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1.03(화)
당연히 엄청 늦게 일어났다. 얘기를 들어 보니 소윤이와 시윤이는 일찌감치 출근하는 할아버지를 배웅했다고 했다. 잠이 없는 걸 장점으로 활용해서 할아버지에게 출근길에 손주의 배웅을 받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했다. 느지막하게 일어난 아내와 나는 엄마가 미리 사 놓은 빵과 엄마가 타 준 커피로 배를 채웠다. 요일 감각이 없어진 걸 보면 몸과 마음이 편하긴 했나 보다.
오늘도 윷놀이를 했다. 원래 어제 저녁 먹고 나서 한 판을 더 하기로 했는데 약속을 못 지켰다. 내가 못 지킨 건 아니고 상황이 그렇게 됐다. 어제 못했으니 오늘은 꼭 해야 한다고 해서 집에서 나가기 전에, 아내가 준비를 하는 시간을 활용해서 윷놀이를 했다. 아내와 나에게도 안빈낙도의 시간이지만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에게는 그와 비교도 안 될 만큼 행복한 시간일 거다.
동생네 집에 가기로 했다. 오늘은 거기서 자기로 했다. 가기 전에 점심을 먹었다. 고깃집에 가서 먹었는데 당연히 엄청 잘 먹었다. 오늘은 소윤이가 끝까지 많이 먹었다. 시윤이는 너무 피곤해 보였다. 피곤하니 먹는 것에도 불을 붙이지 못했다. 평소만큼 많이 안 먹었다는 거지 절대적인 양이 엄청 조금이었다는 건 아니다. 시윤이도 많이 먹기는 했다.
배가 부른 오후는 누구에게든 졸음을 참기 어려운 시간이다. 아무리 안빈낙도의 삶을 살아도 어제 장거리 운전의 후유증과 일주일이지만 내 집이 아닌 곳을 떠돌아야 하는 아내와 나에게도. 엄마와 아빠에게서는 채워지지 않는 욕구를 한정 없이 채우느라 늦은 밤까지 놀고 이른 아침부터 깨는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도. 손주들의 요청과 요구를 빠짐없이 민원처리 하느라 쉴 틈이 없는 (내) 엄마에게도. 동생네 집에 가는 길에 모두 눈이 풀렸다. 아내는 아예 잤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졸았다. (내) 엄마도 반 쯤 눈이 감긴 상태였다. 나도 너무 졸렸지만 운전을 해야 하니 방법을 찾아야 했다. 마침 엄마가 아이들 먹으라고 사 준 과자(고래밥)가 있었다. 그걸 하나씩 집어 먹으면서 겨우 잠을 물리쳤다.
동생은 오빠네 식구 다섯을 집으로 불러 들이는 수고를 감수했다. 이유는 딱 하나였다. 독박육아를 피할 수 있으니까. 나야 뭐 동생네 집이나 부모님 집이나 큰 차이가 없었다. 짐을 여러 번 쌌다 풀었다 하는 게 조금 귀찮기는 했지만, 어디에 있든 몸이 편해지는 건 똑같았다. 동생네 집에 가자마자 ‘운전자로서의 사명’을 무사히 완수하기 위해 겨우 참았던 졸음이 폭발했다. 도착하자마자 마신 커피가 민망했다. 커피를 마시고 나서 소파에 앉았지만 꾸벅꾸벅 졸았다.
“지훈아. 방에 들어가서 자”
“그래 오빠. 들어가서 좀 자고 나와”
“그래요 여보. 자고 나와요”
이렇게나 열심히 나의 수면을 지지하는데 그걸 외면하는 건 도리가 아니었다. 모두의 요구(?)대로 방으로 들어가서 누웠다. 너무 달콤한 잠이었다. 푹, 아주 푹 잤다. 두 시간 가까이 잤나 보다. 일어나니 해가 지고 어두웠다. 다들 붕어빵을 사러 나간다고 했다. 나도 바로 옷을 챙겨 입었다.
추운 거리에 서서 붕어빵도 먹고 마트에 가서 장도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 아빠는 야근이 있어서 늦게 오신다고 했다. 어제는 늦게 자고 오늘은 일찍 일어난, 앞으로도 비슷한 행보가 예정된 아이들을 오늘은 일찍 재워야 했지만 할아버지 얼굴은 보고 자는 것으로 합의했다. 할아버지가 오시기 전에 저녁도 다 먹고 씻기도 했다. 욕조에 물을 받아서 목욕까지 했다. 이건 또 동생이 다 했다. 아주 소극적으로 내가 하겠다고 했는데, 괜찮다고 하면서 앉아 있길래 스윽 나왔다.
“오늘은 정말 일찍 자”
아이들과 약속을 했다. 아이들은 오늘도 할머니와 자겠다고 했다. 오늘은 할머니(내 엄마)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지 않고,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바로 나오겠다고 했다. 피곤에 찌든 세 남매는 졸음을 쫓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없으니 금방 잠들었다. 서윤이는 할머니와 함께 잔다고 했다가 마음이 바뀌어서 엄마, 아빠와 자겠다고 했다. 엄마와 아빠가 같은 방에서 자는 거지 재워주는 건 아니었다. 서윤이를 방에 눕히고 인사를 했다.
“서윤아. 잘 자”
“아빠. 잘 자여”
꽤 넓은 방에 서윤이만 덩그러니 눕혀 놓으니 이상했다. 게다가 빛이 완전히 차단되는 방이라 아주 깜깜했다. 혼자 자는 게 싫거나 무섭다고 하면서 울 지도 모른다고 예상했는데 의외로 그러지는 않았다. 두어 번 핑계를 만들어서 나오기는 했어도 어쨌든 혼자 잤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재우고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아내와 나만 휴가지 아빠와 매제는 내일도 출근을 해야 했다. 남들 일 할 때 노는 게 제일 짜릿하다더니 이런 기분인가.
하루 종일 놀고 먹었는데 왜 이렇게 피곤한지 모르겠다. 아내도 나와 비슷하다. 오히려 더 심하다.
“여보. 왜 이렇게 피곤하지?”
그러게. 우리 집이 아니라서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