭고 위험한 일’이었을 테고 그런 건 엄마나 아빠와 함께 해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는 거다. 소윤이가 들으면 섭섭할 지도 모르지만 언니는 아직 ‘안전한 존재’까지는 아니었다.
다들 후기가 좋았다. ‘기대 이상으로 재밌었다’, ‘다음에 또 오자’ 등이 평이 넘쳤다. 나나 K에게도 괜찮은 곳이었다. 자녀 여섯 명을 데리고 다니면 어디를 가든 힘들지만 이 정도면 양호한 수준이었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었고.
시윤이는 미용실을 가야 했다. 지난 번에 했던 펌이 바로 풀려서 다시 가야 했는데 원래 아내가 간다고 했다. 미용실은 내가 데리고 갈 테니 기왕 나간 거 중간에 오지 말고 더 놀다 오라고 했는데 나 혼자 아이 셋을 데리고 미용실에 가는 건 너무 힘들 거라면서 오겠다고 했다. 키즈카페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어디야?”
“아, 나 이제 가려고”
“어? 미용실 네 시까지인데?”
“응. 알아. 지금 가면 되지 않나?”
“아…그래? 아니면 그냥 더 있다가 와”
“여보 너무 힘들 텐데”
“아, 괜찮아. 신경 쓰지 말고 더 놀다 와”
“그럴까? 그럼?”
K가 아이들과 함께 교회에 있겠다고 했다. 시윤이는 나와 함께 가야 하고 서윤이는 재워야 했다. 서윤이도 데리고 가면서 차에서 재우기로 했다. 소윤이만 교회에 남기고 왔다. K에게도 부담을 덜 주고 서윤이도 재우고 아내에게도 자유를 주는 일거삼득의 방안이었다.
서윤이는 미용실로 가는 길에 잠들었다. 미용실 의자 두 개를 붙여서 간이침대를 만들었다. 서윤이는 거기서도 편히 잤다. 시윤이와 나도 졸렸다. 시윤이는 머리를 말면서 꾸벅꾸벅, 나는 그런 시윤이를 보면서 꾸벅꾸벅 졸았다. 시윤이는 아예 잠들었고, 난 졸다 깨다를 반복했다.
펌이 끝나고 다시 교회로 갔을 때도 아내는 없었다.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기는 했다. 아내들이 올 때까지 계속 교회에서 기다렸다. 저녁은 아내들이 오면 함께 먹기로 했다. 교회에서 만들어 먹는다고 했다. 아이들은 우동, 어른들은 김치찌개. 엄청 힘들거나 고단했던 건 아니었는데 아내가 무척 반가웠다. 교회 주차장에 들어오는 차를 보고 나도 모르게
“와, 엄마 오셨다. 드디어 오셨다”
라는 말이 나왔다.
아내는 너무 좋았다고 했다. 밥도 너무 맛있었고 장소와 분위기도 좋았고 그냥 다 좋았다고 했다. 밤에 나가서 만나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을 거다. ‘아이들을 떼어 놓고 느낄 수 있는 기분’을 극대화 한 느낌이랄까. 아무튼 아내가 너무 만족스러워했다. 보람이 있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몇 시간의 자유가 아니라 아예 여행을 가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말 그대로 언제가 될는지는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