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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Mar 17. 2023

아들아, 축구하자

23.01.12(목)

아침에 아내를 못 보고 출근했다. 보통 아내가 일어나면 연락을 하는데 오늘은 연락이 없었다.


“여보. 잘 잤나요?”

“네. 여보. 아침에 기분이 괜히 좀 가라앉네”

“왜? 기분이? 아이들 때문에?”

“글쎄. 그래서 책을 좀 읽고 있음. 어제 정말 기도하고 싶었는데 아쉽다. 낮에는 쉽지 않네”


정확하게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어딘가 마음이 울적하거나 힘들었나 보다. 책을 읽는다고 하긴 했지만 세 자녀의 틈바구니에서 정상적인 독서가 가능할지 의문이었다. 아내가 읽는다고 한 책은 어제도 아내가 읽었던 그 책일 거다. 육아와 관련된 책인데 우리와 같은 신앙을 가진 분이 쓰신 책이다. 아내는 그저께, 형님(아내 오빠)네 교회에서 했던 강의를 듣고 책장에 꽂혀 있던, 몇 년 동안 읽지 않았던 책을 꺼내들었다. 책을 읽다가 혼자 막 웃고 그랬다. 자기 이야기 같다면서. 뭔가 위로와 공감이 필요했나 보다.


“서윤이는 좀 어때?”

“또 멀쩡히 지냄. 아침엔 배가 아프다고 했는데”

“가슴이 아픈 걸 목이 아프다고 하는 건가? 아니면 먹으면 안 되는 이물질을 먹었나?”


시윤이도 기침을 많이 하는데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가래 기침을 계속 하면 가슴에 통증이 오기 마련이다. 혹시나 서윤이도 그 통증을 말하는 건가 싶다가도 서윤이는 시윤이처럼 기침을 많이 하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럼 혹시 아무도 보지 못하는 사이에 먹으면 안 되는 걸 먹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몸 속 어딘가에 걸려서 계속 통증을 유발하는 거면 어떻게 해야 할 지 갑자기 불안에 사로잡혔다.


오늘 새벽에 자다 말고 갑자기 든 생각들이다. 자다가 잠깐 잠이 깼는데 그런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꽤 한참 동안, 구체적으로. 날이 밝으면 당장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 봐야 하나 싶었다. 서윤이는 나에게 이런 존재다.


신기한 건, 서윤이가 이렇게 내 마음의 큰 자리를 차지하는 것처럼 보여도 나중을 생각하면 또 다르다. 자녀들이 결혼하는 걸 상상해 보면, 서윤이는 ‘그래. 잘 가서 지금처럼 예쁨 많이 받고 살길 바란다. 혹시나 그런 대우 못 받으면 아빠한테 얘기해. 그 새ㄲ…아니 그 놈 내가 죽여ㅂ…’ 이런 마음이다. 시윤이는 간단하다. ‘가라. 니 아내한테 잘 해라. 아빠 같은 아들만 되지 말고’. 소윤이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또르르’. 소윤이는 정확히 이런 마음이다. 소윤아, 알지? 아무튼 서윤이는 새벽의 걱정에 비해, 낮에 너무 멀쩡했다. 밤에 엄마와 붙어 있고 싶어서 괜히 그러는 건가 싶을 정도로 아무렇지 않았다. 꾀병에 속을지언정 꾀병이면 다행이었다.


일을 마치고 K와 함께 퇴근하는데 K는 교회로 간다고 했다. K의 아내와 자녀들이 교회에서 기다린다고 했다. 산책을 갈 거라고 했다. 날이 엄청 좋기는 했다. 나도 아이들과 함께 바람을 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주말에 축구를 하기로 했는데, 할 수 없게 된 시윤이와 함께 나가서 축구를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윤이만 데리고 나간다고 하면 서윤이가 자기도 갈 거라며 울고불고 난리를 칠 게 분명했다. 소윤이는 축구에 별로 흥미가 없기 때문에 엄마와 집에 있겠다고 할 거 같았다. 그렇다고 서윤이도 데리고 가기에는, 온전히 시윤이에게만 집중해서 축구를 하기 어려워 보였다. 아내와 함께 자녀를 모두 데리고 나가는 건, 아내의 의사를 확인해야 했다. 나 혼자 셋을 데리고 나가는 건, ‘축구’가 아니었으면 가능한 일이었지만 축구를 하며 시윤이에게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조금 어려운 일이었다. ‘집’처럼 한정된 공간 안에서는 소윤이에게 동생들을 맡기는 게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야외에서는 아직 많이 불안하다. 아니, 그럴 생각이 없다.


집에 들어와서 동향을 살폈다. 평소에 비해 눈에 띄게 ‘이상한’ 분위기는 감지되지 않았다. 아이들의 귀가 쫑긋 살아있었기 때문에 섣불리 제안을 하기는 어려웠지만 간접적으로, 들을 귀 있는 아내만 이해할 만한 문장으로 제안했다.


