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금바리 부럽지 않은 밀치회

22.12.29(목)

by 어깨아빠

아내와 아이들은 아무 일이 없는 날이었다. 집에만 있는 날이었다는 말이다. 나는 하루 종일 교회에서 일을 했다. 오후 쯤 아내와 통화를 했는데 집에서 나갈 거라고 했다.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더니 특별히 목적지가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집을 벗어나는 게 목적이라면 목적이었다. 생각한 것보다 바람이 차고 추워서 마땅히 갈 데를 못 정했다고 했다. 표현은 ‘드라이브’라고 했지만 그냥 정처 없이 떠도는 중이었다.


그러고 나서 잠시 후에 또 연락이 왔다. 핫도그를 샀는데 사다 주면 먹을 생각이 있냐고 물어왔다. 점심을 배불리 먹어서 그다지 출출하지 않았다. 핫도그는 괜찮고 주전부리 할 거나 사다 주면 좋겠다고 얘기했는데 소통의 오류로 ‘아무것도 안 사 와도 괜찮다’로 전달이 됐다.


아내는 교회에 왔다고 했다. 난 2층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아내는 1층에서 아이들 핫도그를 먹이는 중이라고 했다. 아빠는 일 하는 중이니 2층에는 올라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가기 전에 잠깐 와서 얼굴 보고 가”


선심 쓰듯 말했지만 안 보고 가면 내가 아쉬워서 그랬다. 중간에 시윤이가 잠깐 올라왔다. 짧게 인사만 하고 다시 내려갔다. 시윤이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난 무척 반가웠다. 올라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아이들과 별개로 내가 먼저 내려가서 보고 싶었다.


아내는 잠깐 핫도그만 먹으러 온 게 아니었는지 아니면 잠깐 먹으러 온 건데 눌러 앉게 된 건지 아무튼 교회에 한참 머물렀다. 내가 퇴근할 때까지 교회에 있었다. 마침 K의 아내와 자녀들도 교회에 왔다. 아내와 K의 아내가 따로 연락을 한 건 아니라고 했다. 각각 온 건데 만나게 된 거다. 덕분에 자녀들은 뜻밖의 횡재를 했다. 오늘도 보다니.


일을 끝내고 부지런히 집으로 왔다. 아이들 저녁도 얼른 준비해서 먹였다. 오늘 아내와 작당한 일이 있었다. 아이들을 얼른 재우고 회를 포장해서 먹기로 했다. 지난 번에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오셨을 때 먹었던 밀치회가 너무 맛있어서 오늘 또 먹기로 했다. 진작부터 날을 잡아놨다. 너무 부지런했던 것인지 아이들을 눕힌 시간이 일곱 시 무렵이었다. 매우 이른 시간이긴 했다. 너무 일찍이라 약간의 명분이 필요했다. 아이들에게 궁색한 명분을 밝혔다.


“우리 다음 주에 서울 가려면 지금부터 컨디션 조절해야 돼. 특히 너네는 아프면 안 되니까. 시윤이는 몸도 안 좋고. 그러니까 좀 많이 자 둬. 알았지?”


감사하게도 아이들은 일찍 잤다. 아이들을 눕히자마자 튀어나가서 회를 포장해서 왔다. 아직 잠들지 않은 것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개시했다. 겨울철 밀치회가 그렇게 맛있다는데 겨울철에 애들 재우고 먹는 밀치회는 제주산 다금바리 수준이었다(먹어 본 적은 없지만). 회를 먹고 나서는 영화도 봤다. 영화를 보고 기분 좋게 잤으면 최고의 마무리였을 텐데, 아내와 다툼이 생겼다. 실컷 잘 놀고 마지막에 뜻하지 않은 다툼 덕분에 제주산 다금바리에 버금가는 밀치회의 기쁨이 모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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