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아이린을 읽는 용감한 아빠

23.01.10(화)

by 어깨아빠

다행히 소윤이는 조금 나아졌다고 했다. 어제는 아무것도 못 먹었는데 오늘은 딸기도 먹고 구운 계란도 먹었다. 구운 계란은 소윤이가 어제 요거트와 함께 먹고 싶다고 얘기했던 거다. 서윤이는 계속 배가 아프다고 했다. 지내는 걸 보면 평소와 전혀 다름이 없는데 계속 배가 아프다고 했다. 똥을 좀 못 싸긴 했는데 그것 때문인가 싶기도 했다.


아내는 오후에 셋을 데리고 병원에 다녀왔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알레르기 검사를 했다고 했다.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게 뭔지 밝혀내도 그걸 막지 못하면 의미가 없는 거라, 별로 할 생각을 안 했었다. 오늘은 의사선생님이 권유를 하셔서 그냥 한 번 해 봤다고 했다. 소윤이는 비염이 너무 심한 상태라고 했다. 병원에 갈 때마다 비슷하다. 시윤이도 지금은 비슷한 상태고. 서윤이는 배 쪽으로 특별히 이상한 소견이 보이지는 않는다고 했다. 청진기를 대지 않고 손으로 몇 번 짚어보고 말씀하셨다고 해서 조금 의아스럽기는 했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했다.


난 동네 카페에 있었다. 아내는 병원 진료를 마치고 거기로 왔다. 마침 일을 마무리 하려던 참이었다. 굳이 카페로 오지 않았어도 큰 시간의 차이 없이 집에 가면 볼 수 있었겠지만, 밖에서 보니 괜히 더 반가웠다. 소윤이는 확실히 어제와 다른 얼굴이었다. 멀쩡해 보였다.


바로 집으로 왔다. 저녁을 먹고 자기 전에 오랜만에 책을 읽어줬다. 요즘은 그 무렵에 내가 기절해 있을 때가 많아서 아내가 읽어주곤 했다. 시윤이가 애교를 잔뜩 장착한 말투로


“아빠. 오늘 책 읽어주실 수 있나요?”


라고 물어봐서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너무 길지 않은 걸로 고르라고 했다. 시윤이는 방에 가서 책 한 권을 가지고 왔다. 막 펴서 읽어주려고 하는데 아내가 얘기했다.


“여보. 그거 용감한 아이린이예요?”

“어”

“그거 엄청 길잖아”

“그래?”


오랜만이니 길어도 읽어줘야겠다는 마음으로 첫 페이지를 넘겼다. 정말 길었다. 처음 읽는 책은 아니었지만 새삼 길었다. 그래도 딱 한 번 졸았다. 10분은 걸렸나 보다.


모든 걸 마치고 아이들을 눕혔는데 서윤이가 배가 아프다고 하면서 나왔다. 저녁에 똥을 싸긴 쌌는데 너무 조금, 그리고 된 똥을 쌌다. 아마도 똥을 못 싸서 그런 듯했다. 밤에는 아프다고 하면서 막 울길래 아내가 들어가서 배도 문질러 주고 옆에 앉아 있었다. 그랬더니 잠이 들었다. 걱정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가 큰 경험을 했던, 작년 1월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혹시나’하는 염려의 마음이 생겼다. 일단 내일 똥을 좀 싸면 좋겠다.


아내는 내가 아이들을 씻기는 동안 설거지를 했다. 설거지는 식기세척기가 하지만 애벌 설거지는 사람이 해야 한다. 그래도 그 전에 비하면 무척이나 수월해졌지만, 양이 많을 때는 그 애벌 설거지도 꽤 성가시다. 세탁기 덕분에 손빨래 시절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편리함을 얻었지만, 아무리 세탁기가 있어도 빨래는 영원히 귀찮은 것처럼. 아내는 무척 피곤해 보였다. 설거지는 두고 소파에 앉아서 좀 쉬라고 했는데, 대답을 알겠다고 하고서 어느새 다 했다. 말끔해진 싱크대를 보며 아내를 향한 안쓰러움과 깔끔함이 주는 쾌감을 동시에 느꼈다. 커피는 남이 타 주는 커피, 밥은 남이 해 주는 밥, 주방은 남이 치워주는 주방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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