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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Apr 05. 2023

고기가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23.01.18(수)

오전에 교회에서 일을 하다가 수요예배도 드렸다. 아내와 아이들은 오지 않았다. 아내와 시윤이의 몸 상태는 거의 정상이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조심해야 할 때였다. 스스로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소윤이는 자기라도 가고 싶다면서 아쉬워했다. ‘집에 들러서 소윤이를 데리고 와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다시 집에 데려다 줄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실천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원래 오후 늦은 시간에 일정이 있었는데 취소됐다. 나보다 아내가 더 좋아했다. 저녁에 병원에 가야 했는데 원래는 내가 퇴근이 늦을 것 같으니 혼자 아이 셋을 데리고 가려고 했다. 일정이 취소된 덕분에 내가 함께 가게 됐다. 병원에 가는 게 아니었더라도, 남편의 이른 퇴근은 언제 반갑기도 하고.


정말 병원에만 다녀왔다. 다행히 시윤이와 아내 모두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병원 진료를 받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예측 가능할 만큼, 겉으로 보기에도 좋았다. 저녁에는 고기를 구워 먹었다. 장모님이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보내주셨다.


“여보. 이 정도 구우면 충분하겠지?”

“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먹으면 되지”


사실 자세히 보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있는 대로 먹으면 되니까. 모든 고기를 다 굽고 먹으면 항상 고기가 식길래 고기를 조금씩 구워서 계속 줬다. 소고기부터 굽고 돼지고기도 굽고. 마지막으로 양파와 버섯도 굽고. 자녀들의 먹성은 대체로 두 갈래로 나뉜다.


잘 먹는 날과 더 잘 먹는 날.


오늘은 후자였다. 마지막으로 야채를 굽고 나도 자리에 앉았을 때는, 이미 고기가 다 사라지고 없었다. 아내가 중간에 쌈을 싸서 입에 넣어주고, 구우면서 몇 점 집어먹기는 했다. 오늘은 자녀들이 잘 먹는 날이라는 걸 느꼈기 때문에 일부러 괜찮으니 다 먹으라고 했다. 안 그랬으면 아내가 나서서 ‘아빠 몫’을 남기도록 했을지도 모른다.


“여보. 이거 몇 그램이었어?”

“이거? 글쎄. 한 700-800그램 됐나? 우리 평소에 이 정도 먹지 않나?”

“조금 더 먹을 때도 있기는 한데. 오늘은 애들이 잘 먹긴 했네”


장모님은 워낙 손이 크시다. 특히 우리에게 무언가를 보내실 때는. 고기도 보통은 이렇게 보내지 않고 몇 팩 씩 보내시는데 이번에는 아내가 극구 말렸다고 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이 보내면 곤란하니 적당한 양만 보내시라고. 아내도 이럴 줄은 몰랐지 뭐.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먹으면 된다고 했는데, 부족이 아니라 부재가 되다니. 야채 구운 것과 김가루, 김치를 넣고 고기 기름의 맛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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