“그럼 저녁은 나가서 김밥 먹든지”


아내의 완곡한 수락 표현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당연히 좋아했다. 바로 옷을 챙겨 입고 나왔다. 근처에 작은 놀이터와 함께 인조잔디 구장도 생겼다고 해서 거기로 갔다. 이미 해가 다 넘어가서 어둑해졌지만 잠깐이라도 공을 차는 건 가능했다. 시윤이도 축구화로 갈아 신었고 나도 축구화로 갈아 신었다. 지난 번에 장모님이 오셨을 때 성탄 선물이라며 사 주고 가신 축구공을 드디어 처음으로 찼다. 시윤이와 둘이 서서 공을 주고 받았다. 별 거 아닌데 난 엄청 좋았다. 시윤이가 좋다고 방방 뛰는 건 아니지만 공 차는 데 집중하는 걸 보면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난 안다. 시윤이가 진짜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는 척하는 걸. 서로 패스만 주고받는 그 단순한 걸, 시윤이는 지겨워 하지도 않고 한참 동안 했다. 소윤이와 서윤이, 아내는 옆에 있는 놀이터로 갔다. 시윤이는 관심도 없었다. 오로지 공 차는 데만 집중했다. 시윤이와 나 사이에만 쌓을 수 있는 어떤 유대와 경험이 쌓이는 기분이 생각보다 짜릿했다.


“아빠아. 나두 할래여어”

“아니야. 지금은 오빠랑만 하는 시간이야”


처음에 서윤이가 자기도 하겠다며 끼어들었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다. 시윤이에게 집중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소윤이가 조금 심심해 보였다. 아마 놀이터도 유치했을 거다. 혼자 한 편에 앉아서 뭘 만들었다.


“소윤아. 안 심심해?”

“네, 괜찮아여”

“아빠가 갈까?”

“괜찮아여”

“뭐 만들고 있어? 심심한 거 아니야?”

“네, 뭐 만들어여. 안 심심해여”


소윤이는 만들다가 아내와 함께 농구도 했다가 놀이터에도 갔다가 그랬다.


꽤 한참 놀았다. 해가 완전히 져서 깜깜해졌다. 아이들도 충분히 놀았다고 생각했는지 흔쾌히 자리를 정리했다. 저녁을 먹어야 했다. 눈에 보이는 국수 가게에 들어갔다. 국수 가게는 대체로 자녀와 함께 먹을 만한 음식이 많고 저렴하니까. 내가 소윤이, 시윤이와 함께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순간 움찔했다. 일단 뭔가 냄새가 퀴퀴했고 어느 손님 한 분이 막걸리와 함께 식사를 하시면서 우리를 뚫어지게 쳐다보셨다.


‘아, 그냥 다음에 온다고 할까’


순간적으로 고민했지만, 그냥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내는 서윤이를 유모차에 태워 오느라 조금 늦게 들어왔다. 난 ‘찰나의 전문가’다. 특히 ‘아내’ 분야에서는. 아내가 문을 열고 들어올 때의 1-2초를 주목했다.


‘아내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구나’


아내도 나처럼, 일단 그냥 앉았다. 이것저것 시키고 나서 아내가 작게 얘기했다.


“여보. 그래도 여기 다 국내산이래”


그전까지 아내와 나는 그 식당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그래도’라는 표현에서 아내의 마음을 읽었다. 어쨌든 아내 말처럼 국내산 재료를 쓴다고 하니 작은 신뢰가 생기기도 했다. 주방도 제법 깨끗해 보였다. 그래도 각오는 했다.


‘어떤 음식이 나올지 모른다’


아무런 정보 없이 간 곳이었으니까. 드디어 음식이 나왔다. 생각보다 괜찮았다. ‘다음에 또 오자’는 아니었지만 ‘뭐 나쁘지 않다’ 정도랄까. 아이들도 잘 먹었다. 면을 좋아하지 않는 서윤이는 역시나 잔치국수는 거의 입에도 안 대고 수제비만 먹었다. 요즘 대체로 식사 태도가 좋지 않을 때가 많은 서윤이는 오늘도 태도가 썩 좋지는 않았다. 눈을 꾸욱 감고 인내에 인내를 더했다.


“시윤아. 오늘 축구한 거 좋았어?”

“네”

“다음에도 또 하고 싶어?”

“네”


글로 쓰니 단답이지만, 난 시윤이의 표정과 분위기에서 시윤이가 오늘을 얼마나 행복하게 여겼는지 느꼈다. 호날두나 메시를 보러 가자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아빠와 공 좀 주고 받자고 하는 건데, 그걸로 이렇게 큰 만족을 하다니. 단 30분이라도 시윤이와 함께 나가서 공을 차고 오는 게, 나 없을 때의 시윤이의 모습에 변화를 이끌어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빠 내일 아침에 보자여”


소윤이가 자려고 방에 들어가면서 인사를 건넸다. 한껏 신난 목소리로. 내일 아침에 아내가 나를 KTX 역에 데려다 줘야하는데 당연히 아이들도 함께 가야 했다. 소윤이는 그저 신난 거다. 아침에 아빠를 데려다 주러 함께 나간다는 게.


“여보가 내일 간다니. 믿을 수가 없네”

“그러게”


오랜만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을 두고 나 혼자 떠나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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