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31(토)
올해의 마지막 날이다. 진정한 프로는 상황과 상관없이 변함없는 일상을 유지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했던가.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이었지만, 난 여느 토요일처럼 축구를 하러 갔다. 나처럼 프로 조기 축구인인 사람이 많았다. 오히려 지난 주보다 덜 추워서 운동하기에는 더 좋았다.
축구를 하고 와서는 꽤 바빴다. 오전에 처치홈스쿨 종강 예배가가 있었다. 부지런히 씻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이미 아침도 다 먹고 어느 정도 나갈 준비도 마친 상태였다. 아내만 아무런 준비를 못했다. 혼자 아이 셋의 아침도 챙기고 옷도 챙겨서 갈아입히느라 자기가 준비할 시간은 확보하지 못했다. 내가 오고 나서야 준비를 시작했다.
시윤이가 몸이 좀 안 좋았다. 새벽에 일어났을 때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이마를 짚어봤는데 열은 없었다. 잠꼬대라고 생각하기에는, 요즘 계속 몸이 안 좋았다. 엄청 심하게 아픈 것도 아니었지만 완전히 말끔한 상태도 아니었다. 간당간당하게 유지하는 느낌이었다. 아예 아무것도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가끔 장난을 치기도 했다. 어제 교회에서 놀다가 넘어지면서 머리 옆쪽을 바닥에 세게 부딪혔는데 혹시나 그 후유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유독 유심히 관찰했다. 다행히 큰 연관성은 없어 보였다.
종강 예배 때는 자녀들에게 상장을 준다. 한 학기 동안 노력하고 성장한 부분을 칭찬해 준다. 소윤이는 줄넘기를 꾸준히 연습해서 실력이 향상된 걸, 시윤이는 지난 학기에 비해 짜증을 안 내려고 노력하고 실제로 짜증이 덜 했던 걸, 서윤이는 찬양을 부르게 된 걸 칭찬했다. 선물도 준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선물은 아내가 진작에 사 놨다. 점과 선이 그려져 있는 책이었다. 그걸 바탕으로 자기 상상력을 동원해 그림을 그리는 책이었다(말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아무튼 나름 특별하면서 좋아할 만한 책이었다. 서윤이 선물은 연습장이었다. 어제 아내가 천 원 짜리를 급히 구매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는데 서윤이의 반응이 뜨거웠다. 너무 좋아했다. 이런 게 가성비다. 천 원으로 그렇게 큰 만족을 선사하다니. 나중에 들어 보니 소윤이는 그냥 책인 줄 알고 실망했다가 진짜 용도를 알고 나서는 좋았다고 했다. 아무튼 서윤이는 선물을 받으러 나갈 때부터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함박웃음을 지었다.
종강 예배를 드리고 나서는 다 함께 점심을 먹고 카페에 가서 차도 마셨다. 워낙 대규모 인원(네 가정, 열 여덟 명)이라 어디 가서 밥 먹고 차 마시는 게 가능할까 싶었지만, 다 됐다. 원래 산책을 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날씨가 추웠다. 밥 먹을 때는 괜찮았지만 카페에서는 자녀들이 버티기 어려워했다. 이해는 된다. 아무것도 할 게 없는 곳에서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니 그보다 지겨운 시간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과자와 쿠키, 빵 등으로 앉아 있는 시간을 최대한 늘리기는 했지만 한계에 도달하기는 했다.
결국 카페 앞의 작은 마당에 잠시 나갔다. K가 자녀들을 인솔해서 나갔는데 나도 따라나갔다. 요즘 추위 때문에 고생하는 K를 혼자 추위에 떨게 하는 게 영 불편했다. 몇 분 있다가 K는 먼저 들어갔다. 난 남아서 자녀들과 함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했다. K가 하던 걸 이어 받아서 했는데 추운 건 문제가 아니었다. 재미가 없다는 게 문제였지.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분위기를 맞췄다. 다행히(?) 나머지 일행이 금방 자리를 정리하고 나왔다. 시윤이는 몸이 안 좋은 만큼 혼자 못 나가고 안에 있었는데, 아주 짧았던 시간과 상관없이 혼자 못 나갔다는 사실에 크게 상심했다. 속상한 마음을 오랫동안 달래지 못했다.
저녁에는 교회에 가야 했다. 마지막 날이니 보통은 자정이 가까웠을 때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지만, 올해는 내일이 바로 주일이라 저녁 여덟 시에 송년 기도회를 드린다고 했다. 집에 오니 대략 네 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아내는 밀린 빨래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거의 쉴 틈도 없이 움직였다. 아이들은 평소처럼 자기들끼리 놀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난 잤다. 피로가 몰려왔다. 아직 해가 완전히 뜨기도 전에 나가서 축구를 한 여파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누가 봐도 그 덕분이었다. 결국 거실에 누웠다.
“소윤아”
“네?”
“아빠 30분만 있다가 깨워 줘”
“30분이여? 안 일어 날 거 같은데”
소윤이가 정확했다. 소윤이는 30분 뒤에 날 깨웠지만 난 일어나지 못했고, 결국 두 시간이나 잤다. 그 사이 아내는 밀린 집안일을 하느라 생고생을 했다. 아내의 헌신 덕분에 저녁 예배 때 쌩쌩했다. 대신 아내는 방전 직전이었다.
시윤이는 멀쩡해졌다. 아까 내가 낮잠 잘 때 갑자기 멀쩡해졌다. 너무 멀쩡해져서 평소처럼
“즈와아앗. 핫핫. 이야아압”
같은 소리를 굵게 내며 날뛰었다. 보기 좋았다. 아프지 않고 생기를 찾은 것만으로도.
예배를 드릴 때는 소윤이만 빼고 다 잤다. 시윤이와 서윤이 모두 아예 뻗었고 소윤이만 살아남았다.
집에 오니 열 시가 넘었지만 아이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왔지만 우리 가족의 마무리 예배를 따로 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늦었으니 예배는 아니었고, 간단히 감사한 걸 나누고 돌아가면서 기도를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진심을 담아서 나누고 기도를 했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오는 과정과 지금 삶의 모습을 모두 감사 제목으로 나눴다.
우리 가족에게 퍽 특별한 해로 기억에 남을 2022년의 마지막 날이었다. 여기서 2022년의 마지막 날을 맞이하게 될 줄이야. 작년 이 맘때는 상상도, 생각도, 계획도 못 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